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상 때문에 문수보살 친견 못한 자장율사 열반지…수마노탑 위풍당당 [사찰문화기행] 5대 적멸보궁 (3)-강원도 정선 정암사

2016년 07월 21일(목) 19:05

수마노탑에서 바라본 정암사 전경. 작은 사진은 산신각에서 바라 본 수마노탑.

아쇼카 순례단, 5대 적멸보궁을 찾아서<4> : 8월13일(토) 양산 통도사 자장암 (문의 : 062-383-3538)

아쇼카 순례단 - 해설이 있는 사찰순례

아쇼카 대왕은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수많은 정복과정에서 저지른 살생을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했다.

재위 말년에 부처님 발자취를 순례하며 비폭력을 진흥하고 윤리에 의한 통치를 펼쳤다.

아쇼카 순례단은 사찰순례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염원한다.

적멸궁에서 기도하는 아쇼카순례단.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세종의 적장자 문종, 그의 생애는 너무 짧았다. 문종에게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었으니 경혜공주와 단종이다.

한이 많은 민족이라 하지만 한민족 역사에서 이들 남매만큼이나 비운의 인물은 드물다. 비운은 왕이 되고자 했던 삼촌의 탐욕에서 시작한다. 세종의 셋째아들 양녕은 어린 조카 단종을 밀어내고 임금(세조)이 됐다. 경혜공주의 부군은 단종 복위운동을 펼치다 유배를 갔다. 전라도 광주이다. 경혜공주도 광주까지 따라와 남편을 봉양했다. 유배지 광주에서 아들을 낳았고, 끝내 남편은 처형되고 말았다. 반역자의 가족으로 낙인찍힌 경혜공주와 아들은 관노가 돼 순천 관아로 가게 된다. 공주에서 관노가 된 경혜공주. 그에 앞서 노산군으로 강등당한 단종은 강원도 영월로 쫓겨난다. 그날은 음력 6월 28일. 지금과 같은 더운 여름이었다.

이곳 광주에서 비참한 삶을 살았던 경혜공주, 그리고 무더위에 장마까지 겹친 이즈음 영월로 유배가던 단종을 생각하며 순례를 떠나본다.

이번 순례지인 정선 정암사는 영월 바로 옆 고을이다. 정선사람들의 고달픈 삶은 아리랑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누가 내 처지를 알아주리오’라는 뜻에서 ‘아라리’라고 부른다.

신라 선덕왕 때(645)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와 정암사에 수마노탑을 세우고 그 안에 봉안했다.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어 정암사(淨巖寺)라 한다.

자장율사가 짚고 다녔다는 지팡이가 살아 있다.

본래는 갈래사라 불렀다. 처음 산머리에 사리탑을 세우려 하는데 탑을 세울 때마다 무너졌다. 자장율사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니 하룻밤 사이에 칡이 눈 위에서 세 갈래로 자라나 지금의 수마노탑과 적멸궁, 그리고 현재의 절터에 각각 멈췄다.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갈래사라 불렀고, 지금도 이 지역의 지명이 갈래이다.

이처럼 수마노탑에 부처님 사리를 모셨기에 정암사는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이다.

정암사 도량은 좁은 산골짜기를 따라 자리해 있다. 일주문을 지나 극락교를 건너면 편안해 보이는 평지가 나온다. 여기에 적멸궁(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이 자리해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얹은 소박한 법당이다. 한 발짝 뒤로 떨어져 보니 보궁 위로 급하게 산이 시작되고 경사지 위에 큼직한 탑이 보인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수마노탑이다. 수마노탑에 부처님이 상주하고 계시기에 그 아래 적멸궁에는 불상이 따로 모셔져 있지 않다.

적멸궁 앞에는 마치 속리산 정이품 소나무마냥 우아하게 가지를 옆으로 뻗은 주목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주목은 ‘살아 1천 년, 죽어 1천 년’을 간다는 나무이다.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였는데 지금은 살아서 중생을 지켜보는 듯하다.

좀 더 부처님과 가까이 하려면 수마노탑까지 올라야한다. 적멸궁에서 탑으로 가기 위해서는 작은 계곡을 하나 건넌다. 이 냇가에서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만 산다는 열목어(천연기념물 제73호)를 만날 수 있다.

수마노탑.

정암사의 백미는 수마노탑(보물 제410호)이다. 10분가량 산길을 올라가면 가파른 산비탈에 축대를 쌓아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 탑이 자리해 있다. 탑 앞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암사 전경이 한눈에 펼쳐보인다. 이래서 여기가 명당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높이 9m, 7층 모전석탑인 수마노탑은 마노석이라는 보석을 벽돌처럼 쌓아올렸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올 때 부처님 진신사리와 함께 칠보를 가져왔다. 그 가운데 하나인 마노석을 용왕이 물길을 가로질러 이곳까지 모셔왔다고 해 앞에 수(水)를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부른다.

자장율사가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고 세웠을 때는 작은 탑이었을 것이다. 훗날 고려 때 마노석과 이곳에서 나는 돌을 섞어 지금처럼 크게 탑을 세운 듯하다.

수마노탑 1층 몸돌의 남쪽 면에는 감실을 마련했다. 돌을 세워 문을 만들고 문고리를 달았다. 지붕돌 추녀 끝에는 풍경을 달았고, 상륜부는 청동으로 장식을 올렸다. 탑 앞에 있는 배례석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고려 시대의 특징을 나타낸다.

1972년에 해체 복원하면서 탑지 5개와 금·은·동으로 만든 사리구가 발견되면서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보수된 것으로 밝혀졌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경계하는 것은 ‘갖고 싶어하는 마음’ 탐심(貪心)이다.

