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프랑스 혁명기념일 …전 세계인 축제가 된 기억의 장소 [이영미의 파리문화기행] <7> 역사적 기억 공유하는 공동체 문화

2016년 07월 27일(수) 19:18

샹젤리제에서 행진하는 군인들과 시민들.

2016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기념일 행사가 마무리 될 때쯤, 니스에서 테러 속보가 전해져 왔다. 올해 샹젤리제 거리의 군사 퍼레이드는 테러 진압단도 함께 행진을 함으로써 테러 세력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는데. 늘 평화로울 것만 같았던 휴양도시 니스에서 테러가 발생함으로써 프랑스 사회는 또 한번의 비극을 경험하게 됐다.

▶2004. 전남대 건축공학박사 ▶2005-2007 전남대 post-doc/청주대 post-doc ▶2009-2011. 전남대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2014-현재. Paris 8대학, 도시계획 박사과정

■ 기억의 장소-혁명 정신의 시작, 7월14일

기억의 장소란 민족적 기억이 구체화된,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이나 수세기에 걸친 작용을 통해 그것들의 아주 특별한 표상과 뚜렷한 상징물로 남게 된 물질적, 비물질적 장소를 뜻하는 것. - 피에르 노라(Pierre Nora), 기억의 장소(lieux de memoire)>

7월 14일 프랑스 혁명기념일 전후로 프랑스 전역에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14일 오전부터 자정까지 행해지는 행사 중, 하이라이트는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개선문과 콩코드광장까지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이뤄지는 군사 퍼레이드와 저녁 9시부터 에펠탑이 위치한 샹드막스 공원에서 열리는 콘서트, 그리고 밤11시부터 35분간 이루어지는 불꽃놀이는 전 세계인이 지켜볼 정도로 가장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쇼이다.

프랑스혁명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평등한 권리를 보유하기 위해 일어선 시민혁명이다. 계몽주의가 확산되었던 루이 16세의 집권기는 귀족 등의 특권층에 대한 피지배 평민계층의 비판의식이 높아지고, 부패한 왕실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고조되었던 시기였다. 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군이 당시 정치범 수용소였던 바스티유(Bastille) 감옥을 습격했던 사건을 시작으로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됐으며, 이날 프랑스 역사는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프랑스인에게 7월 14일은 현재 프랑스의 ‘자유·인권·박애’라는 혁명 정신을 기초로 지탱하게 한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날이며, 이날은 단순히 프랑스만의 기념일이 아닌 세계적으로 혁명 정신을 기리는 역사적 날이 됐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는 이 바스티유의 날, 혁명의 날 ‘7월 14일’을 ‘기억의 장소’로 정의한다. 오늘은 바로 이 ‘기억’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군사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샹젤리제 거리에 모인 사람들.

■ 기억의 확장, 기억의 소비 -“파리는 축제이다”

“벤야민은 망각된 것이 회귀하는 시간을 미래라 불렀고, 아스만은 미래가 실현된 공간을 ‘기억의 공간’이라 불렀다.”

올해 혁명기념일 행사의 주제는 ‘파리는 축제다’이다.

매년 기념일 행사는 사회적 시사성을 고려해 테마를 결정한다. 작년 11월 파리 테러 직후,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책의 판매량이 증가하였다.

파리 시민들이 슬픔을 이기는 방식을 잘 표현해주는 현상이다.

그 때문인지 올해 행사 주제는 테러에 대한 국가적 입장과 이들이 이겨내야 하는 ‘테러에 대한 저항’이라는 또 다른 과제가 있다는 점에서 ‘파리는 축제다’를 주제로 선정한 듯하다.

프랑스에서 일년 중 에펠탑의 화려한 조명과 화려한 불꽃 쇼를 볼 수 있는 날은 크리스마스날도, 12월 31일이 아니다. 바로 7월 14일 혁명기념일이다.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큰 국경일임은 틀림없지만, 이때 여행 온 이들에게도 불꽃놀이를 보는 것은 파리여행의 특별한 경험이다. 우연히 자신의 체류 기간에 맞이하는 기념일일 수도 있지만 이날에 맞춰 여행일정을 잡은 이들도 있다는 점에서 혁명기념일은 이제 전 세계인의 축제이다. 프랑스인들의 ‘역사적 기억’에만 머무르지 않고 기억을 향유하고 공유할 수 있는 노력을 거쳐, 그들의 ‘기억’은 전 세계 다양한 계층에게 ‘확장’되고 즐겁게 기억을 ‘소비’할 수 있는 축제의 날이 됐다.

paris est une fete-파리는 축제다

■ 망각의 한국사회 -“역사적 기억은 속도와 함께 사라져간다”

이제 하나의 물음을 한국사회에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혁명기념일이 단순히 혁명 정신의 상징이 아니라 축제가 된 프랑스 사회와 오늘날 한국 사회가 역사적 기억을 소비하는 방식에는 너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역사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날을 꼽으라면 어느 날일까? 3·1절, 광복절, 광주 5·18, 개천절 등 수많은 의미있는 기념일 중 전 국민의 공감을 얻을 만큼 축제처럼 즐길 수 있는 날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기념일로 지정된 날 중 모든 국민이 행복해하고 가족과 연인이 함께 기억을 즐기고 놀이와 축제로 공동체가 단결할 수 있는 장을 한국 사회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기념일에 대한 역사적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국경일은 그냥 기념일 뿐이고 기념은 정부가 하고 국민은 쉬는 날일 뿐이다. 집단의 이기심과 좌우 정치적 논리에 의해 가치가 폄하되거나 재조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화석화 돼버리고 있는 광주 5·18민주화운동, 제주 4·3사건과 같은 근대적 기억들은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확장되지 않고 있다.


