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호남정치시대 열렸나? 본사 사장 ssnam48@kjdaiiy.com

2016년 08월 10일(수) 20:07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라는 게 정식 작동된 이후 올 여름처럼 호남정치인들의 활약이 폭넓었던 적 있던가?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선 해방 이후 최초로 호남 출신이 보수정당 당대표의 자리에 오르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정현의원(3선·전남 순천)이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새누리당의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도하 모든 언론이 이후 열릴 더불어민주당 향후 전당대회 성적표에 따라 호남이 한국정치1번지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며 흥분하고 있다. 이미 20대 국회의장단은 모두 호남출신으로 꾸려졌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전북 진안 출신이며, 심재철 부의장(새누리당 소속)은 광주광역시, 박주선 부의장(국민의당)은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다. 국회의장단 선출 직후 3인이 모두 호남 출신인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8월말에 열리는 더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만약 호남출신이 당 대표로 선출된다면 현 국민의당을 목포 출신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표하고 있어서 여·야3당을 모두 호남 출신이 장악하게 된다. 쾌재다.

필자는 지난해 이 칼럼난에 ‘한국정치에 호남이 없다’는 탄식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불과 일년 사이에 이렇게 큰 변화가 올 줄 몰랐다. 정당과 국회의 주요 책임자를 호남사람으로 싹 갈아 치운 현재, 호남이 새로운 정치의 중심지가 된 것은 분명하다. 불과 1년 전, 19대국회 당시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 교섭단체 대표는 모두 부산 출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일취월장이다.

이제 여·야 3당은 호남 표심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정치권에서 호남 인사들이 부상하는 것도 변화가 시작된 호남 표심을 잡기 위한 것이다. 최근 전북 전주에서 열린 새누리당 호남권 합동연설회는 많이 달라진 정치구조가 확인됐다. 당시 이정현 새누리당 당대표 후보 뿐 아니라 모든 후보가 ‘약무호남시무국가:만약 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없다’를 외쳤다. 소위 보수여당에서 호남소외론을 들먹였다.

앞으로 정치일정 변수는 ‘호남민심’이다. 2017년 대통령선거나 2018년 지자체선거에서도 호남표심은 정치지형을 흔들 것이다. 호남민심 회복을 누가 할 수 있느냐가 투표의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호남사람들에게 과연 지금의 상황이 호남정치 르네상스시대냐고 물으면 고개를 젓는다. 모든 분위기는 호남사람들이 만들었는데, 정치인 그들만의 잔치다. 호남사람들은 호남정치가 정말 회복됐다는 체감을 못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총선 100일 때, 전북 언론에서는 호남정치에 대해 ‘F학점 낙제’라는 냉혹한 평가를 했다. 4·13총선에서 다수를 차지한 국민의당이 총선 내내 정치적 공약으로 내걸었던 ‘전북정치부활’을 지키지도 못하고 도민 대부분을 실망시켰다고 평가했다. 특히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이 전북3당체제로 ‘협치’를 강조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행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기사였다. 국민의당은 야당 내 전북 정치권의 낮은 위상을 파고들어 총선기간 내내 전북정치, 호남정치 부활을 주장했지만 호남 현안에 대한 진정성과 실질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혹평이었다.

광주·전남 상황도 마찬가지다. 국민의당에 대한 눈길이 곱지 않다. 지난 총선에서 호남1당으로 지지를 몰아줬는데도 정치적 존재감과 영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더민주 지도부의 안이한 대응과 국민의당의 미약한 존재감이 예산 국회로까지 이어지면서 호남의 현안 해결이 지연되지 않느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정치개혁을 기치로 내건 국민의당 광주전남 의원들의 행보는 전혀 신선미가 없는데다 구태의연하기까지 하다.

이 와중에 잠룡이라는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상임대표, 더민주 손학규 상임고문이 ‘DJ정신’ 계승을 내세워 호남민심 구애경쟁을 벌이고 있다. 제각기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저마다 야권의 전통적 지역기반인 호남의 ‘적자’로 인정받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는 등 돌린 호남민심을 되찾는 숙제를 풀기 위해 안간힘이고 안철수 전 대표는 최근 떨어지는 당의 호남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려 애쓰고 있다. 손학규 전상임고문 역시 정계복귀 수순을 밟으며 야권재편까지 염두에 둔 상황에서 호남을 잡으려 하고 있다.

문제는, 진짜 호남정치의 진수, 호남정치사상을 누가 가장 대변하고 있는가이다. 여·야3당의 대표가 호남사람이라고 한들, 국회 의장단이 모두 호남출신이라고 한들, 야권 잠룡이 모두 호남적자를 주장한들, 호남인에게 진정 감동을 주는 사람은 현재 아무도 없다. 왜 그런가. 모두들 호남정신·광주정신에 기대 광주·전남·전북을 이용, 정권을 잡거나 정치권에 우위를 선점하려는 욕심만 있을 뿐, 진정 호남사람들이 원하고 호남인이 바라는 정치철학을 호남인과 공유하지 못해서다. 단지 호남을 킹메이커나 분위기메이커로 이용하려들지 호남이 바라는 진정한 민주주의·정의로운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들이 없기 때문이다.

작금의 호남정치인 춘추전국시대는 곧 끝날지도 모른다. 권력을 쥐었을 때 이들이 호남 발전을 위해 진정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자리위세나 한다면 호남사람들은 그들과 같이 정치할 생각을 접을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은 ‘이 보다 좋을 수 없는 호남의 정치환경’을 왜 호남인들이 우울하게 쳐다보는지, 깊이 성찰해보기 바란다. /ssnam48@kjdaii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