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지종가 국지대찰…승려되려는 자는 이곳에서 계 받아야 해 [사찰문화기행] 5대 적멸보궁 (4) -양산 영축산 통도사

2016년 08월 18일(목) 19:03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지도법사 보선스님이 회원들과 함께 탑돌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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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쇼카 순례단 - 해설이 있는 사찰순례

아쇼카 대왕은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수많은 정복과정에서 저지른 살생을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했다.

재위 말년에 부처님 발자취를 순례하며 비폭력을 진흥하고 윤리에 의한 통치를 펼쳤다.
아쇼카 순례단은 사찰순례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염원한다.

일주문-‘영축산통도사’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썼고, 불지종가 국지대찰은 해강 김규진 글씨다.

무풍한송(舞風寒松)

여름날 가장 걷고싶은 명품 길

이제, 덥다는 말을 하는 것도 지쳤다.

경남 양산에 무풍한송(舞風寒松)이라는 땅이 있다. 춤추는 바람, 그것도 소나무 향이 듬뿍 담긴 시원한 바람이 춤 추는 곳이다.
통도사 입구 영축산문을 지나면 붉은 소나무가 쭉쭉 뻗은 소나무 밭이 나온다. 이곳이 무풍한송으로 불리는 소나무 밭이다.
무더운 여름날, 수백 년 된 노송들의 빼어난 자태에 흠뻑 젖다보면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옛 사람들은 바람이 춤을 춘다고 했다. 그 여유와 멋이 좋다.

이 소나무 밭 사이에 비교적 넓직한 오솔길이 있다. 길은 청류천 계곡을 따라 1㎞ 가량 계속된다. 몇 해 전만 해도 아스콘 포장으로 덮여 있었으나 모두 걷어내고 마사토로 깔아 걷기에 그만이다. 여기에 길 옆으로 경전과 게송이 새겨진 시비가 곳곳에 세워져 있어 마음까지 맑게 한다.

이글거리는 한 여름 뙤약볕도 노송들의 가느다란 잎사귀에는 힘을 쓰지 못한다. 발바닥에서 전해오는 마사토의 기운과 사방에서 뿜어내는 소나무 향에 취해 걷다보니 여기가 바로 ‘극락’이다.

본래 무풍한송은 비보림으로 조성됐다. 통도사를 감싸고 흐르는 계곡의 물이 그냥 나가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 풍수가들이 말하는 수구(水口)막이다. 물을 재물로 보기 때문이다. 재물을 오래 머무르도록 하기 위해 소나무를 심어 비보(裨補)를 했던 것이다.
오랜 세월 스님들이 심고 가꾼 무풍한송에 위기가 찾아왔다. 일제 강점기 때 전국적으로 소나무 공출이 있었다. 통도사 스님들이 묘안을 냈다. 소나무를 베어가더라도 산 위에서부터 하라는 것이었다. 벌목작업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방이 됐다. 스님들의 혜안이었을까, 다행히 산 아래에 있던 무풍한송의 소나무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예부터 기한에 발도심(飢寒 發道心)이라고 했다. 춥고 배고파야(여건이 어려울 때) 수행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이런 더위는 모두들 처음이라고 한다. 지금이야말로 정말 공부할 때인가 보다. 그러나 공부하겠다는 이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쇼카 순례단 일행이 금강계단에서 축원을 하고있다.

양산 통도사(通度寺)로 순례를 떠나는 날이 다가오면서 참석이 어렵다는 회원들의 연락이 이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무더위에 바깥나들이는 무리다. 장거리 여행은 위험천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례는 계속됐다.


불교에서 불법승(佛法僧)을 삼보(三寶)라 하고 불교신앙의 시작과 끝으로 여긴다. 불법승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를 이른다.

한국에는 삼보를 대표하는 사찰이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양산 통도사(佛寶)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합천 해인사(法寶), 그리고 고려중엽 보조국사 이래 열여섯 분의 국사를 배출한 순천 송광사(僧寶)가 그곳이다.

적멸보궁을 찾아 나선 4번째 순례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삼보사찰 가운데 으뜸인 불지종가(佛之宗家)이자, 국지대찰(國之大刹)인 통도사이다.

부처님 종가집을 가는데 더위 때문에 다음으로 미룰 수는 없었던 것이다.

구룡지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창건에 앞서 자장스님은 643년 당나라에서 귀국하면서 부처님 두개골, 치아 등 사리 100과와 부처님이 입으시던 붉은 비단에 금점이 있는 가사 1벌을 가져왔다.

자장스님은 사리와 부처님 가사를 봉안할 터를 찾기 위해 나무오리를 날렸다. 오리가 하얀 칡꽃을 물고 왔다. 칡꽃이 핀 곳을 찾으니 오늘의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자리이다.

‘통도사창창유서’에는 이곳을 “삼재가 들지 않는 곳으로 만대불멸하는 땅이며 천신이 옹호하는 곳”이라고 했다.

