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끝자락서 궁핍했던 시절, 징그러운 향수를 흠뻑 맛보다 [화필여로] <97> ‘찬란한 문명의 大地’…인도 향수를 느끼게 하는 ‘빈대 천국’

2016년 08월 10일(수)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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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 끝자락에 가까운 트리반드룸에서의 일이다.

역에서 가까운 가격이 저렴한 어느 숙소에서 방을 2개를 잡아 취침하는데 새벽 2시에 몸이 왠지 가려운 느낌이다.

즉시 일어나 불을 켜고 보니 벽이며 바닥이며 상상할 수 없이 빈대들이 전투대열로 도열한 형국이다.

7명의 우리 일행이 총 비상으로 기상해 모든 짐을 밖으로 내놓고 자고 있는 매니저를 깨우니 뭘 그런걸 가지고 소란이냐는 듯 무표정이다.

그냥 헌혈하고 대충 자라는 듯 느긋함으로 대처한다. 우리는 빈대가 무서워서 잘 수 없다고 거센 항의를 하니 다른 방을 바꿔주는데도 그곳도 똑같았다.

남인도 볼가티 숙소 손님들과 함께…

피난을 해서라도 하룻밤을 자야 할 떠도는 유랑자 신세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별이 보이는 밖의 시멘트 바닥에서 모두들 뜬눈으로 지샌다.

우리의 소동을 엿들은 뒷집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우리 숙소는 빈대가 없으면서 더 싸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고단한 아침을 맞는다. 그리고 거센 항의에 숙박비를 환불받고 오전에 일행의 반은 손수 빈대잡이에 소일하고 몇 사람은 오후까지 시내 이곳저곳 약국을 찾아 빈대 약을 사러 다닌다. 그러나 약은 없었다.

박종석 作 ‘깐냐꾸마리의 해돋이’ 세개의 바다가 만나는 인도의 최남단 도시 깐나꾸마리 해변 풍경.

돌아와 나머지 일행에게 들어보니 그 매니저 아무렇지 않은 듯 장난을 걸어오고 그것이 별일인가 하는 표정이란다.

비위가 좋은 남인도 사람들의 낙천적인 생활에 약간 화도 났지만 우리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매트리스를 햇볕에 말려서 박멸하려고 밖으로 내놓는다. 아마 인도의 손님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하룻밤을 묵고 가기에 운영이 되는 모양이다. 이후에 숙소를 정할 때는 빈대가 없나 하고 확인 후 들어가는 습관이 생겼다.

‘빈대약을 사러 가다’

어린 시절 이, 벼룩이나 빈대에 물리고 또 잡아서 죽이는 일이 징그러운 일이였지만 남인도에서 만난 하룻밤의 소동은 우리의 옛 시절, 궁핍하게 살았던 것이 떠오르면서 징그러운 향수를 흠뻑 맛본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