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중대는 최고 명당, 그 곳에 가면 ‘탐진치’에 물든 자신을 볼 수 있다 [사찰문화기행] 5대 적멸보궁(2)-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2016년 06월 16일(목) 18:27

상원사 전경.

아쇼카 순례단 - 해설이 있는 사찰순례

아쇼카 대왕은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수많은 정복과정에서 저지른 살생을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했다.

재위 말년에 부처님 발자취를 순례하며 비폭력을 진흥하고 윤리에 의한 통치를 펼쳤다.

아쇼카 순례단은 사찰순례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염원한다.

상원사를 찾은 아쇼카 순례단 회원들.

5대 적멸보궁 두 번째 순례는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중대이다.

남도 빛고을에서 1150리(420㎞).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5시간이 넘는 거리이다. 새벽 6시에 출발한 순례단은 백양사휴게소에서 죽으로 아침 허기를 달래고 강원도로 향했다.

1천300여년 전, 동쪽 신라 땅 서라벌에서도 북쪽을 향해 떠나던 무리가 있었다.

신라의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왕자. 두 왕자가 속세를 떠나 금강산으로 향했던 것이다. 금강산에 앞서 오대산에 이르자 한 곳에서 푸른 연꽃이 올라와 형 보천태자가 자리를 잡았으니 이 곳이 보천암이다. 거기서 동북쪽으로 600여 걸음 되는 북쪽 대에도 푸른 연꽃이 있어 효명이 암자를 짓고 정진했다. 하루는 다섯 봉우리에 예불하려고 올라가는데, 동쪽 대에 일만 관음보살, 남쪽 대에 일만 지장보살, 서쪽 대에 일만 대세지보살, 북쪽 대에 오백 아라한, 중앙 대에는 일만 문수보살이 나타났다. 두 왕자는 5만의 진신보살들에게 일일이 예배하며 밤낮없이 정진했다.

그때 서라벌에서는 왕위 쟁탈전이 벌어졌다. 신하들이 오대산에서 정진중인 왕자들을 모셔오기로 했다. 그러나 보천태자는 한사코 왕위를 사양하고 수행자가 될 것을 다짐했다. 동생 효명왕자는 나라의 위급함을 외면할 수 없어 속세로 나가 왕이 되니 신라 성덕왕이다. 이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이다.

상원사 동종-비천상이 아름답다.

오대산(1563m)은 비로봉을 주봉으로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의 다섯 봉우리를 품고 있다. 산자락마다 중앙의 중대를 비롯해 방위에 따라 동대, 서대, 남대, 북대 등 다섯 개의 대(臺)가 있어 오대란 이름을 얻게 됐다. 이곳에서 신라 보천과 효명 왕자가 5곳 대에서 각각의 보살들을 친견하고 예를 올리면서 한국의 오대신앙이 시작됐다.

오대신앙의 중심은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중대이다. 중대는 오대산 상원사 일대로 보천태자가 머물던 당시의 이름은 진여원(眞如院)이다.

그렇지만 보천, 효명 왕자의 오대신앙은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부처님 사리를 모신 이후의 일이다. 오대신앙에 앞서 사리신앙이 먼저 시작된 것이다.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부처님 정골사리를 모셨다는 이야기는 조선불교통사 하편 ‘오대불궁산중명당(五臺佛宮山中明堂)’에 실려 있는 민지(閔漬)의 글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민지는 고려 후기 문신으로 “자장율사는 643년 당나라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귀국한 뒤 오대산 비로봉 아래에 부처님 정골사리를 봉안하고 적멸보궁을 창건했다. 중대 지로봉에 불뇌(佛腦)와 정골을 모신 뒤로 상서로운 일이 간혹 일어난다”고 했다.

오대산 중대는 보천, 효명왕자가 오대신앙을 펴기 이전에도 불교신앙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적멸보궁에 오르는길은 끝없이 이어진 돌계단 길이다.

상원사까지 길고 답답한 여행은 계속됐다. 버스안에서 시달린 순례객들은 차에서 내리자 마자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전나무들의 환영을 받았다.

고려 말, 오대산 북대에서 나옹선사가 정진하고 있었다. 어느 겨울, 부처님에게 올릴 공양물을 들고 나오는데 소나무 가지에 쌓였던 눈이 떨어졌다. 나옹선사가 소나무를 나무랐다. “너 또한 부처님 은혜로 이 산에 살면서 무례를 저지르다니…” 그 후 오대산에 소나무가 자취를 감췄고 그 곳에 아홉그루의 전나무가 자라났다. 근래들어 많은이들에게 사랑받는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 전나무 숲은 이런 사연이 담겨있다.

