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띠의 솔 숲길에서 ‘나’를 보다…無等의 솔 숲길에서 ‘나’를 찾다 [화필여로] <90> ‘찬란한 문명의 大地’…인도 남인도 솔 숲길을 따라 걷다

2016년 05월 18일(수) 18:11

박종석 作 ‘여명(黎明)’

고도가 높은 남인도 우띠에서 파인츄리를 하루 동안 산책한다.

외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15명이 한 팀으로 야생의 짐승들을 볼 수 있는 해발 2천m 이상인 원시림의 정글지역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초입에 해당되는 파인츄리는 열대성 기후에 직목(直木)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넓은 소나무 숲길이다.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가 오염되지 않는 호수를 보고 돌아오는 하루 투어 코스다.


산책하면서 느낀 솔 숲길이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 여운이 왠지 허허롭고 단순하다.

문득 내 조국 산하의 불굴에 상징인 소나무가 떠오른다. 혹한 시련과 한설에도 푸르름을 꿋꿋하게 지탱한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지 않았는가? 조선의 금강송이나 홍송 같은 자부심을 갖게 한다.

남인도 우띠 외곽 ‘시골마’에서 조각가 김숙빈님과….

나는 80년대 초반부터 줄곧 등산에 관심이 많아 산을 많이 찾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짧은 시간을 이용해서 체력단련과 행선(行禪), 약수 등, 일거삼득(一擧三得)으로 10년 동안 야간산행으로 무등산 용머리의 약수를 떠오기 위해 증심사 뒤편 소나무 숲길을 따라 굽이도는 오솔길을 홀로 오르내리곤 하였다.

밝은 달밤이라도 숲속은 칠 흙 같은데 희미한 밝음을 찾으려는 본능이 내 마음에 내재돼 있음을 자주 확인한다.

못생긴 소나무 숲속에서 맑은 기운을 느끼면서도 왠지 모를 두려움을 간직하고도 담력을 기르며 올랐다. 좋은점은 모든 근심과 잡념이 일시에 사라짐을 관찰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띠의 솔 숲’

우리나라 전형적인 소나무와 솔가지의 모습은 거친 듯 못생겼지만 북풍에도 인고(忍苦)하며 푸르른 기개를 꺾이지 않은 조선시대 충신 같은 상징으로 각인돼 있기에 선비들이 매우 사랑한 나무다.

추사 김정희는 절해고도(絶海孤島) 제주의 유배지에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던 때에 변치 않는 마음을 건내준 이상적에게 답례하고자 소나무와 잣나무의 한결같은 푸르름에 비유해 불후의 명작 세한도(歲寒圖)를 남기지 않았던가!


야심한 시각의 산행, 긴 터널 같은 솔 숲은 고요해서 간혹 낙엽 한 잎만 떨어져도 머리끝이 쭈뼛하게 선다.

순간 아무런 분심(分心)없는 팽팽한 긴장의 찰나다. 잡념이 없는 순간들이 연속이지만 밝은 지점에 도착하면 어떤 두려움의 족쇄에서 해방된 듯 편안한 느낌이다.

‘우띠의 석양’

일주일에 한 번씩 그러한 경험을 몇 년 지속하면서 솔숲 그림을 많이 다루게 됐다. 어느 날 오후에 문득 늘 지나치던 한 지점의 솔숲 길을 그리고 싶다는 충동에서 몇 시간 만에 완성한 작품이 한 점 있다. 바로 ‘여명(黎明)’이라 제목을 붙인 역광의 소나무에 오솔길을 그린 그림이다.

80년대 광주의 어두운 아픔과 희망의 빛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솔 숲길이다.


남인도의 숲에서 나른하게 쳐져있는 솔잎을 따서 만져보니 가늘고 길어 힘이 없고 부드럽다.

지형과 기후 그리고 풍토의 영향으로 그 지역의 자연스러운 수종이지만 씹어보아도 솔잎향이 없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실감한다.

‘우띠 폭포’

해찰과 관찰은 목적 없는 시간 여행에서 피울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하찮은 것이지만 나는 늘 직접 체험하면서 응축된 그 무엇을 발견할 때 한 점의 작품으로 환원됨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