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분석·전략 부재 ‘참혹한 실패’ 재정 부담만 [지역마케팅의 힘] <3>막무가내 추진 F1 좌초 1조원 물량공세 4번 개최후 철수…누적적자 2천억 J프로젝트 선도사업 명분 불구 투자 유치 도움 안돼 실패원인 분석 통해 지역 대형사업 반면교사 삼아야 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

2016년 05월 23일(월) 20:00

영암군 삼호면 간척지 위에 덩그러니 자리잡은 KIC(Korea International Circuit)는 잘못된 정책 판단의 산물이다. F1 대회 개최를 위해 총 1조원에 가까운 사업비를 투입해 놓고도 2010-2013년 4년간 누적 적자만 2천억원에 달하는 등 열악한 전남도의 재정을 옥죄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결국 전남을 마케팅하지도 못한 채 오히려 지역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단초로 작용한 셈이다. /김애리 기자 kki@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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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 삼호면에 있는 KIC(Korea International Circuit)는 F1코리아그랑프리 개최를 위해 건설된 자동차경주장이다. 이곳에서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차례 F1 대회가 열렸다. F1 대회는 1년에 단 3일(연습경기 1일, 예선 1일, 결승 1일)만 개최됐다. 전남도는 경주장 건설에 4천억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개최권료와 SOC 등을 더하면 투입자금은 1조원이 훌쩍 넘는다. 현재 KIC에서 F1은 멈춰선 상태다. 전남도가 사실상 F1 개최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각종 소규모 대회와 임대사업 등 KIC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지만 연간 30억-40억원에 불과한 수입으로는 적자 축소는 커녕, 현상 유지도 어렵다. 면밀한 분석이나 전략 없이 ‘허황된 꿈’에서 출발한 F1 사업이 ‘참혹한 실패작’으로 전락한 셈이다.

전남도청 전경.

◇정책 오판 혈세 수천억 ‘빚더미’

3선 임기 내내 F1 개최에 ‘올인’했던 박준영 전 전남지사는 ‘2014년 F1캘린더’에서 한국이 배제된 직후인 2013년 12월 5일 기자회견을 통해 F1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F1 주관사인 FOM(Formula One Management)에 개최권료 추가 인하를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아서다. 박 전 지사는 “재정 부담이 늘어난 점에 대해 도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엄청난 재정 적자에 대한 사과가 아닌 유감 표명 수준의 언급으로 아쉬움을 줬지만 정책 오판의 결과를 자인한 순간이었다.

행정기관과 단체장의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는 F1을 통해 알 수 있다. 전남도는 F1 경주장 건설에 4천128억원을 투입했다. 이를 위해 2009년 868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2010년엔 경주장 진입도로 개설 목적으로 127억원의 빚을 더 냈다. 이어 2011년엔 F1운영 민간기업이었던 KAVO가 사업에서 배제되면서 전남도가 직접 대회 운영을 시작한다. 전남도는 F1경주장 인수를 위해 1천98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F1사업을 위해 발행한 지방채 총규모만 2천975억원에 이른다. 박 전 지사 임기 중 발행한 지방채 8천417억원의 35.3%에 달하는 액수다. 여기에 전남개발공사가 2011년 F1 부지 매입 목적으로 발행한 공사채 300억원까지 합하면 F1 지방채 규모는 3천275억원까지 치솟는다.

2011년 지방채 1천980억원의 경우 원금 이외에 납입해야 할 이자만 975억600만에 달하자 전남도는 2012년 50억원, 2013년 700억원 등 750억원을 자체 예산으로 조기 상환했다. 나머지 1천230억원은 2013년,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지역개발기금(이율 3.0%)으로 차환했다. 이에 따른 이자 부담액은 363억4천500만원이다. 진입도로 지방채 이자까지 총 400억원이 넘는 예산이 이자로만 날아간다는 이야기다.

