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임금이 어머니 창평 출신 숙빈 최씨 극락왕생 발원하던 孝 도량 [사찰문화기행] 파주 보광사와 용미리 석불

2016년 03월 31일(목) 19:53

만세루에서 바라보이는 대웅전.

아쇼카 순례단 - 해설이 있는 사찰순례

아쇼카 대왕은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수많은 정복과정에서 저지른 살생을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했다.
재위 말년에 부처님 발자취를 순례하며 비폭력을 진흥하고 윤리에 의한 통치를 펼쳤다.

아쇼카 순례단은 사찰순례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염원한다.

아쇼카 순례단이 길을 나선 지 3년째다. 그동안 인연 있는 이들이 순례길에 동행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혼자 길을 떠나곤 했다. 여럿일 때는 부대낌이 있어 좋고, 혼자일 때는 번잡스럽지 않아 좋았다.

해가 바뀌면서 주위 분들의 성화가 만만치 않다. 순례길에 따라나서겠다는 것이다. 순례단이란 이름에 걸맞게 여럿이 동행키로 했다.

대웅전 남쪽 벽화.

그런데 하필 이달 순례지가 머나먼 파주 보광사(普光寺)와 용미리 석불이다. 남도에서 한수이북(漢水以北) 서울을 가로질러 간다는 것 자체가 고행 길이다.

그나마 길 초반부터 이야기 거리가 있어 다행이다. 시작은 장성 터널을 지날 때부터이다. 터널이 뚫리기 전, 남도에서 서울을 오가는 이들은 갈재라는 고개를 넘어야 했다.

350년 전, 갈재에서 이번 답사의 주인공인 소녀와 나주목사와의 만남이 있었다.

어린 소녀는 창평 출신 최복순. 가족이 전염병에 걸렸고, 마을에서 쫓겨나 인근 용구산 용흥사에 기거했다. 간절한 기도에도 부모는 물론 형제까지 모두 죽고 말았다. 복순의 효심과 불심이 통했는지 하루는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 갈재에 가면 길인을 만나게 된다는 현몽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고갯마루에서 기다리니 마침 나주목사로 부임하는 행차가 있었다. 신임 나주목사 부인 민씨가 복순의 영특함을 눈여겨보고 거뒀다. 훗날 민씨 집안에서 왕후가 간택되자 복순도 몸종으로 궁궐에 들어가게 된다.

이 소녀가 바로 조선 20대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이다.

파주 보광사는 숙빈 최씨 묘인 소령원의 능침사찰이다. 보광사의 본래 명칭은 고령산 고령사였다.

사적기에 따르면 894년(진성여왕 8) 영암 출신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으나 1622년(광해군 4) 복원했다. 1740년(영조 16년) 소령원의 능침사찰이 되면서 보광사로 사명을 바꾸고 대웅보전과 광응전 중수와 함께 만세루를 창건했다.

그 후 고종 때 크게 중창했으나 6·25전쟁 때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근래 들어 다시 복원불사를 마쳤다.

만세루 전경.

인현왕후를 따라 궁에 들어간 복순은 무수리였다고 전한다. 궁녀에서도 낮은 신분이다. 그러나 복순은 더 이상 천덕꾸러기가 아니었다. 어린나이에 궁에 들어가 세월이 흐르면서 궁궐의 법도를 익힌 당대 최고의 엘리트가 됐다.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인 장희빈의 질투에 인현왕후가 쫓겨났다. 어느 깊은 밤, 숙종이 궁궐을 거니는데 궁녀 처소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무수리 복순이 상을 차려 놓고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은 인현왕후의 생일이었다. 숙종과 복순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복순은 내리 아들만 셋을 낳았다. 둘째가 훗날 영조임금이 된다. 무수리 복순에서 숙빈 최씨가 됐다. 인현왕후, 장희빈을 넘어 왕의 여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신분의 멍에는 지워지지 않았다. 임금이 된 영조의 콤플렉스는 어머니의 낮은 신분이었다. 효심 깊은 영조가 정사를 펴면서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어머니에 대한 예우였다.

어실각과 영조가 심었다고 전하는 향나무.

숙빈 최씨의 묘를 원으로 높이고 가까이에 있던 고령사를 보광사로 바꿔 크게 중창했다.

현존하는 보광사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관음전·나한전·쌍세전·산신각·만세루·요사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1215년에 만든 목조비로자나삼존불과 문수·보현보살상이 봉안돼 있다. 나한전에는 1863년에 조성한 삼세불과 나반존자, 16나한상이 봉안돼 있으며, 쌍세전에는 1863년에 조성한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등이 자리해 있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영조의 친필 편액이 달려있는 대웅보전이다. 백미는 전각의 외벽 불화이다.

보광사 대웅전은 벽체가 특이하다. 대부분 흙이나 회를 바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는 판자를 이어붙였다. 판벽에는 민화풍의 독특한 불화가 그려있어 눈길을 머물게 한다.

