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 남혐, 무조건적인 분노 한유진 문화기획자

2016년 07월 14일(목) 19:08

무엇을 향해 분노 하는가?

요즘 신문을 보면 상당히 두려운 생각이 든다. 국가 간의 분노든, 개인 간의 분노든, 분노들이 들끓어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지금 일어난 일들도 적지 않은 일이지만 이것들이 더 큰 사태를 예고하는 조짐일 뿐이라면? 개인들이 품은 이 엄청난 불안과 분노 에너지들이 모여 촉발하는 사태란 무엇일까? 더구나 방향을 잃고 아무데나 쏘아대는 미사일 같은 거라면.

유리 칸막이 같은 신분제 사회에서 과도한 생존경쟁을 치러야 하는 사람들은 언제 자신의 삶이 누락될지 몰라 초조하다. 한두 층 상승한다 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직장을 잃는다든가 해서 하락하는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100년 전에 비하면 먹을 것, 입을 것, 대부분의 자원이 풍족해졌는데 왜 사람들은 점점 살기가 어려울까? 양적인 생산이 늘었을 뿐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불안에서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다. 국가나 사회는 개인을 보호하지 않고, 개인들은 원자화 된채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거대한 힘에 쫓겨 시계의 초침처럼 하루하루를 숨 가쁘게 보내고 있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는 삶에 지친다. 자포자기한 사람들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망가진 삶을 보상받아야 한다. 그런데 누구로부터? 거대한 권력과 자본가로부터? 이 구조를 만들었거나 권고히 했거나 책임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아니다. 나보다 약한 사람들로부터이다. 나보다 살기가 힘들거나 더 절박한 사람들로부터이다. 그가 어떤 얼굴을 가졌건 자세히 보고 싶지 않다. 누군가가 나한테 그랬듯이 나도 약자에게 뺏고 짓밟아 버리면 그만이다.

당신은 ‘농담’했다, 그러나 나는 ‘죽었다’.

같은 과 여학생을 ‘먹어라’고 하거나 몰래 촬영한 여학생 사진을 올리고는 ‘박고 싶다’는 말을 주고받았다는 서울대 단톡방 사건. 여성은 이 사회에서 아직도 약자이다. TV를 켜면 10분에 한 번은 상품화된 여성을 보거나 비하하는 내용을 접하게 된다. 광고, 쇼프로, 개그, 뉴스 비평에 이르기까지 영역은 광범위하다. 보수적 정치단체건 진보적 정치단체건 사회단체건 여성의 몸을 수단화하기는 마찬가지다. 언젠가 진보 성향의 모임에 갔다가 그들의 홍보 동영상을 보면서 기분이 불쾌해졌다.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 부위 중 민감한 부분을 클로즈업하고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중요부위에 사회적 이슈를 적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공적으로 중요한 이슈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여성의 몸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한가?” 라는 질문이 계속 머리에서 떠돌았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 상품화하는 것인데, 목적이 아무리 훌륭했더라도 동시에 그들은 이 사회의 또 다른 측면에 폭력을 행사한 셈이다. 그러면 목적은 달성 되었을까? 시간이 지난 지금 이슈는 잊혀버리고 그날의 수단만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단순한 눈요기가 주는 충격요법은 진정한 행동의 변화까지를 이끌어내기는 힘든 것 같다. 어떤 좋은 이슈더라도 수단이 잘못되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시대에 담겨서 개인의 삶을 산다.

좋은 시대를 만들어야 모두의 삶이 향상될 것이다. 시대를 만드는 책무는 남성, 여성, 모두에게 있다. 여성만이, 남성만이, 세계의 중심이 되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보다 나은 인간적 삶을 위하여 진정으로 만나야 한다. 서로를 비하 하고 헐뜯는 데에 힘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사회를 구출하는 데에 그 힘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잠들었다 깨어나는 새벽 시간, 이런 소망을 써 본다. 오늘은 남성, 여성, 모두가 ‘인간적으로’ 평안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