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生’의 지방 가치…마케팅으로 활로 찾자 ['지역마케팅'의 힘]<1>프롤로그 동일 자원 바탕 더 높은 가격·평가 이끌어낼 방안 ‘단타’ 아닌 지속가능 발전·지역민 행복 연계 관건 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

2016년 04월 25일(월) 19:17

순천만정원은 대표적인 지역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순천만을 배경으로 2013년 4월20일부터 10월20일까지 6개월간 열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440만명이 넘는 국내외 관람객이 몰리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박람회 이후 사후 활용도 탁월하다. 순천만정원은 지난해 9월 대한민국 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으며 순천지역 관광 트렌드를 바꾸는 단초로 작용하고 있다. 새로운 관광자원이자 순천시민의 ‘허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김애리 기자 kki@kjdaily.com

우리 사회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극명하게 엇갈린다.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의 무게 중심이 수도권에 치우쳐 있다. 지방이 수도권보다 비교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관광분야다. 하지만 이마저도 인프라가 완비된 수도권에 빼앗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방이 갖고 있는 가치는 여전히 ‘미생(未生)’이다.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각 지자체가 발버둥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벽’에 막혀 있다. 해법을 찾기 위해 광주·전남 지자체가 ‘지역 마케팅’에 눈을 뜬 건 다행스럽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조금씩 변화의 단초도 감지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언제까지 ‘낙후’ 탓만 할텐가

항상 우리 지역에서 나오는 하소연은 낙후다. ‘낙후됐기 때문에…’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낙후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십 년간 정부의 산업화 정책에서 광주·전남을 축으로 한 서남권에는 그 어떤 성장동력도 배치되지 않았다. 1970-1980년대에는 압축적인 산업화란 명분으로 모든 지원이 ‘영남축’에 쏠렸다. 1980년대 이후에도 반도체·자동차·이동통신 등의 산업이 수도권과 충청권에 집중됐다.

호남의 지지를 등에 업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반짝’ 추진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를 거치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실상 균형발전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광주·전남의 낙후가 현재진행형인 가장 큰 요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낙후 탓맛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낙후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차별화 없는 아이템 한계 분명

광주·전남 지자체는 지역의 발전동력을 찾기 위해 기업·투자 유치에 매달리고 있다. 구조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활로를 찾겠다는 의도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적지 않은 수의 기업이 우리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일자리 창출도 눈에 띈다. 지자체가 기업·투자 유치에 힘을 쏟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접근 방식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지역 특성과 동떨어진 기업 유치가 과연 해당 지역에 좋은 영향만 주고 있는 지는 미지수다. ‘옆 동네가 하면 우리도 해야 한다’는 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전남도가 수천억원을 들인 F1코리아그랑프리는 실패한 마케팅의 전형이다. 국내 모터스포츠 기반이나 수요에 대한 명확한 분석 없이 무턱대고 개최한 F1은 참담한 결과만 낳았다. 대회는 중단됐지만 F1이 남긴 부채는 여전히 전남 지역을 옥죄고 있다.

◇우후죽순 지역축제 효과 ‘글쎄요’

차별화 없는 지역 축제는 소모전에 가깝다. 민선 자치 부활 이후 각 지역마다 축제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단체장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아이템이다. 물론 지역을 홍보할 수 있고 단발성이긴 하지만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된다는 점은 분명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현재 전남에서 열리는 지역축제(전남도 관리 축제 기준)만 46개다. 마을별 소규모 축제를 제외한 만큼 실제 축제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1년 중 단 몇 일의 축제를 위해 수십억원의 주민 혈세를 쏟아붓고 있다. 비용 대비 효과를 냉철히 따져 보면 그만한 값어치를 못하는 축제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수십만의 인파, 지역경제 파급효과 등 상투적 홍보효과 외에 지역 발전에 어떤 모멘텀이 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벌여놓은 ‘축제판’에 비해 수확이 만족스럽지 못한 셈이다. ‘지역마케팅’을 효율적으로 펼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에 위치한 KIC(Korea International Circuit) 전경. 전남도는 F1코리아그랑프리 개최를 위해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KIC를 건설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 4번의 대회만 치른 뒤 2014년부터 F1은 개최되지 않고 있다. 전남도의 F1 개최는 실패한 지역마케팅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광주매일신문DB

◇돈을 끌어들이는 지역 마케팅

2010년 유럽 취재를 다녀온 적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스위스 루체른의 ‘KKL’이다.

KKL은 F1코리아그랑프리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사업비가 들어갔다. KKL을 짓는 데에만 1천600억원이 투입됐다. 인구 7만의 작은 도시 루체른 입장에서 1천600억원은 천문학적인 예산이다.

루체른은 철저한 사전 준비와 분석 작업을 통해 KKL을 기반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지역마케팅에 ‘올인’했다. 그 결과, 2000년 문을 연 KKL은 국제문화도시 루체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한해 벌어들이는 관광수입만도 700억원이 넘는다.

관(官)의 일방통행식 사업이었던 F1코리아그랑프리와 다른 점은 KKL의 경우 바로 행정과 예술가, 시민들의 합작품이라는 점이다.

강원도 영월 역시 ‘박물관 도시’ 정책으로 진일보한 마케팅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박물관을 영월군에 설치해 관광객을 유인하고 있다. 타 지역에 비해 비교우위의 자원이 없는 영월군의 유일무이한 생존전략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민 삶의 질 향상에 초점 맞춰야

그렇다면 지역을 어떻게 마케팅할 것인가. 지역 마케팅은 지역의 가치를 높여 제 값, 아니 더 높은 값을 받아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광주·전남 지자체의 경우 지역 마케팅 고민은 꾸준히 이뤄져 왔지만 지속 가능 발전에는 실패했다. 대부분 ‘단타’ 위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민 삶의 질을 높이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의문이다.

이제 지역 마케팅은 주민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단순한 관광객 증가가 아닌, 궁극적으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삶의 행복과 직결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최근 문을 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비근한 예다. 수조원이 투입된 아시아문화전당이 광주시민들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이 전당을 활용한 ‘광주마케팅’이란 첫 시험대를 어떤 방향으로 풀어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현재 광주·전남은 변화의 시기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도약과 낙후의 갈림길 위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마케팅’에 초점을 맞춰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동일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얼마 만큼의 가치를 뽑아낼 수 있느냐의 여부는 마케팅 전략·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즉, 접근방식이 중요하다.

‘지역마케팅’의 힘과 지역내 시행착오 및 성공사례, 그리고 ‘지역마케팅’의 지향점 등을 기획 시리즈로 싣는다./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