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머물렀다 가는 人生…무소유 삶에서 행복 찾는 위대한 약자들 [화필여로] <98> ‘찬란한 문명의 大地’…인도 잃어버림에 대한 단상

2016년 08월 17일(수) 19:45

박종석 作 ‘첸나이의 야경’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삶은 무능의 소산일까? 아니면 불편해서 지겨운 삶이라 여길까?

각자의 가치관과 습속(習俗)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행복으로 여기며 환하게 웃고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다는 사실이다.

남인도 폰디체리의 해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스리크리슈나 게스트 하우스 옆, 남의 집 담장 밑에 시멘트 바닥을 깨끗이 닦아 몇 개의 그릇과 비닐로 덮은 엷은 이불대용 천 등이 구석에 잘 정리돼 있었다. 그 곳은 지붕도 없지만 일곱 식구가 둥지를 틀고 단란하게 사는 집이다.

폰디체리 거리에서 라누씨 가족들과 함께.

가장(家長)인 라누(LANUA·38세)씨와 부인(드레피아·25세) 그리고 여덟 살인 큰딸 버비트라, 그리고 여섯 살, 네 살, 두 살, 한 살배기 남동생들이 한 가족이다.

라누씨는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관절염으로 무릎과 관절마디가 퉁퉁 부어올라 노동 능력이 상실됐다. 해서 그의 젊은 부인이 사원에서 청소해 하루 20루피를 받아 겨우 그럭저럭 풀칠하며 어린 자식들을 키운다.

나는 이틀 동안 숙소에 머무르는 동안 그곳을 찾다보니 그들과 친구가 돼 우연찮게 그들의 생활상을 엿보게 됐다.

라누씨의 큰딸은 학교에 다니지만 휴일은 동생들을 돌보며 책을 본다. 해맑은 아이들은 천진해서 이해한다지만 부부도 열악한 환경에서 어둠의 그늘은 찾아보기 어렵게 밝은 표정이다.

그러나 불편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무심하게도 어제 아침은 비가 내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잃어버린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위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힌두문화에서 현세의 고통이 내세의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있기에 웃음을 함께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반대로 무엇인가 지닌 나와 일행 중 한 사람이 망가로르에서 겪은 일이 문득 생각난다.

오후에 숙소 앞의 거리풍경을 그리기 위해 둘이 보도에 앉아서 남인도의 분위기에 푹 빠져 물감과 붓놀림에 여념이 없이 몰입돼 있었다. 지나가는 인도인들의 호기심에 감싸여 있어도 관심 밖이었던 몰입의 순간들, 1시간 정도 흐른 후 옆을 보니 그의 작은 배낭이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카메라, 일기장 등 꽤 필요한 물품들이었는데 날개가 달렸는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허탈했다!

‘폰디체리의 간디상’

우리는 그림을 그릴 의욕이 완전 상실되고 원망 섞인 말투로 “아무리 그래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화가의 배낭을 훔쳐가다니…”라고 말했다.

나의 위로의 말은 “그냥 잊어버려라”였다.

단순한 해답일 수밖에 없었다.

불쾌한 울분이 남아 늦은 밤 앞 상점에서 몇 잔의 술로 아쉬움을 달래며 목소리가 높아지니 옆 좌석에 앉아있던 남아공 흑인청년 존(John·28세)이 진정하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존은 우리를 숙소까지 데려다 줬다.

그 인연으로 존이 그림의 모델이 돼줬다. 우리는 멋쟁이 흑인 친구에게 모델료 대신 값비싼 머플러를 선물한다. 아쉽게 배낭을 잃었지만 좋은 친구를 얻었다.

‘어느 예술가의 초상’

결국은 잃은 것이 없는 것 아닌가? 면밀히 생각해보면 영원한 내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에 따라 잠깐 빌려 쓰는 것일 뿐인데….

그러나 세계정세를 보면 몇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힘으로 제압하는 상황을 보는데 반대로 나라를 무력으로 빼앗기고도 감옥에서 그 원수들을 미워할까 두려워했다는 티베트 어느 승려의 말이 떠오른다.

조국과 가족을 잃어버리면서도 맑은 영혼을 간직한 위대한 약자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