상원사 전나무 숲길 초입에 돌기둥이 하나 서있다. 세조가 목욕하기 위해 의관을 걸었다는 ‘관대(冠帶)걸이’이다.

이때 목욕하면서 세조는 문수동자를 친견하고 나무에 그 모습을 새겼다. 문수동자(국보 제221호)는 상원사 문수전에 모셨다. 동자가 사찰을 대표하는 주불로 모셔진곳은 상원사가 유일한 듯 하다. 오대산에 어떤 재난이 일어나도 이 문수동자만은 지켜냈다.

1984년, 상원사 문수동자상을 개금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복장유물이 나왔다. 세조가 입었던 얼룩이 진 비단 속 적삼이다. 옆구리와 목, 소매 끝의 얼룩은 피고름의 흔적으로 밝혀졌다.

복장 발원문에 따르면 1464년, 신미대사가 상원사를 중창하자 세조가 시주물로 자신의 옷을 하사했다. 이후 세조의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를 위해 문수동자상을 만들고 복장에 세조의 옷을 넣었던 것이다.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은 두겹으로 돼있어 현판도 두개가 걸려있다.

상원사에서 또 하나 지나쳐서는 안되는 유물이 있다. 상원사 동종(국보 제36호)이다.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조성된 이 동종은 높이 167㎝, 입지름 91㎝이며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상원사 동종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본래 경북지역 어느 절에 있던 종이었으나 조선 건국과 함께 불교가 쇠락하면서 안동 관아의 누문에 매달려 있었다. 세조가 죽고 상원사가 세조의 원찰이 돼 전국에서 가장 좋은 종을 가져다 봉안하기로 했다(1469년). 이때 선발된 종이 안동에 있던 종이었다.

안동에서 오대산으로 가려면 험한 죽령을 넘어야 한다. 고개마루 쯤에서 종을 실은 수레가 움직이지 않았다. 종도 고향을 떠나는 것이 슬펐기 때문일까. 종 꼭지를 하나 떼어 안동으로 보내자 비로소 수레가 움직였다고 한다. 지금도 상원사 종에는 상단의 종유 36개 가운데 하나가 없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이 자리한 중대까지는 산길로 1.5㎞이다.

예전에는 20분 거리였는데 시간도 더 걸리고 힘이 든다. 깊은 산중에 돌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산행하는 이들에게 계단은 반갑지 않다. 산길은 흙을 밟고, 돌도 짚고, 나무뿌리에 걸려 비틀거리며 걸어야 제맛이다. 그런데 주구장창 돌계단이다. 변화 없이 똑같은 높이의 계단을 오르면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무릎관절을 생각하니 입에서 거친 소리가 절로 나온다.

‘빌어먹을… 돈으로 쳐 발라놓았네’

적멸보궁 아래에 있는 사자암은 예전부터 기도 승이 거처하던 작은 암자였다. 그런데 그곳에 거대한 사찰이 자리해 있다. 법당은 신성함을 넘어 화려함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풍수가들이 최고의 명당으로 여긴다. 하늘을 나는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 한다.

조선 영조 때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곳에 왔다가 “어찌 승려들이 좋은 기와집에 살면서 남의 공양만 받아먹고 편히 사는가 했더니, 제 조상의 묘가 이렇듯 훌륭한 명당이어서 그런가 보다”라는 일화가 있다.

적멸보궁을 목전에 두고 옹달샘이 반긴다. 풍수로 볼 때, 용의 눈에 해당하는 자리이다. 맑은 물 한 모금으로 세속의 찌거기를 씻어내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본다.

적멸보궁에 올라보니 풍수에 문외한이라도 여기가 명당임을 느낄 수 있다.

보궁 법당은 두채의 건물로 돼있다. 본래 1466년 작은 보궁이 건립됐다. 그러다가 1878년 풍우와 추위를 막을 겉 건물을 씌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깥건물에 적멸보궁이라는 현판이 있고, 안쪽 건물에 석가진신보탑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보궁에는 황금 좌복만 자리해 있고 불상이 없다. 보궁 뒤편에 부처님 정골사리가 모셔져있기 때문이다.

천하명당의 에너지를 받고자 잠시 보궁 옆에 앉았다. 역시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보궁까지 계속된 계단에 화를 냈건만 금새 그 마음은 어디가고 참회의 마음이 일어난다. 배려심 없고, 작은 일에 화를 내고, 게으르고… 탐진치(貪瞋癡) 삼독심에 찌든 ‘이 놈’을 보았다.

아쇼카 순례단, 5대 적멸보궁을 찾아서<3> : 7월9일(토) 강원도 태백 정암사 (문의 : 062-383-3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