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는 날마다 축제…경계 허물고 음악으로 하나되다 [이영미의 파리문화기행]<4> 파리 음악 축제 도시, 축제의 봄이 되다 |
| 2016년 06월 09일(목) 1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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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이 되니 거리마다 축제의 깃발이 꽃잎과 함께 흩날린다. 프랑스와 한국의 봄 모두 축제의 한가운데 있는 듯 하다. 햇살과 바람이 마냥 좋고 화려한 꽃들에 눈이 행복한 봄날, 도시에 감도는 축제의 기운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한다.
특히 프랑스에서 5, 6월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가 개최되는 달이다. 5월의 칸느 영화제부터 같은 곳에서 6월 초에 열리는 세계 최대 음악마켓인 미뎀 페스티벌(Midem Festival_2016년에는 국카스텐, 이루펀트 등 4개팀 참여), 그리고 1982년 파리에서 시작한 이후 현재 많은 나라가 동참하고 있는 6월 21일 음악축제(Fete de la Musique)가 있다. 이 외 작은 규모의 축제까지 프랑스에서는 매월, 매주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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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일상에서 억압됐던 개인의 욕망과 일탈 충동이 해소되는 장’으로서 축제에 주목했다. 미국의 신학자 하비 콕스는 ‘인간을 호포 페스티버스(homo festivus), 즉 축제하는 인간’이라고 하였으며, ‘축제는 일상과 비일상, 이성과 욕망이 만나 개인과 공동체가 경험과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중요한 계기’라고 봤다.
전통사회에서 축제는 파격적인 탈일상성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계급과 성별, 편견 등 사회적 장치에서 벗어나 광적인 욕망의 발산과 기존 사회질서의 전복을 통해 환상을 꿈꾼다.
더불어 집단 엑스터시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장이었다. 이때 관람자와 축제의 주체자의 구별 없이 함께 즐기는 장이 된다.
그러나 현대축제는 전통축제가 변형되면서 제의적 측면은 사라지고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집단의 사회, 문화,역사적 맥락과는 괴뢰를 보이고 문화산업적 측면이 강조됨에 따라 축제는 점차 스펙타클화 됐으며, 관람자와 주체가 명확하게 분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1982년에 출발해 현재까지 매년 개최되는 음악축제는 20세기 후반에 탄생한 현대축제이지만 상업적이고 합리적인 가치를 지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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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관람자와 주체의 구분이 없이 모두가 축제의 주체이며 관람객이라는 점에서 다른 현대축제들과는 차별성을 보인다.
■ 축제의 과잉_탈일상성이 거세되다
현재 한국사회는 축제 과잉 시대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축제는 사람들의 일상으로부터 일탈하려는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갈수록 양적으로 성장하고 상업화 되어가는 축제의 홍수속에서 질적인 측면은 약화되고 축제 본질은 굴절되어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채 벽을 맞닥뜨리게 됐다.
최근 몇년 사이 한국의 음악축제는 민, 관의 지원과 대중적 관심을 바탕으로 급성장했다. 각종 대중매체의 오디션 프로그램 및 기성 가수들의 경연 프로그램으로 인해 음악은 보다 우리의 일상과 가까워졌고 특정 장르에만 편중돼 있던 관심은 다양한 음악 장르로 확대되면서 수많은 뮤직 페스티벌이 개최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현재 빈곤을 넘어서 지나친 과잉이라고 할 정도의 많은 축제가 기획되고 있지만, 정작 일상의 탈출을 시도하는 축제의 본질은 퇴색되고 뮤지션과 그들을 구경하는 관람객만 존재하는 불친절한 스펙터클이 돼버렸다.
축제란 시공간적으로 파편화됐던 인간이 속세의 삶에서 벗어나 타인과 세계를 마주하고 서로가 즐거운 체험이 이루어지는 통합의 장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프랑스에서 열리는 매년 6월 21일 음악축제는 집단의 통합이 이뤄지지 못한채 거세된 일탈성의 문제에 봉착한 현대축제가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어떻게 지형을 다시 그려야 할지 과제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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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부터 매년 6월21일이 되면 프랑스 거리는 음악으로 가득찬다. 도시 공간, 거리의 모든 곳이 공연장이다.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누구도 예상 하지 못했던 큰 호응을 얻은 프랑스 음악축제는 문화 장관 자크 랑(Jack Lang)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시 미테랑 대통령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자크 랑은 부임하자마자 문화부 예산을 두배로 증액시켰다. 그의 지휘 하에 문화부의 영역은 예술의 영역으로 고려되지 않았던 여러 소외된 분야까지 시선을 확장시켰다. 당시 예술의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였던 가요, 재즈, 락, 만화, 요리, 서커스, 거리예술, 의상 등 주변에 머물던 문화, 소수들의 문화도 예술의 영역으로 포함되면서 문화의 보편성이 강조됐다. 이렇게 포함된 예술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행된 정책 중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 받은 것이 바로 ‘음악축제’이다.
