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무호남 시무국가’ 전라도 호국정신의 표상 [전라도 정도 1천년]<6>정유재란·명량대첩 오응정, 남원성서 1만명으로 왜구 5만6천명 맞서다 순국 이순신도 물살 센 울돌목서 13척 배로 왜선 133척 물리쳐 제해권 확보 전세 뒤집어…매년 10월 명량대첩축제 개최 오성수 기자 star555@kjdaily.com

2016년 06월 28일(화) 20:08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신념을 갖고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격파한 명량대첩 신화를 재현한 ‘명량대첩축제’가 해마다 해남 울돌목 일원에서 펼쳐진다. 사진은 당시 수군과 왜군의 싸움 재현 모습./광주매일신문 DB

<若無湖南 是無國家>

이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1592년에 시작된 임진왜란이 끝나고 당시 조선은 잠시 평화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1597년 당시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진행된 휴전 회담이 깨지자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입해왔다. 정유재란이다. 왜군은 전라도 지방을 집중 공격했다. 따라서 전라도 곳곳에서는 전쟁이 치열했다. 남원성 전투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왜적이 해안 근처 여러 진영을 모두 점령하고 매일 북상하고 있었다. 요충지인 순천의 방어가 급선무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적임자로 오응정(1548-1597)을 결정했다.

그는 타고난 장수였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문중(文仲), 호는 완월당(翫月堂)이고, 아버지는 현감 오하몽이다. 그가 태어날 때 울음소리가 매우 웅장하고 장엄했다고 한다.

오응정은 왕명을 받고 순천부에 도착했지만 원균이 인솔한 한산(閑山)의 군사는 벌써 함몰됐고 왜적의 공격은 날로 심했다. 오응정은 더는 버틸 수 없음을 알고 즉시 병사(兵使) 이복남과 함께 남원으로 후퇴해 죽음으로 왜적을 막을 것을 맹세했다.

남문(南門)에다 벽보(壁堡·나무로 엮어 세우고 안팎에 진흙을 발라서 세운 임시 성)를 세우게 했는데, 이때 명나라 장수 양원이 그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런데 날마다 술과 주악으로 방탕하면서 수비할 계책엔 뜻이 없었다.

이에 오응정이 “장군은 황조(皇朝·중국)의 추천을 받아 우리 동국의 위기를 구원하러 왔으니, 매사에 두려움으로 임하고 좋은 모책으로 성사하는 것이 진실로 장군의 직분이다. 그런데도 술에 방탕해 적을 가벼이 여기니, 뜻하지 않은 변고라도 생기면 무엇으로 천자께 보답하고 백성에게 사례할 것인가?”라고 책망했으나 반성할 줄 몰랐다.

드디어 왜군은 5만6천명의 대군을 이끌고 남원성을 공격했다. 성은 함락되려 하고 왜적은 승세(勝勢)를 타고 빠르게 공격하니, 함성은 천지를 진동했다.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을 지키다가 순절한 민·관·군 1만여명의 충혼을 기리기 위한 ‘만인의사 순의탑(萬人義士 殉義塔)’이 남원시 향교동 만인의총(萬人義塚)앞에 세워져 있다.

오응정이 분연히 일어나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과 돌 사이에 우뚝 서서 독전했다. 이에 북 치던 병사까지도 감동해 사력을 다해 싸우니 왜적의 전사자도 상당했다.

적병이 성안으로 난입해 병사 이공(李公·이복남)과 접반사(接伴使) 정기원 등이 이어서 전사했다. 명나라 장수 양원도 혼자 말을 타고 서문으로 빠져나가 도망쳤다. 유독 오응정의 장자(長子) 오욱만이 아버지 옆에 있다가 완곡하게 건의했다.

이에 오응정이 큰소리로 말하기를 “내가 충성을 다하려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다. 내가 양원의 목을 베지 못한 것이 한스럽거늘, 이제 도리어 그의 도망함을 본받으라 하느냐?”하고 의관을 정제하고 북향재배한 뒤 “신(臣) 삼가 죽음에 임합니다”라고 말하고 이어 화승(火繩·화약 심지)을 화약 더미에 던지니 화약이 폭발하면서 오응정과 장자 욱 및 휘하 병사 수십 명이 다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이날이 1597년 음력 8월16일이다.

