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治,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권명숙의 인문학 산책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외래교수

2016년 05월 26일(목) 19:07

국가의 주인이어야 할 국민들이 궁민(窮民)이 돼가고 있는 현실이다. 도심에서 얼마간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나는 요즘 밤 외출하기가 겁이 난다. 소심한 성격 탓도 있지만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상점의 곳곳이 비어 있는 데다 지나는 행인들도 많지 않아 왠지 모르게 동네가 스산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상공인들은 하나같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서민들 중에는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마땅히 누려야 할 의료 혜택을 포기한 세대도 많다. 이와 더불어 국가 경제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 조선과 해운업계에서도 구조조정의 회오리가 거세게 불어 닥칠 조짐이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4·13 총선을 통해 선출된 민의의 대변자들과 이 나라 정치 지도자들은 과연 무슨 일을 먼저 해야 할 것인가? 고대 관중(管仲)의 정치에서 그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중국의 춘추시대가 전개될 즈음, 변두리 소국에 불과했던 제(齊)나라는 관중이라는 한 재상의 등장으로 인해 제후국들의 패권을 차지하며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그의 정치 철학은 ‘관자(管子)’라는 책에 남아있는데, 그 핵심은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을 둔 현실정치의 실천이었다. 그는 정치의 요체가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잘살게 하는데 있음을 인식하고, 거기에서부터 출발해 정치적 과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이를 위해 대부호들의 수탈을 방지하면서도 유통을 촉진해 가난한 자들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창고가 가득해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倉?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는 한 구절로도 그가 민생경제를 얼마나 중요시 여겼는지 알고도 남는다. 또한 그는 위정자들의 책무가 국가의 재정을 지키는 데 있다고 일갈했다. 대외적으로는 대의명분을 앞세운 이상정치를 내세웠지만 정확한 국제정세의 파악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철저하게 자국의 실리를 도모한 전략 정치를 구사했다. 이처럼 탁월한 관중의 정치적 지도력은 험난했던 그의 인생역정에서 다져진 결과였다.

관중은 어려서부터 장사를 했다. 노모를 모시고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야 했기에 때로는 동업자인 친구 포숙아(鮑叔牙)를 속이며 이윤을 더 챙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성인이 돼 출세에 뜻을 두어 권력에 줄을 섰지만 패권다툼에 패배하는 노선이 되면서 죽을 운명에 처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인생의 굽이굽이를 돌아 그는 마침내 한 나라의 재상이 됐고, 성장하면서 체득한 현실적 감각은 위대한 정치력으로 빛을 발했다.

이러한 관중을 두고 유가의 성인인 공자(孔子)조차도 “관중이 천하를 바로잡아 그 혜택이 오늘날까지 백성에게 미치고 있으며, 그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오랑캐의 풍습을 따르게 됐을 것이다.(管仲, 一匡天下民到于今受其賜, 微管仲吾其被髮左?矣)”라고 그의 업적을 인정했다.

조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주구장창 의(義)를 외치는 맹자(孟子)는 “한 그릇의 밥과 국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을 절대 절명의 순간에도 예를 차리지 않고 함부로 주는 것은 결코 받지 않을 것이다.(一簞食一豆羹得之則生弗得則死, ?爾而與之行道之人弗受)”라고 주장하는데, 나는 이 구절을 대할 때마다 의문이 생긴다. 맹자는 과연 죽을 만큼 굶어보았던 사람이었을까?

오늘날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 3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경제 대국이라고 한다. 이 경제대국의 국민들이 가정경제로 인해 불안한 삶을 살지 않도록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서민 경제의 실정을 직시해주기를 고대하면서 2천700여년 전의 인물인 관중을 생각한다.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