본래 자장율사는 정암사에 금탑, 은탑, 수마노탑 등 세 개의 탑을 세웠다고 한다. 북쪽 금대봉에 금탑과 남쪽 은대봉의 은탑은 후세 중생들의 탐심을 우려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도록 비밀스럽게 세웠다고 한다. 그나마 수마노탑의 마노석도 중생들의 탐심을 우려해서인지 수많은 벽돌사이에 섞여 찾을 수 없다.

왕을 탐한 세조가 단종을 이곳 수마노탑 가까이에 유배 보낸 것은 아이러니하다. 어떤 인연에서일까. 참으로 궁금하다.

정암사에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전한다. 신라의 스승인 자장율사의 허물이다.

말년에 자장율사는 강릉 수다사에 주석하며 문수보살 친견을 서원했다. 하루는 꿈에 범승이 나타나 ‘문수보살이 태백산 갈반지에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전했다.

자장율사는 제자들과 함께 갈반지에 정암사를 건립하고 문수보살을 기다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이가 남루한 도포를 입고 칡으로 만든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메고 와서 “자장을 보려고 한다”고 했다. 시자들이 미친 사람이라며 쫒아내자 늙은이가 “너의 스승에게 알리기만 하라”고 했다. 결국 시자가 자장율사에게 알렸건만 자장율사도 “아마 미친 사람인가 보다”며 잘 타일러 보내라고 했다. 시자가 밖으로 나가 늙은이를 꾸짖으며 쫒아내자 늙은이가 말하기를 “아상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볼 수 있겠느냐. 돌아가겠다”며 삼태기 안에 있는 강아지를 꺼내자 강아지가 사자로 변했고 사자를 타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자장율사가 이 말을 듣고 달려 나왔지만 만날 수 없었다.

자장율사는 육신으로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했으니 입정에 들어 참회하고자 한다며 그 자리에서 열반에 들었다.

이렇게 해서 정암사는 5대 적멸보궁의 주인공 자장율사가 열반에 든 열반지이다.

아상(我相), 오온(五蘊)이 화합해 생긴 몸과 마음에 참다운 자신이 있다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을 말한다. 한마디로 ‘내가 잘났다’, ‘내가 최고다’는 생각이다.

예전에 수행 잘하는 스님들을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한번은 어려서 출가한 노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젊은 시절 성욕을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성욕은 수행으로 다스릴 수가 있어. 그렇지만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강해져. 죽은 그 순간 ‘나’라는 집착을 끊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 노스님은 불교계에서 큰스님으로 추앙받는 분이셨다. 명예라면 대통령이 부럽지 않을 만큼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의외로 ‘나’라는 집착을 떨쳐버리는 것이 어렵다고 솔직히 고백하셨다.

계율의 으뜸이라는 자장율사도 마지막 화두는 ‘아상’이었다.

세월이 흘러 경혜공주는 한양 궁궐 옆 정업원의 비구니가 됐다. 그곳에서 단종비 정순왕후와 함께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 경혜공주는 불교와의 만남으로 ‘원망은 원망을 낳는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훗날 결단코 용서할 수 없는 세조와 화해의 손을 내민다. 그리고 세조는 경혜공주의 아들에게 ‘미수(眉壽)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너는 눈썹이 백발될 때까지 살아라’는 뜻이 담겨있다. 미수는 관직에 올라 공신까지 되었다. 그의 집안인 해주 정씨도 반역자에서 명예로운 집안이 된 것이다.

강원도 정선에서 돌아오는 길 내내 경혜공주가 보여준 화해가 가슴을 울린다.

청령포 관음송.

단종 유배지 청령포…육지 속에 작은 섬

정선으로 가다보면 영월고을을 지나게된다. 정선에서 흐르는 동강이 영월에서 서강과 만나게 된다. 다시 남한강의 지류가 돼 서울로 흘러간다. 그러고 보니 영월과 서울은 강으로 연결돼 있다. 550년 전에도 한양과 영월에 가슴 아픈 인연의 끈이 이어졌었다. 1457년 세조에 의해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1441-1457)이 한양에서 이곳 영월까지 왔던 것이다.

첫 기착지가 청령포(명승 제50호)이다. 남쪽은 절벽으로 막혀 있고 동·북·서쪽은 서강이 휘감고 돌아 배로 건너야만 갈 수 있는 특별한 땅이다.

때는 여름이었다. 그해 장마로 강이 범람해 영월 객사인 관풍헌으로 옮기기까지 단종은 이곳에서 두 달간 머물렀다.

청령포.

청령포는 지금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절해고도이다. 강을 건너 자갈밭을 지나면 소나무 밭이 나온다. 16년 전, 솔밭 사이에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단종이 머물렀던 어소를 건립했다. 어소 앞 담장으로 유난히 눈길이가는 소나무가 한그루 있다. 담장 밖에서 어소를 향해 길게 엎드린 듯 누운 소나무이다. 마치 유배된 단종을 향해 고개 숙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 ‘엄흥도 소나무’라고 부른다.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영월사람이다.
청령포에는 또 한그루의 특별한 소나무가 있다. 어소에서 30여m 거리에 있는 관음송이다. 천연기념물 제349호인 관음송(높이 30m, 둘레 5m)은 높이 1.2m쯤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있다. 단종이 이 소나무에 기대어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고 전한다. 이같이 오열하는 단종을 옆에서 보고(觀), 울음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으로 관음송(觀音松)이라 한다.

엄흥도 소나무.

이밖에 청령포에는 단종이 해 질 무렵이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노산대,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그리워하며 돌을 쌓았다는 망향탑이 있다.

영월까지 쫓겨온 단종의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배 왔던 그해 10월, 의금부도사 왕방연이 가지고 온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다. 단종의 나이 17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