◇4차례 대회 손실액만 2천억 육박

전남도가 4차례 F1 대회를 개최한 뒤 남은 것은 엄청난 적자다. 2010년 725억원, 2011년 610억원, 2012년 386억원, 2013년 200억원 등 총 1천921억원에 달한다. 2012년과 2013년 적자 폭이 감소한 것은 국비 지원과 개최권료 인하 덕분이다.

당초 코리아그랑프리 1년 개최권료는 4천373만 달러다. 단 3일 대회 개최에 매년 500억원이 넘는 혈세를 FOM에 넘겨줬다. 2013년 대회 때는 협상 끝에 2천700만 달러 수준으로 깎았다. 전남도는 이를 바탕으로 2014년 대회 개최권료를 2천만 달러까지 인하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FOM은 대회 개최 중단이란 초강수를 뒀다.

결국 7년 계약 기간을 다 채울 경우 추가 적자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전남도도 대회를 중단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7년 계약을 모두 채웠다면 누적적자는 2천500억원이 넘었을 것이라는 게 전남도 관계자의 설명이다.

◇막무가내식 개최 실패한 마케팅

지역 마케팅 측면에서 F1은 열리지 않았어야 했다는 게 중론이다.

우선 접근성이 최악이다. 차량으로 이동할 경우 KIC까지 전남도청이 있는 남악신도시에서 20분, 광주에서 1시간, 서울에서는 5시간 가량 소요된다.

고급 숙박시설이 부족해 외국 취재진과 관광객들이 ‘러브호텔’을 이용할 수 밖에 없어 불편이 컸다. 국내 레이싱 매니아를 100만명 정도로 추정하는 데 이들이 멀고 먼 남도 땅으로 수백만원을 들여 찾아올 것이란 기대 자체가 넌센스다.

고가(최대 1장 당 90만원선)의 티켓은 지역 기업과 기관·단체, 공무원 등에 떠넘겨졌다. F1 티켓을 잘 파는 직원이 인사상 혜택을 받는 코미디같은 상황도 벌어졌다.

게다가 서남해안관광레저도시(J프로젝트) 선도사업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투자유치의 지렛대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애시당초 철저한 마케팅 분석이 이뤄졌다면 F1 대회는 개최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초 특집 기사를 통해 “투입한 재정 대부분이 공적 자금인 영암 F1대회는 애초 시작부터 잘못된 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F1 준비 단계였던 2007년 초 국회 예산정책처와 정부 연구기관들은 한결같이 “전남도의 예상 수입이 과장돼 있다”고 경고했지만 박 전 지사 등 전남도 수뇌부는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였다.

결국 F1을 통해 전남을 마케팅하기는 커녕, 오히려 좋지 않은 지역 이미지만 심어준 꼴이 됐다.

◇위약금 협상 별개 책임소재 가려야

F1은 추진 과정에서 대회 중단에 이르기까지 행정·예산·마케팅 등 전 분야 낙제점을 받아야 마땅하다. 2014년 취임한 이낙연 전남지사는 F1 문제에 대해 ‘영리한 퇴각’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FOM과의 위약금 소송도 계속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회 중단, 위약금 소송보다 더 중요한 것은 F1이 왜 실패했는지를 명명백백히 밝혀내는 일이다. 여전히 F1 관련 자료들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회계 측면의 정밀 분석도 없었다. 어떤 시점의, 어떤 결정이 현재와 같은 결과를 만들었는지 처절한 반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 그래야만 광주·전남 지방자치단체의 무책임한 사업 추진을 막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많은 지자체가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지역마케팅을 접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F1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지역마케팅이 허황된 꿈을 쫓기보다 현실적인 분석을 통해 지역 자원의 가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KIC 매각 등 근본적인 적자 해소 방안 마련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전남도의 한 관계자는 “F1 초기 일단 개최하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했던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라며 “치밀한 마케팅 전략 없이 특별법 제정, 국비 지원 등에만 의존하려고 했다”고 말했다./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