남쪽 옆면에는 신장탱에 등장하는 위태천과 금강역사,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가 등장한다.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 오른쪽인 동쪽 외벽에서는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와 백의 관음보살을 만나게 된다.

이것만이 아니다. 법당 뒤로 돌아가면 극락에 태어나는 모습을 담은 연화화생도와 반야용선도가 자리해 있어 환희심을 일으키게 한다. 불교에서 염원하는 세상은 극락이다. 반야용선은 불, 보살이 중생들을 극락으로 이끌고 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극락은 어머니 몸을 빌어 나는 것이 아니라 연화화생도에서 보여주듯 연꽃으로 화생(化生)한다고 한다.

대웅전과 함께 6·25때 불타지 않고 남아있는 건물은 만세루이다.

사찰의 누각은 일반적으로 강당 역할을 한다. 법당은 참배만 하는 곳으로 예전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일반인은 법당 앞 누각에서 참배했다. 특이하게 보광사 만세루는 누각이면서도 큰 방으로 여럿 나눠져 있다. 방 앞뒤로는 마루가 놓여 있다. 소령원과 보광사를 찾은 왕실의 궁녀와 여인들이 법당에 들어가지 못해 이곳 만세루에 기거하며 참배하도록 배려한 듯하다.

아쇼카 순례단 지도법사 보선 스님이 회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응진전 뒤편으로 조금 올라가면 1981년에 조성한 41척(13m) 크기의 호국대불이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대불을 조성하기 전, 대웅전 부처님의 복장유물 일부를 도난당한 사건이 있었다. 남아있는 진신사리와 세계 5대주에서 모셔온 보석, 경전을 봉안하고 대불을 조성했다. 대불 앞에 서고 보니 가까이에 판문점이 있어서인지 개인의 행복보다 국태민안과 남북통일의 염원이 더욱 간절하다.

효심 깊은 영조는 평생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에 몸부림쳤다. 왕자였을 때, 어머니가 궁녀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어떤 일이었냐고 물었다. 숙빈 최씨는 세누비(옷감 사이에 솜을 넣어 기우는 촘촘하고 고운 바느질)였다고 답했다. 그날 이후 왕자는 평생 세누비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영조는 임금이 돼 어머니 묘인 소령원을 찾았다. 그리고 보광사에 어머니 위패를 모신 어실각을 세우고 옆에 향나무를 한그루 심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를 향한 영조의 마음마냥 높이 자란 향나무가 어실각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보광사 만세루 툇마루에는 길이 287㎝, 두께 68㎝ 커다란 목어(木魚)가 달려 있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고 한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목탁이나 목어는 밤낮으로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보광사 만세루 목어는 형태가 특이하다. 머리는 용의 형상이고 몸은 물고기이다(龍頭魚身). 이 목어는 처음에는 물고기였으나 차츰 용이 된다는 어변성룡(漁變成龍)의 뜻을 담고 있다. 목어의 머리가 물고기에서 용으로 변하는 것은 평범한 중생도 용맹정진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깨침의 세계가 극락 아니던가.

아마도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던 영조의 효심은 만세루 목어처럼 지금도 밤낮으로 깨어있어 계속되는 듯하다.


용미리 석불 ‘원(願)하면 이뤄진다

파주 보광사에서 자동차로 20여분 달리면 거대한 미륵석불(보물 제93호)을 만나게 된다. 서울에서 개성을 지나 평양, 의주로 향하는 경의대로 길목, 용미리이다. 중국을 오가는 이들이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무사귀향을 염원하고 싶어질 무렵이면 멀리서 부처님이 배웅을 한다. 용미리 석불은 딱 그 자리에 있다. 그것도 부모님마냥 두 분이 서서 반긴다.

용미리 석불은 거대한 천연 암벽에 조성된 2구의 불상(17.4m)이다. 자연석을 몸통으로 삼아 조각을 새기고, 두상은 따로 제작해 올렸다. 이처럼 거대한 돌에 불상을 새긴 마애불은 대부분 고려시대에 등장한다.

고려 13대 선종 때였다. 후궁 가운데 원신궁주가 왕자생산을 염원했다. 간절함이 통했던지 하루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 두 도인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우리는 장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사는데,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원신궁주는 임금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장지산으로 사람을 보냈다. 그런데 궁주의 꿈처럼 산기슭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었던 것이었다. 선종은 그 바위에 두 도승을 새기고, 밤낮으로 공양을 올리도록 했다. 그런 정성이 전해졌는지 그해에 왕자 한산후가 탄생했다.

그 후, 용미리 미륵불은 아들을 낳고자 염원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일설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모친도 이곳에서 기도했다고 한다. 훗날 대통령이 되어 이곳을 찾았다. 그런데 석불의 어깨가 허전하다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권력의 하수인들이 작은 불상과 석탑을 조성해 얹었다고 한다.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불상과 석탑은 권력이 무너지고 석불 아래 한편에 따로 모셨다.

아쇼카 순례단 해설이 있는 사찰 순례 : 4월9일 충남 계룡산 갑사-신원사 (문의 : 062-383-3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