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초원서 완전한 자유 꿈꾸며 무한 고독을 질주하다 [화필여로] <99> ‘칭기스칸 후예들의 삶’…몽골

2016년 08월 31일(수) 18:58

박종석 作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가도 가도 보이는 것은 지평선과 하늘, 건조한 사막의 바람 그리고 뜨거운 햇살뿐이다. 2015년 여름이다. 20일간의 몽골 탐사 중 여행 초반에는 지루함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이라 후회하며 집중하지 못했다. 차량 이동 중에는 낮잠으로 무료하게 시간을 보냈다.

단순함과 지겨움이 공허한 시간으로 느껴져 바람처럼 흘러가듯 무색무취(無色無臭)라 여겼다. 그러나 바람이 남긴 흔적의 노래들은 시간이 흐른 후에 은은한 차향(茶香)처럼 음미하며 반추(反芻)하게 만드는 매력이 숨어있다. 몽골여행은 지정학적 조건상 배낭여행이 쉽지 않아 7명의 구성원과 부자지간의 기사 2명, 가이드를 포함한 총 10명이 세대 간의 이질감을 듬뿍 안고 경계하듯 조심하며 태엽(胎葉)을 감은 시계처럼 움직인다.

고비사막에서 낙타 떼를 보다.

울란바타르 칭기스칸 국제공항에 내려 바로 러시아제 블루공 2대의 차량에 합승해서 점심식사를 하고 대형마트에서 생수 및 생활필수품을 구입한 후 남부 차강소부라가로 이동한다. 약 2천700㎞의 거리를 나눠 어느 날은 14시간도 주행한다. 하루 평균 6시간 이상 이동으로 고독의 냄새를 지겹게 흡입(吸入)하는 유목민 체험학습장 같았다. 남부로 가는 고속도로는 2013년부터 2년간의 공사로 700㎞를 구간마다 외국기업들이 수주(受注) 받아 시설했는데 이제는 자본주의의 물류소통에 눈을 뜨는 느낌이다. 그러나 도로는 한산하고 경찰의 음주 단속도 하는데 한 번도 단속경찰을 본적이 없다. 편안한 길만 갈 수 없는 사막이지만 만달고비를 4시간 만에 주파한다.

거친 누런 지평선에는 야국(野菊) 천지로 두꺼운 갑옷을 입은 메뚜기 떼가 날면서 따다닥 따다닥 쇠 소리를 낸다. 오후 2시에 만달고비 도시에 도착한 마을 풍경은 땡볕을 닮아 건조하고 척박한 느낌이다. 한가한 어느 식당에서 고기가 메뉴가 전부인 점심식사를 마치자 차량에 기름을 주유하고 다시 메마른 지평선을 가른다. 지역의 환경에 따라 지나는 초원은 천지사방이 야생 부추 밭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몽골용어로 탄(TAN)이라 부르는데 공기가 부추 향으로 바람에 날리니 메워서 자주 콧물과 재채기가 계속 나올 정도다.

‘화력발전소 하늘의 뽀얀 스모그가 건조하지만 초원이 배경이다’

가끔 유목민 게르와 양떼가 보이는데 그들이 기르는 동물은 다섯 가지로 낙타, 말, 소, 양, 염소로 귀중한 재산가치의 기준이 된다. 하행하는 길에 쌍봉낙타 수 십 마리가 물웅덩이에서 더위를 식히는 광경에 흥미를 가지고 관찰 한다. 낙타 1마리당 50만원 수준, 말은 100만원 정도인데 말은 목초지를 찾아 이동할 때에 주로 사용된다. 지루한 표정을 간파한 가이드가 일정에 없는 어느 유목민 게르를 안내한다.

15명의 대가족이 말과 양을 기르는데 할머니와 손자들이 게르 아래서 햇빛을 등진 그늘에 앉아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나는 준비한 선글라스 20여개 선물하고 먹을 갈아 화선지에 그들의 얼굴을 그린다. 그 사이 할머니께서 마유주(馬乳酒)를 대접 하는데 약간 신맛이 나지만 연거푸 따르는 술을 석 잔을 마셨더니 취기가 바로 오른다. 귀한 손님에게는 잔이 비워지면 계속 대접하는 것이 풍습이란다. 아마도 손님에 대한 예법인 듯 하지만 땡볕과 아래서 기름에 불붙이듯 온몸이 열기가 올라와서 사양한다. 1시간 정도 머무르다 헤어지는데 할머니가 말 젖으로 발효시킨 돌덩어리 치즈를 비닐봉투에 담아 선물로 준다. 단순한 생활로 화려한 가구가 필요 없는 그들은 해지면 자고 해 뜨면 일하는 것 이외에 더 바랄 수 없는 간결한 삶이라 얼굴들도 해맑은 표정이다.

‘몽골 남부 만달고비시의 땡볕 여인들’

아쉬운 헤어짐으로 다시 흙먼지 날리며 전진해 석양빛을 닮은 붉은 사암지대, 고비사막의 그랜드캐년 계곡에 도착한다. 창공에는 날쌘 제비 떼가 날고 돌탑을 쌓아둔 그 위에 소원을 빌며 남겨둔 지폐 가운데 반가운 우리 돈 1천원 짜리도 보인다. 규모는 작지만 붉은 사암계곡의 형성과정과 원시시대 유목민의 생활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암각화도 주변에 있다. 약 20㎞를 더 가면 사람이 사냥하는 모습과 동물들이 새겨져 있는데 아쉽게도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볼 수 없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게르촌으로 가야하는데 눈짐작으로 가깝게 보여 1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아도, 더 많이 소요된다.

계곡 아래의 굴곡이 심한 언덕과 자갈밭 비포장도로를 7㎞를 더 가니 황량한 분지 가운데 자리 잡은 캠프촌이 있다. 오늘 머무를 차강소부라가 지명 안에 속한 캠프다. 밤 8시 도착으로 300㎞를 약 9시간 이동했다. 해는 밤 10시에 지는데 9시에 식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열악한 샤워실의 찬물로 씻은 후 늦은 밤에 게르 앞 땅바닥에 누워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은하수와 별빛을 올려다본다. 느리게 이동하는 인공위성과 선명한 반딧불이도 활동한다. 정적(靜的)이 흐르는 사막의 어느 한 지점, 벌레소리도 일체 들리지 않은 고요의 시간이지만 여우와 늑대들이 서식하는 곳이라 철조망 울타리가 설치돼 있는 완벽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경계지역이다.

‘몽골 울란바토르 도심 전경중’

사막은 밤낮의 기온차가 심하다. 게르 내부에 설치된 화목난로에 장작을 피워 공기를 데워서 잠을 청한다. 새벽이 되면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찬 공기로 얼굴이 퉁퉁 부어 살찐 기분이다. 밤샘 장작을 피울 수 없기에 숙소의 종업원들이 새벽 5시에 불을 피워주기도 한다. 고비사막은 하늘과 땅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공기가 건조해서 생수를 마셔도 콧속이 맹맹하다. 코 안에 불순물이 생겨나는 조건으로 나무가 일체 없는 벌거숭이의 땅이자 바람만이 흥겹게 춤추는 대형 무대와 같다. 그 안의 동식물과 유목민의 외로움이란 살아본 경험자만 알 것 같다. 그러나 사막의 동물들과 야생화들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부여받은 생명을 마감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적응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