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 [시네필로]‘동주’와 예술의 사회성 최송아(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

2016년 03월 17일(목) 18:46

영화 ‘동주’는 윤동주 시인 개인의 위대한 삶을 찬양하는 거창한 전기영화라기보다, 시대의 아픔과 삶의 고통을 교차하며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평범한 청년 동주를 비추는 소박한 영화다. 오랜 짝이었던 송몽규 열사와 그를 비교·대조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다. 특히 영화는 윤동주와 송몽규가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사촌지간이자 동년배 친구였던 윤동주와 송몽규는 연희전문대학 문과에 진학해 뜻이 맞는 학우들과 문학잡지를 발간한다. 그런데 예술작품 자체의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윤동주와 달리 송몽규는 조선의 독립이라는 목적에 예술이 기여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사회참여적 작품을 추구한다.

송몽규 또한 한때는 순수주의 문학가 이광수의 소설을 탐독했다. 그러나 이광수가 일제에 부역하는 변절자가 되자 배신감을 느낀 송몽규는 순수문학의 사회적 중립성에 환멸을 느끼고 사회참여적 예술만이 중요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송몽규의 완강한 입장 앞에서 윤동주는 순수문학을 변호하기 어려운 답답함과 함께 시를 쓰는 행위가 민족해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실천적 무력감을 느낀다. 과연 혼란한 시대에 예술은 사회적 과업에 봉사해야 할까, 아니면 예술 자체의 순수성을 유지해야 할까?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는 아도르노(Th. W. Adorno)의 말은 휴머니티를 배반한 홀로코스트의 야만성을 겨냥하는 말이지만, 본래 의도와는 달리 순수예술에 반대하는 참여예술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로 인용되곤 했다.

순수예술은 미분화된 진·선·미를 추구했던 예술에 대한 고전적 가치기준에서 벗어나, 진리와 도덕으로부터 분리된 예술의 자율성 테제를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 경제, 도덕, 정치 등에 얽매이지 않은 예술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까닭에 예술을 위한 예술, 또는 예술지상주의라고도 불린다. 이와 달리 참여예술은 예술을 하나의 사회 활동으로 보고, 사회 상황을 반영해 표현하는 일을 예술의 주된 과업으로 삼는다.

영화에서는 윤동주와 송몽규가 다른 선택을 하는 장면이 세 번 나온다. 첫 번째가 앞서 말한 잡지 발간과 관련해 순수시를 배제하자는 송몽규와 그것을 옹호하는 윤동주를 보여주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일본 유학생들의 독립운동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경찰에 체포당할 위험 앞에서 조국으로 급히 떠나자는 송몽규와, 시집 발간을 위해 하루 더 남아있겠다는 윤동주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독립운동을 선동했다는 죄목에 대해 송몽규는 자백에 응하고, 윤동주는 응하지 않은 장면이다.

송몽규가 자백에 응한 것은 모진 고문에 굴복한 것이 아니다. 독립의 도모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죄목이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는 목표다. 그는 그것을 이루지도 못했다는 한탄으로 기꺼이 거짓을 자백함으로써 이상을 선취하고자 한다. 윤동주는 독립운동을 하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자백에 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목숨과 맞바꿔 발간한 그의 시집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식민지 조선의 아픔과 고통을 더욱 절절히 느낀다.

송몽규는 유토피아를 이 땅에서 실현하려는 활동가로서, 윤동주는 유토피아가 불가능한 어두운 현실을 시로 보여주는 예술가로서 각자의 방식으로 정직한 태도를 고수했다.

예술의 본질은 그것이 가상(Schein)이라는 데 있다. 빛이 물건을 비춰(scheinen) 생긴 그림자(Schein)는 진짜는 아니지만, 오히려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빛(유토피아)을 정면으로 좇았던 송몽규의 곁에서 윤동주는 예술이라는 그림자(가상)를 통해 빛의 존재를 부정적 방식으로 환기시킨다. 예술의 사회성은 바로 그런 것에 숨어있다.

/최송아(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