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 깜박’ 별빛 잠든 검푸른 밤하늘에 마음속 조각배 하나 띄우고… [화필여로] <89> ‘찬란한 문명의 大地’…인도 홍차의 향기로 스민 여유의 다질링

2016년 05월 11일(수) 19:20

박종석 作 ‘저녁식사 후에’

약간만 보이는 북인도 설산의 쾌청한 아침이 어린 시절 소풍 나들이 전 날처럼 좋다. 그리고 하늘이 유난히 맑은 이유는 나만을 위함인 듯싶다. 창문 넘어 살포시 처녀의 살결을 보여주듯 칸첸중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도심의 앞산 아래와 사람 사는 동네 위, 짙푸른 녹음 위로 웅장하게 하얀 산 꼭데기가 우뚝 서있다. 기분이 참으로 상쾌하다.

2003년에 이곳 다질링에 와서도 구름과 가스 때문에 칸첸중가의 모습을 쉽게 보지 못했던 아쉬움을 시원스럽게 보며 그림으로 그의 자태를 어루만지듯 순간 여러 점 그린다. 10일간을 강톡과 다질링에서 산책하며 소박한 사람들의 삶터에서 그간의 때 묻은 마음을 씻어보려 애를 써본다.

산간의 삶터, 전기불이 자주 꺼지는 불편함이 있지만 깊은 밤에 보이는 불빛은 짙푸른 밤바다을 항해하며 보는 별빛과 같다.

또 해거름의 하늘은 수묵을 바림한 후 몇 개 달린 홍시처럼 붉은빛의 잔영을 남겨 놓는다. 이곳의 삶터는 하늘과 지상을 연결해주는 중간세계로 착각하게 한다. 짙은 밤의 자욱한 안개는 나를 구름 위에 있게 하고 신비와 상상력을 흠뻑 싹트게 한다.

다질링에서부터 동행한 일본여행친구들과 함께….

대낮의 숙소 바로 아래에 풍경은 참으로 보기에 좋다. 아마도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있는 중인 것 같다. 5층 건물인데 젊은 노무자와 목수가 종일 웃어가며 농담도 하고 재래식 노동방법으로 나무판을 맞추고 구부러진 못을 펴서 다시 못질하고 수평을 맞춰 뚝딱뚝딱 하는데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조금씩 이뤄내는 과정을 보면서 답답함보다 가장 여유로운 합리성과 자연성을 느끼게 한다. 그러한 모습은 경쟁이나 도전이 없는 그저 삶의 몫을 충실히 실천하는 최선의 모습이다.

‘캉첸중가의 자태 Ⅰ’

공사 기간을 단축시켜 큰돈을 벌기위해 감독하는 살벌함은 애초에도 없는 듯하다. 아마도 기초공사부터 5층까지 수년 걸쳐 차곡차곡 벽돌을 쌓았을 느낌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그래도 노고가 쌓여 이룩된 건물이다. 아마도 완공까지도 수개월 걸릴지 알 수 없다. 다른 운집된 건물도 그렇게 완공 되었으리라….

저녁식사 후 밤이 되자 구름사이로 불빛이 반짝이며 짙푸른 바다 위에 반영된 별빛을 보는 느낌이다. 머리 숙여 깊게 내려다보는 밤하늘이다.

‘캉첸중가의 자태 Ⅱ’

나는 헤드랜턴에 의지해 스케치를 한 후 귀국해서 그 잔상을 쪽 빛색 대작으로 옮겨 완성 시켰다. 제목은 ‘저녁식사 후에’로 명명했는데 아름다운 북인도 자연과 홍차 향 가득한 사람들의 여유가 흠뻑 적셔 있다. 그래서 작품을 보고 있으며 밤바다에서 별빛을 보는 느낌이다.

단순한 풍경 이전에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의 여유가 나의 마음을 더 한가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각박하게 쫓기듯이 달리며 사는 우리의 모습에는 해찰을 피우며 밤하늘의 별빛을 볼 여유가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인도에서 자살율이 거의 없다. 이유는 부족한 살림살이이지만 불필요한 것에 욕심을 내지 않기 때문인가 싶다.

‘캉첸중가의 자태 Ⅲ’

네팔의 제2의 도시, 포카라의 사랑콧에서도 아주머니와 아이들이 할 일없이 하루를 보낸 듯하지만 자기의 할 일을 다 한다.

나는 그 자연 안에 그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몇 년 전에 과년한 딸 둘과 함께 북인도와 네팔 그리고 태국을 장기간 여행하면서 수많은 인연을 맺고 귀향했다.

아마도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마음공부를 많이 한 여정으로 삼나무 숲길을 천천히 산책하듯 허심하게 걷고 웃을 일을 많았던 특별한 가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