선조는 오응정이 충절을 다하다 죽은 것을 가엾이 여기고 한성부 좌윤을 증직(贈職·공신, 충신, 효자 및 학덕이 높은 사람 등에게 죽은 뒤에 벼슬을 주거나 높여 주던 일, 또는 그 벼슬)하고 그 여리(閭里·동네)에 정문(旌門·충신, 효자, 열녀들을 표창하기 위해 그 집 앞에 세우던 붉은 문)을 세우라 명했다.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는 남원성민 6천명, 전라도 병사 이복남이 이끄는 군사 1천명, 명나라 원군 3천명 등이 왜군과 분투 끝에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들의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신 곳이 바로 남원 만인의총이다.

남원시는 정유재란당시 남원성을 지키다 순절한 민·관·군 1만여 의사들의 얼이 서려 있는 남원 만인의총(사적 272호)을 자체 관리하다 지금은 국가 관리로 전환됐다.

◇명량대첩

이순신이 통제사에서 물러난 뒤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가 돼 일본 수군과 대전했으나 다대포(多大浦)·칠천곡(漆川谷)에서 대패해 해상권을 상실했다.

원균의 패전으로 같은 해 백의종군(白衣從軍) 중인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기용됐다.

1597년 8월 왜선 8척이 해남의 어란포(於蘭浦)에 출현하자 이를 격퇴하고, 진(陣)을 진도 벽파진(碧波津)으로 옮겼다. 9월7일에는 서쪽으로 이동하던 왜선 55척 중 호위 적선 13척이 어란포에 나타나자, 한밤중에 이순신이 선두에서 지휘해 적선을 격퇴시켰다.

다시 적의 함대가 어란포에 들어온다는 보고를 받고 9월15일 벽파진에서 우수영(右水營)으로 진을 옮긴 뒤 장병들에게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말하고 필승의 신념으로 적의 내습을 기다리고 있었다.

9월16일 왜선 133척이 어란포를 떠나 명량으로 공격해오자, 병선 13척과 군사 120명을 정비해 구루시마 미치후사와 도도 다카토라가 지휘하는 왜선 31척을 무찔렀다.

이 때 이순신은 물살이 센 울돌목에 수중철색을 쓸 수 있도록 준비했고 이순신의 유인에 걸려 든 왜군은 수중철색에 걸려 움직이지 못했으며 뒤따라 오던 적선들도 이에 잇따라 충돌했다. 이순신의 지세를 이용한 이같은 전략에 왜적선 133척 가운데 무려 31척이 격파되는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순신의 ‘상유십이 미신불사(常有十二 微臣不死), 지금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으며, 전선은 비록 적으나 미천한 신이 아직 죽지 않았으므로 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이 없다면 국가가 없다’는 충무공의 어록은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이 승리는 제해권을 다시 조선으로 가져올 수 있게 했으며 불리했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된다. 한양으로 진격하던 왜군은 보급로가 끊길 것을 우려해 충청도에서 멈춰야 했으며, 설상가상 전쟁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8년 9월 사망해 철수를 결정하게 된다.

명량대첩은 해전사에서 큰 획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명랑대첩비가 세워진다.

명량대첩비는 1688년 3월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인 박신주에 의해 세워졌으며 김만중이 전서로 ‘통제사충무이공명량대첩비’ 12자를 썼고 이민서가 문장을 짓고, 이정영이 글씨를 썼다.

이 비는 국란 시에 땀을 흘린다고 전해져 오는 등 호국의 비로 여겨지고 있다.

전남도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 36곳을 국가 또는 도지정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또 해마다 10월께 해남 울돌목에서 명량대첩을 재현하는 축제를 치르고 있다.

명량대첩축제는 특히 체험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했으며 울돌목 물살체험, 투구·갑옷·판옥선 모형 만들기 등 25개 체험 프로그램 가운데 10개 프로그램을 유료화했다. 유료 체험에는 4천여명이 참여해 1천5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특산품 판매장은 3천500만원, 향토음식점은 3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등 수익을 창출하는 축제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았다./오성수 기자 star555@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