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만들어 가는 것”…이정표 하나없는 그곳을 걷다 [화필여로] <100> ‘칭기스칸 후예들의 삶’…몽골 초원의 바람을 따라서

2016년 09월 07일(수) 19:12

박종석 作 ‘고르방 사이항 계곡’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생명을 부여받은 한 생사의 수레바퀴는 인류의 시원부터 미래까지도 지속될 것이다. 인간에게 생명은 이유 없는 끝은 없고 해답 없는 수수께끼 같은 항해의 연속이라고 어느 작가는 말한다. 중중무진(重重無盡)! 인연에 인연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끝없는 연결고리가 이어지고 원시와 태초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 인류의 상고사와 생존문화가 축적돼현재의 최첨단 시대까지 도달했으리라. 우리의 한반도도 과거 몽고 9차 침입으로 쑥대밭이 된 고려시대를 생각하면 강화도와 삼별초, 팔만대장경, 환향녀(還鄕女) 등이 떠오른다. 교과서에서 학습한대로 몽골과 흉노, 거란은 무지막지한 북방 오랑캐라고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몽고반점과 풍습이 자연스럽게 전해져, 악연(惡緣)은 과거사가 되고 현재는 매년마다 600여명의 몽골인들이 근로자로 한국으로 유입되고 있다. 또 한국여행객이 몽골여행을 선호하는 각별한 선린(善隣)의 우호관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의 수레바퀴에는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존속될 수 없는 자연적 순환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

몽골 전통술 만들기를 견학한 후에….

거대한 지평선 초원의 역사 또한 척박한 환경과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다. 오늘도 그러한 길을 따라 중독된 환자처럼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거침없이 질주 한다.

부루공 차량이 황갈색의 거친 자갈길을 거침없이 오르지만 그만 타이어 펑크가 나고 말았다. 40여분 뙤약볕 아래서 타이어를 교체하는 동안 바로 옆 땡볕에 달궈진 자갈밭에서 무엇인가 움직인다. 척박한 환경 적응을 위해 갑옷 같은 껍질을 가진 곤충이 느리게 걷고 도마뱀이 풀뿌리 사이로 잽싸게 도망간다.

우리는 또 5시간을 질주해 오후 2시에 달란자드가드라는 도시에 도착해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다. 옆 식탁에 할머니, 며느리, 손자, 손녀가 외식하는 모습이 정겹다. 예전의 우리나라처럼 몽골은 현재에도 4대가 함께 사는데 사위도 함께 하는 가족제도다.

온가족이 전통복장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몽골인들.

소박한 가족애와 포근함이 함축돼 있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먹을 것을 더 주고 흐뭇하게 바라보신다. 인간적 교육 측면에 앞서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다. 안복(眼福)을 누리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나의 어린 시절 자상한 할머니를 보듯 옛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다시 뿌연 황토먼지의 긴꼬리를 만들어내면서 하늘 저편으로 오르듯 차는 계속 전진한다. 그런데 고비사막의 지평선이 아닌 용이 누워있는 듯한 산맥이 보인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반가운 지형 변화다.

‘환영식’

1시간30분 후 고르방 사이항 국립공원 지역인 욜린암에 도착해서 독수리 계곡으로 접근한다. 녹음이 우거지고 비도 간간히 내린다. 공기가 상쾌하고 습기가 느껴져 더욱 좋다.

입구의 게르 상점에서 소박한 상품들을 구경하고 바로 옆 박물관에서 다양한 화석과 박제된 동물들과 공룡알 등 이 지역의 다양한 빛바랜 생태환경의 흔적을 접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들어가보니 사막 가운데 유일한 고산의 녹음이 우거진 계곡으로 물이 흐르고 생기 넘치는 야생화 군락지도 있다. 이곳에는 먹구름도 아닌 햇살이 쨍쨍한데도 자주 장대비가 뿌리다가 갠다. 깊은 계곡에는 한 여름에도 녹지 않은 얼음도 있고 호수도 있단다. 1시간 넘게 완주하고 돌아온 일행들은 감기예방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그림을

‘손님맞이’

그리는데 그곳에서 젊은 한국 관광객 몇 사람을 만난다. 그들은 몽골에 사는 교민이자 한국교민학교 선생님들인데 몽골에 사는 기독교 선교사가 150여명으로 그들의 자녀들을 가르친단다. 놀랐다. 몽골 울란바타르에 선교사가 그렇게 많다니. 그만큼 한·몽 교류가 많아진 것이다. 서로 소통하기 위해 제작한 한인동포신문을 보니 한인들이 사업차 거주하는 숫자가 꽤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

계곡을 빠져나와 다시 초원을 지나는데 오후 8시로 황홀한 무지개가 뜬다. 지루함에 달콤한 꿀물을 한 스푼 타 마신 것처럼 신기하다.

길 없는 길을 가다보니 분리돼 버린 일행의 차량을 찾는데 30여분이나 허비한다. 지평선 넘어 어느 지점에 차량의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며 기다리는 과정을 거쳐 두 대의 차량이 대형 게르촌에 이른다. 신비하게 느껴지는 것은 황량한 초원에 대형 호텔이 있다니!

성수기 때 몇 개월 손님을 맞아 1년을 먹고 살아야하는 환경으로 시설을 운영하다가 도시에 가서 겨울을 넘기고 다시 돌아온단다. 그래서 물가가 한국과 비슷하다.

우리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전통 복장으로 남자와 아이 그리고 엄마가 우유를 들고 와서 손끝으로 우유를 적셔 세 번 뿌리며 대명천지에 감사하고 모든 일행이 조금씩 나눠 마신다.

‘환영식’

예전에 우리나라도 행했던 고수레로 자연에 먼저 감사하고 다음 손님에 대한 지극한 환대의 예식이란다. 종업원들이 모두 영어로 대화한다. 미리 온 외국인들도 꽤나 많다. 넓은 2층에서 테이블에 일행들이 둥지를 틀고 앉아 붉게 지는 석양을 보며 맥주를 마신다.

이곳은 물이 귀하지만 샤워 시설도 좋고 분위기 또한 아름답다. 밀린 빨래도 하고 그림도 그리다 보니 새벽 1시40분이다. 낮이 길어 늦게 해가 지는 몽골 시간은 왠지 25시처럼 넉넉하게 느껴진다. 끝없는 지평선이 주는 이미지와 사막의 황량함 또한 독특한 생존방식의 역사문화를 엿볼수 있다.

몽골제국을 형성한 13세기의 칭기스칸을 떠올리며 그는 잔인한 정복자인가? 아니면 세계사의 최고의 영웅인가? 골똘하게 한다. 비교하건대 거름이 많은 옥토(沃土)에 씨앗은 영양과잉으로 고사(枯死) 될 수 있지만 척박한 황무지에 씨앗을 뿌리면 한두 그루 나무가 질기게 살아남아 큰 그늘을 형성할 수도 있는 것처럼 환경이 어려울수록 생존력이 강화되기에 척박한 초원의 몽골제국이 세상의 절반을 정복하지 않았나 싶다.

유목민의 기상을 닮은 듯 하찮은 메뚜기나 도마뱀도 빠르게 움직인다. 적막한 사막에서는 가끔 쉬면서 마주친 곤충도 무척이나 반갑다. 쫓기듯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와 키 작은 들꽃의 한들거리는 모습에도 생명의 경외를 느끼기에 충만한 공간이다. 이제는 서서히 적응이 되는지…. 적적(寂寂)한 공간이지만 지루함과 선택의 후회가 없어지고 초원의 시원한 바람에 잘 적응해간다. 그런 것이 인간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