음악축제는 1982년 파리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전 세계로 파급돼 2015년도에는 120여개국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음악축제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 2014년 109번째 참가국으로 가입하였으며, 서울은 727번째 개최 도시가 됐다. 이후 한국에서도 6월21일에는 서울에서 ‘열린음악의 날’로 지정돼 다양한 음악을 만날 수 있다. 현재 2015년에는 120여개 참가국으로 확산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관련 축제들이 있지만 프랑스의 음악축제만의 중요한 특징은 행사 주관 조직인 ADCEP(Association pour le Developpement de la Creation, Etudes et Projets) 아래 많은 나라의 조직 위원회들이 이 행사 참여를 위해 자발적으로 가입하고 또한 각 나라의 축제 실황 정보가 서로 공유,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기구는 유럽 담당과 비유럽 담당 부서가 있어 국내 및 국외 지역의 음악축제를 조정하며, ‘음악헌장’을 통해 축제에 참여한 모든 국가들이 이를 준수할 의무를 제시한다. 참여 도시의 축제조직위원회는 예산은 지원하되, 철저히 수익성의 목적을 배제하고 살아있는 음악의 연주를 발전시킬 책임을 져야 한다
프랑스의 음악축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메세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축제가 상업적으로 변질되거나 제도권의 그늘 아래 규격화될 수 있는 위험적 장치들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소외되고 주변에 머물러 있던 많은 이들을 중심으로 이끌고 이들이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신명난 판’을 깔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축제의 뒷편에서 권력이 예산을 쥐고 예술의 판을 흔드는 우리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프랑스의 음악축제가 전세계인의 축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산을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이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 예술·계급 경계 허무는 축제의 장
파리에서 음악축제가 시작되는 날은 예술의 계급의 경계가 해체되는 장이 된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가 만나며, 아마추어와 프로, 전통과 현대, 국가와 범국가적 음악이 함께 한다. 재즈, 소울, 락, 펑크, 레게, 팝, 클래식 음악 등 장르 구분 없이 자유로운 형태로 음악을 감상 할 수 있다. 실내, 실외가 모든 공연의 장소가 되며, 거리, 광장, 공원, 박물관, 고성, 카페, 식당 등 프랑스의 모든 장소에서 열린다. 심지어 교도소, 병원, 대통령이 사는 엘리제 궁도 공연 장소가 될 수 있으며, 이날만큼은 이곳은 탈권위의 장소가 된다.
오케스트라, 오페라, 합창단 등 아마추어를 비롯 전문 뮤지션들은 그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대중과 나누기 위해 무료로 공연을 제공한다. 도시의 비어있던 잉여의 모든 공간은 탈경계를 지향하며 모든 이의 무대가 되고, 주변으로 머물던 모든 소외된 이들은 탈권위의 중심에 서게 되며, 모두가 주체가 되고 또는 관객이 된다. 축제는 철저히 상업적인 것을 배제하고 제도화의 그늘 밖의 모든 것들을 포용한다.
공연에 대한 정보는 관련 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여, 원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 특정 장소로 가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 날 만큼은 목적 없이 거리를 표류하다보면 어느 곳에서든지 음악을 감상할수 있다. 도시 전체가 콘서트 장이다. 카페, 레스토랑, 바 안에서도 공연이 이뤄진다.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면서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지만, 이날은 대부분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열어 놓기 때문에 길을 걷는 행인들도 카페에서 공연하는 이들의 음악이 들리면,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면 된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자. 그저 함께 즐기면 도시는 축제 그 자체가 된다. 그 안에서 즐기고 있는 나 자신도 축제의 주체가 된다.
축제의 본래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보자. 함께 즐긴다는 것, 계층을 뛰어 넘는 것, 그리고 하나 될 수 있게 만드는 장이 바로 축제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페스티벌은 규격화되고 제도화되어 활력을 잃어버릴 위험성을 안고 있다, 주체와 관객이 분리되어 특정한 장소, 특권층의 음악, 그글의 팬들만이 모인 콘서트 장과 같은 음악축제에 과연 모두가 함께 주체가 될 수 있는‘축제’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걸까?
■ 날마다 움직이는 ‘파리 음악 축제'
미국의 유명한 작가 헤밍웨이는 한때, 파리에서 체류했었던 그의 젊은 시절의 경험과 이야기들을 죽기 직전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veable feast)’라는 회고록의 형태로 1920년대의 파리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는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 줘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것’이라고 속삭인다.
물론 그가 말한 축제의 의미가 본고의 축제가 동일한 것을 표상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일상과 탈일상, 그리고 축제가 혼재된 파리의 이름 모를 거리를 걸어본다. 우연히 만나게 될 축제의 순간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