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인의 재주복주(載舟覆舟) 본사 사장 ssnam48@kjdaily.com

2016년 04월 20일(수) 19:34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

4·13총선 흥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총선 결과를 놓고 분분하다. 각 당은 아전인수 해석과 변명을 하고 있다. 필자는 일주일간 정치평론가와 각 정당이 쏟아내 놓은 갖가지 설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해 필자가 호남정치복원과 관련해 야당의 다당구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할때, 야당이 분열하면 여당에 필패해서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신당을 만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향해 ‘정권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 대역죄인’이라고 집중포화했다. 그때 필자는, 야당의 다당구조는 호남 정치복원 뿐 아니라 한국정치발전에 큰 도움이 되며 야당 상생효과가 있을 것이란 논리를 전개한바 있다. 자, 선거결과 필자의 주장대로 국민의 선택은 현명했고, 호남정치는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러나 선거후, 3당이 내놓은 견강부회는 역겹다. 그 중 가장 웃기는 책임회피용 분석은 얼토당토않은 지지율 제시다. 어디서 몇 표 얻었으니 우리가 몇 등이고 그 정도면 지지를 얻지 못한 것도 아니며, 바람을 탄 것이지 시민이 지지를 거둔 것이 아니다, 식의 아전인수를 보면, 제 정신인가 싶다. 있는그대로의 국민표심, 있는그대로 나타난 시민표심을 받아들이지 않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유권자를 유행병 걸린 바보로 분석하는 것은 아직도 정신못차렸다는 증거다. 심지어 각 정당은 정치부 기자들의 사전 분석에 문제가 있었다는 언론 비판까지 하고있다. 언론이 ‘정치가 썩었다’고 비판할때는 콧등으로 듣더니 언론이 사전 분석을 잘못해서 정당이 속았다는 논리는 초등학생만도 못한 남 탓이다.

물론 다음을 위해 이런저런 해석과 평가는 해야한다. 그러나 제대로 하라. 이번 선거가 한국정치발전에 기여할만한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호남정치복원 열망의 표현이다. 호남에 산 사람들과 800만 호남향우들이 만들어낸 야당승리는 거의 혁명수준이다. 수도권 호남향우들이 전략적 선택을 통해 더민주당을 1당으로 만들고 국민의당을 2야당으로 만들어, 제1당을 제3당이 견제하도록 구도를 만들면서 여당인 새누리당에 참패를 안겨준 것은 정말 놀랍다. 이런 바람을 타고 대구와 부산에서 더민주당이 약진해 대구에서 더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당선되고 부산에서도 더민주당이 약진한 것은 반란이다.

이게 ‘호남의 힘’이다. ‘국민의 지혜’이며 ‘시민정치의 승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존재감 없던 호남정치는 4·13총선 결과로 완벽하게 부활했다. 각 언론은 3당 체제에서 ‘호남정치인 전성시대’까지 예고하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총선 참패로 당내 내분이 커진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호남 출신 김황식 전국무총리를 거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4선의 고흥출신 송영길 의원이 당권 도전에 나서고, 전북 출신 정세균의원도 거론되고 있다. 호남1당으로 부상한 국민의당 역시 4선 이상 중진의원들이 대거 포진돼 당권경쟁에 사설 것 같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인물이 없다며 각 당의 핵심에 호남 사람이 전무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풍속이다. 그러나 이런 호남정치인들의 높은 주가는 호남 정치인이 만든 환경이 아니다. 호남인의 높은 정치의식과 호남향우의 지혜가 만들어준 판이다. 만약, 호남출신 정치인들이 이런 좋은 분위기를 자신들의 능력 때문이라고 판단한다면 바로 호남인은 애정을 거둘 것이고 심판을 매섭게 할 것이다. 지금 호남정치인에게 다가온 절호의 흥행 기회는 ‘시민정치의 결과’다. 따라서 자신들이 시민정치를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정치는 당신들이 뽑아준 내가 한다’며 권력을 탐한다면 그 즉시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이제 호남정치는 4·13총선 이후 대한민국 정치 판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 대구와 부산 울산의 지방지를 보면 놀라운 분석이 많다. 영남지역 언론은 새누리당의 참패는 ‘전근대적인 당 운영과 정치적 명분 가치를 잃은 것이다’고 분석했다. 기득권에 안주해 스스로 비판기능을 잃어버린 영남지역의 정치문화도 비판했다. 그러면서 울산에 있는 경남일보 정명숙 논설실장은 ‘울산정치도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울산에서도 새누리당은 정당득표율에서 36.69%밖에 얻지 못했다. 63%의 유권자들이 비(非)새누리당을 지지했다. 무능정치를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울산시민들의 심판이었다.

호남에서 시작한 ‘다양한 정치’는 이제 대구 부산 울산 대전 인천에서도 그 바람이 불어 한국정치가 건강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가장 먼저 ‘다양한 정치’ 화두를 던져 새로운 정치환경을 만든 호남은 이제 어떤 정치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악습이 남아있다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시대착오적 권력정치를 버리고 시민에게 답을 구해야 한다. 오만과 무능의 이미지를 하루빨리 씻어내고 현명한 인재를 등용해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구태를 버리고 선택해준 시민들의 진심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파커 J. 파머는 ‘비통한 이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정치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연민과 정의의 직물을 짜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릴 때 우리 가운데 가장 취약한 이들이 맨 먼저 고통을 받는다. 그들이 고통을 겪을 때 우리 민주주의의 성실성도 고통을 겪는다’고 말했다. 지금 많은 서민이 나쁜경제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모든 사람을 위한 연민(憐憫)과 정의(正義)의 직물을 짜는 정치’를 버렸기 때문이다.

4·13이후 새롭게 전개된 호남정치의 기회는, 호남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기회가 아니라 ‘호남인에게 정치의 지혜를 빌리라는 신호’다.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