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乞人이 그린 길 위의 그림…가난한 畵家의 지친 삶을 어루만지다 [화필여로] <88> ‘찬란한 문명의 大地’…인도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이삭 줍듯이…

2016년 04월 13일(수) 20:26

박종석 作 ‘불완전 동사’(좌). ‘박물관의 조각 여인’

살아서 숨을 쉬고 있음은 생동하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가벼운 일상에서도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생동하고 순응하면서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며 미소 짓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하층민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도 뉴델리 번화가의 릭샤꾼들과 친해지면서 정분을 쌓은 이후에 생각을 줍는다. 그 친구들은 대부분 짜이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우면서도 바싹 마른 체구에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 페달에 힘껏 밟고 손님을 태워다 주면 겨우 20루피 정도다.

인도 뉴델리 릭샤꾼 친구들과 함께…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항상 미소를 짓는 여유가 있다. 외모는 궁색한 듯 하지만 거드름도 피우지 않고 솔직담백하다. 그래서 뉴델리에서는 신분이 낮은 그들과 오래된 친구처럼 금방 친해진다.

그들은 자기보다도 더 힘들고 어려운 이웃의 현실을 알고 있기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의 깊이가 있다.

저절로 땀이 등줄기에 흐르는 뜨거운 오후 시간에는 나무도 사람도 모두들 나른해 진다. 그래도 서민들은 열심히 적응해야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불평이나 불만족은 사치다. 체념이나 달관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일할 수 있는 노동의 힘으로도 감사하다는 표정이다. 해맑은 웃음을 머금은 성자들이다.

뉴델리역 부근 도로가에 두발과 양손에 장애를 가진 한 걸인이 도로 위를 캔버스 삼아 흰색 가루로 가네쉬 신상을 그린다.

뉴델리에서 만난 길 위의 예술가.

지나는 행인들이 가끔 복을 받으려 하는지 그림 위에 몇 루피를 놓는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 앉아 있어도 겨우 10루피가 될까 의문이다. 아니 하루 식사 한 끼 벌이도 신통치 않다. 나는 그 걸인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겨우 5루피를 놓는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철없는 행동을 더듬어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거리의 화가처럼 절실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굶어서 쓰러질 위기에도 붓을 잡고 영혼을 불태우려 안간힘을 써봤는가? 내 삶은 남을 의식한 과시욕으로 겉만 치장하지 않았는가?

잠시 반문하고 1시간 후에 그곳을 지나다보니 그 걸인은 흥건한 물 바닥 위에서 허기로 지쳐 쓰러져 있었고 수많은 파리 떼가 엉켜서 무명 예술가의 육체를 괴롭히고 있었다.

처음 분필로 그리는 모습에는 청신함을 느꼈고 한 시간 후의 쓰러진 모습에는 안쓰러움을 느끼며 나와 그 걸인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남의 불행 앞에서 나는 행복하다가 아닌 서로의 염려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어느덧 화가생활이 40년을 훌쩍 넘어버렸다. 스스로 화가의 길을 정했을 때 굳게 맹세한 것이 있었다. 단순히 세끼 밥을 위해 그림을 팔아 살지 않기로 했고, 자존심을 팔아 돈 앞에 굴종당하지 않기 위해 타협하지 않고 좋은 작품을 남기자고 다짐하며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붓을 수백 번 꺾고 싶은 갈등과 자살 충동을 자주 느꼈지만 다행히도 고비를 잘 넘겨왔다. 장식성과 대중성보다는 역사성과 창작성에 중점을 두다보니 인기 없는 화가로 세월만 허허롭게 보냈다.

특히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빵점이다. 남의 피를 몰래 빨아 생존하는 빈대와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많은 후원자와 친구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왔다. 가끔 팔리는 그림을 그려 재료비 걱정은 안 할 정도로 현실과 타협하지 못했던 것을 자주 후회하곤 한다.

‘옥상의 밤 풍경’

작금의 자본주의 굴레에서는 가난한 예술가의 비참함과 불행의 종말은 동정도 인정도 용납될 수 없는 각박한 현실이다.

일부분이지만 영혼이 맑은 작품 보다는 가면을 쓰고라도 적당히 불의에 타협해서 대중을 속여 명예와 부를 쌓아야 표면상 성공한 예술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에 남은 위대한 예술가들은 대부분 아웃사이더였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고통에 순응하며 새 희망을 꿈꾸는 쓰러진 거리의 화가가 나의 시각을 다각적으로 유추하게 하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보고 느끼며 반성하게 한다.

우연한 만남이었다. 비록 자문자답이지만 현실을 앞서는 절대가치와 상상력을 부여해준 시간이었다. 눈이 시리도록 쓰라린 선명한 기억을 숙성 창고에 저장하고 난 뒤 나는 이틀이나 소요되는 열차와 버스로 북인도 산간도시 강톡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른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이삭 줍듯이 한 광주리에 가득 주워 담을 것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