현재 한국은 망각의 사회이다. 시대정신의 의미만을 부여잡고 있어서는 그 기억이 후손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은 생명체와 같아서 ‘기억을 공유’하고 ‘확장’해야 하며, 함께 ‘소비’하고 ‘재생성’되는 메커니즘을 통해 살아나간다. 그리고 그 기억은 문화가 된다. ‘문화적 기억’은 망각과 재생의 반복 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 문화 사이의 끊임없는 소통을 이끌어 냄으로써 기억을 생성시킨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역사적 사건의 기억의 축적, 공유, 소통의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기억’은 본래의 무게감을 이기지 못하고 어느 때부터인가 사회의 속도감과 함께 깃털처럼 사라져가고 있다.


■ ‘개인’에서 ‘집단’으로… ‘나’에서 ‘우리’의 기억으로…

한국만큼, ‘우리’라는 단어가 다양한 명사와 결합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실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동생’, ‘우리 동네’, ‘우리 학교’, ‘우리나라’ 등등. 개인보다 우리 라는 공동체나 민족 혹은 공공의 가치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자란 탓이다. ‘우리’라는 단어는 정서적으로 가깝거나 애정이 있는 대상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아파트 단지에서도 주거공간인 개인 공간(private space)과 그 외의 영역인 공공 공간(public space)으로 나뉘어 있지만,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는 내가 속해 있는 모두의 것인 ‘우리’의 개념은 실종돼 있다. 내가 속해 있지 않아도 되는 모두의 공공성만 있을 뿐이다. 서양 사회는 공공의 가치보다 개인의 가치가 우선시 되는 개인주의 사회라고 인식하지만, 내가 본 이곳 프랑스에서는 개인을 바탕으로 한 집단의 ‘우리’의 실체가 존재한다. 먼저 지나가라고 양보해주거나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모습은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이 아니라 프랑스 이곳에서 더 많이 목격된다. 물론 그렇다고 이 나라 사람들이 모두 친절한 것은 아니다.

반장, 학생회장, 시장,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현대 사회는 어떻게서든 계급, 구별 짓기를 해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집단을 구별하는 개념은 사라질 수 없다. 그러나 국경이 없는 국제화 시대에 ‘극단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경계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이방인이지만 나도 모르게 온몸에 전율이 돋고 공동체적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노래가 있다. 바로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이다. 혁명적이고 선동적인 가사로 인해 평화를 지향하는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다는 비난도 받고 있으나, 프랑스 혁명정신을 대표하는 노래이다 보니 손을 댈 수가 없는 모양이다.

“가자 조국의 자식들이여/영광의 날이 왔도다/우리에 맞서 폭정의/피묻은 깃발이 나부끼네/들리는가 들판에서/ 중략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진용을 갖추고/진군하자 진군하자/더러운 피로/우리의 밭고랑을 적시자/ 후략”(라 마르세예즈 일부)

어떠한가? 소름 끼치도록 잔인한 이미지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샹젤리제 거리에서 군사 퍼레이드 후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라 마르세예즈를 길가는 프랑스인들이 서로 따라 부른다. 순수한 어린아이들과 아름다운 언어만으로 노래할 것 같은 성악가들이 함께 부른 국가, ‘라 마르세예즈’는 당시 목숨걸고 싸웠던 혁명 정신에 대한 기억이 오래도록 공유돼 현재까지 ‘공통의 기억’으로 살아 있다. 평상시에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사회이지만, 위기에 닥쳤을 때 이들이 함께 부르는 국가는 그들이 함께했던 공통의 기억으로 이들을 결속시키며, ‘집단’, ‘우리’가 된다. 이쯤 되면 우리의 애국가 가사와 너무 대조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지나치리만큼 서정적인 애국가에서 전혀 ‘우리’를 느낄 수 없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며 거친 항쟁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에서 자유에 대한 갈망과 투쟁 의지를 느낄 수 없는 애국가가 탄생했다. 어느 사회가 비정상 사회일까? 나아가 선동의 우려가 있다고 광주 5·18 행사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금지한 이 사회는 과연 정상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집단의 힘이 기득권에 위협적이었을까? ‘개인’이 확장돼 ‘우리’를 느끼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정부의 미천한 역사의식이라고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필요에 따라 선동적 애국심과 공동체 의식에 호소하는 한국 사회와 프랑스는 역사적 기억을 인식하고 즐기는 방식, 기억을 다루는 정책이 다르다. 혁명기념일 날, 테러로 인해 ‘자유, 인권, 박애’의 혁명 정신에 도전을 받은 일에 대해, 프랑스는 어떻게 기억을 써내려 갈까 궁금해진다.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소’를 다시 한번 꺼내 읽어보게 하는 날이다.

나의 고향, 광주에서도 프랑스 혁명기념일이 전세계인의 축제의 날이 된 것처럼, 광주 5·18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기억이 확장되고 축제처럼 소비될 수 있는 문화적 기억의 장소가 될 수 있기를 5천 마일 넘게 떨어진 프랑스에서 꿈꿔본다. 벤야민의 말처럼, 미래는 망각된 것을 회귀시킴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되새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