자장스님은 부처님 사리와 가사를 봉안하고 금강계단을 설치해 모든 승려들에게 이곳에서 계를 받아 득도하게 했다.

백일홍으로 뒤덮인 천왕문

금강계단은 금강과 같이 보배로운 계(戒)를 받는 곳이다. 불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는 부처님이 항상 상주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계단은 출가 승려가 되기 위해 부처님이 증명하는 가운데 계를 받는 곳이 된다.

통도사라는 사찰 이름에는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爲僧者通而度之)”는 뜻이 담겨있다. 부처님이 행하고 손수 실천한 계율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익히고 배워야만 승려가 된다는 의미이다. 곧, 모든 승려들은 이곳에서 계(戒)를 받아서 산문(山門)에 들어서라는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 사리를 봉안했기에 금강계단 앞에 있는 건물 역시 불상이 없는 법당이다. 그런데 통도사 적멸보궁 건물은 다른 사찰의 보궁과 달리 크고 모양이 다르다. 형태가 왕릉 앞에 있는 정자각(丁字閣)과 비슷한 정자형(丁字形) 법당이다. 조선시대 왕릉의 정자각이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라면, 통도사 보궁도 유교식으로 부처님에게 재(齋)를 지내는 공간으로 여긴 듯하다.

전각에 그려진 까지와 호랑이.

그리고 특이하게도 법당 사면에는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이 걸려 있다.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쓰여 있다. 모두가 부처님 집 명호로 같은 의미이다.

통도사는 창건 이후 금강계단에 안치된 사리를 친견하고자 하는 이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중국 사신들이 여러 차례 사리를 친견했다.

그러나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는 왜구들의 사리 약탈로 수난을 겪었다. 심지어 사리가 피난을 가기도 했다. 당시 통도사 스님들은 난을 피해 개성 송림사, 서울 흥천사, 금강산 등지로 옮기면서 목숨 걸고 사리를 지켜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게 약탈당하기도 했다. 다행히 포로로 잡혀있던 옥백거사가 되찾아왔다. 그 후 승병장 사명대사가 사리를 지키기 위해 금강산에 주석하고 있던 스승 서산대사에게 보냈다. 전쟁이 끝나고 서산대사는 부처님 사리는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며 다시 통도사로 보내와 봉안하게 됐다.

이런 연유로 현존하는 금강계단은 여러 차례 중수되어 창건 당시의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유사’에 따르면 “금강계단은 2층으로, 위층 가운데는 마치 가마솥을 엎어 놓은 것과 같다”고 해 그 형태가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금강계단앞에 있는 적멸보궁<왼쪽>과 금강계단위에 놓인 석종형 유물.

현재 금강계단은 2중 사각기단 위에 종 모양의 부도(浮屠)가 놓인 석조계단의 일반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계단의 사방에는 불좌상(佛座像)을 비롯해 천인상(天人像), 신장상(神將像) 등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중수 과정에서 새롭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금강계단 주변에는 층계의 소맷돌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이는 금강역사상이 있다.

금강계단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사리 영험담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날아다니는 새나 산 짐승도 금강계단은 피해간다고 한다. 지금도 간혹 사리탑 계단에서는 한밤중에 방광으로 대낮처럼 밝아 경내에 거주하는 대중이 깨어나곤 한다. 그럴 때면 멀리 양산에서 통도사에 화재가 났다며 불을 끄기 위해 달려오기도 한다. 또한 스님들이 새벽예불에 일어나지 못하면 종소리와 목탁소리가 들려 대중들을 깨우기도 한다. 이같이 불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에는 신비스런 일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 통도사에 전하는 신비한 이야기가 수없이 많지만 창건 당시 일화가 눈길을 끈다.

본래 금강계단이 있던 곳은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던 연못이었다. 자장스님이 이곳은 부처님이 머무실 인연터이니 자리를 비워달라고 했지만 용들은 항거했다.

자장스님이 신통력으로 종이에 화(火)자를 써서 연못에 던지자 물이 끓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에 용들이 달아났고, 눈이 먼 용 한 마리가 자장스님에게 사정했다. 앞을 보지 못해 갈 수 없으니 이곳에 남아 부처님을 따르고 도량을 지키며 살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자장스님은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놓아 용이 살도록 했다. 보궁 옆에 있는 구룡지이다. 이 연지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뙤약볕 아래 돌로 쌓은 금강계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신발을 벗고 금강계단에 들어섰다. 지도법사 보선스님의 축원에 이어 탑돌이를 했다. 뜨거운 돌의 열기가 발바닥에서 온몸으로 올라왔다. 부처님은 길에서 나서, 길에서 법을 전하고, 길에서 열반에 드셨다. 평생 맨발로 인도의 뜨거운 길을 걸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의 안락과 복을 위해서였다.

발바닥의 뜨거운 열기에서 부처님 마음을 느껴본다.

아쇼카 순례단, 5대 적멸보궁을 찾아서<5> : 9월10-11일(1박2일) 설악산 봉정암 (문의 : 062-383-3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