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광주에 목매는가? 본사 사장 ssnam48@kjdaily.com

2016년 09월 07일(수) 20:20

4·13총선 후 정당의 새 대표들이 뽑히고 나자 2017년 대통령선거전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무진장 더운 올여름, 광주를 번질나게 찾은 이들은 다름 아닌 정치인들이다. 8월에는 새누리당 당 대표 선거에서는 ‘약무호남시무국가: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극단적 표현이 넘쳐났고, 더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서는 호남적자론 호남며느리론이 판을 쳤다. 마치 호남 없으면 정치를 못할 것처럼 부산을 떨었다.

9월 들어서도 광주와 5·18국립묘지는 정치인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판을 바꿔 내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잠룡의 출마 선언이 광주에서 이어지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의 출마 선언에 이어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광주에서 대권도전을 시사했고, 대권 출마 선언을 한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더민주의원, 이재명 성남시장도 광주를 기점으로 대권출마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이들은 왜 대선출마 출정식을 광주에서 갖는가. 왜 광주시민에게 먼저 ‘정권교체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하는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호남의 정신, 김대중의 정신 때문인가? 광주를 찾은 여권 잠룡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대권 도전하는 사람이 광주를 배경으로 선언하는 것은 이 지역이 소외돼 피해 의식이 있고, 거기서 표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모양’이라고 그 이유를 찾았다. 아니다. 광주의 정치의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왜? 현재 한국정치는 호남정치가 주도권을 잡은 것 분명하다. 야권 표심의 풍향계라 할 수 있는 광주를 선점하기 위한 구애경쟁은 불가피하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광주가 ‘자신의 사회적 어머니’라고 말할 정도다. 김부겸의원도 ‘문재인 후보로는 호남을 끌어안지 못한다’면서 출마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호남이 오지 말라 해도 호남에 와서 굳이 대선출마 선언을 하고, 멀리서도 호남정신·광주정신을 잇겠다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 호남은 늘 옳은 선택을 했고, 한국 현대사에서 호남만큼 희생하며 민주주의 대의를 지키려고 한 지역도 없기 때문이다. 호남이 지지하고 선택하면 국민이 호응하고 인정해준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호남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있다. ‘우리가 호구인가?’ 호남 사람 중에 많은 이들이 희생은 그만하고 호남에 어떤 이익이 오는가를 따져보자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떼만 쓰지, 호남에 무엇이 가장 필요하고 호남을 위해 무슨 일을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은 후보에 대해서, 호남은 아주 냉정한 분석을 하겠다는 자세다.

호남은 올봄 4·13총선에서 제1야당을 과감히 버렸다. 호남의 변화를 읽지 않고 안주하거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정치집단이나 리더는 더 이상 발붙이기 어렵다. 선거때만 되면 수많은 정치인들은 호남민심에 대해 이런저런 해석을 제시하며 선택해달라고 보챘다. 필자가 보건대, 대통령 선거를 15개월 남겨놓은 현재 대선 출마 후보 중에 호남에 희망을 주는 후보는 없다. 시간이 흘러 조금 덜 싫은 정치인 중에 가장 양심적인 이를 선택하라면 어쩔지 몰라도, 현재는 아니다. 국민의 바람에 호응하는 정치, 눈살 찌푸리지 않게 만드는 정치인,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정책과 제도들을 만들어낼 ‘위인’이 보이지 않는다.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치로 행복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정치적 사명을 잘 아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얼마전 ‘아주 낯선 상식-호남 없는 개혁에 대하여’라는 책을 낸 김욱 서남대 교수는 ‘호남은 호남의 이익을 위해 투표해야 하며, 그 어느 정당이든 호남 표를 얻고 싶으면 호남 유권자들에게 구걸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필자는 광주로, 또 광주로, 몰려와 대통령 되겠다고 호소하는 이들에게 ‘당신들이 아는 호남의 정치적 정체성은 뭐냐’ 묻고 싶다. 한국 현대사에서 호남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피흘릴만큼 피흘렸고 희생할만큼 희생했다. 더 이상 강요말라. ‘민주성지’니 예의를 갖추는 것까지 막진 못하겠으나 화려한 허울의 힘에 짓눌려 진짜 제대로 누려야 할 온갖 실질적인 지역적 이익을 포기하도록 강요하진 말라.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 호남의 경제적 차별을 얼마나 극복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지,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어 지역 내 총생산(GRDP)이 얼마나 늘 수 있는지, 정확한 수치로 말하라.

이제 호남사람들도 ‘호남홀대론’을 이야기 하며 슬퍼만하지 않겠다. 우리도 세속적 이익을 위한 정치적 욕망을 가질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집단 이익과 가치를 위해 광주가 뿌린 땀과 눈물에 대해 당신들이 답할 차례다. 대선 후보들이 광주에 먼저 와서 5월 광주의 역사와 정신을 지키고 계승하려는 자세는 좋지만, 광주를 마치 민주주의 박물관처럼 역사적 의미를 확인하고 싶을때만 찾아와 괴롭히진 말라.

지금 광주·전남·전북 민심은 어느때보다 현명하다. 20세기에 세운 민주·인권·평화를 향한 정치가치를 21세기에 더 크게 완성하고 싶어한다. 지난 총선에서 대한민국 대부분 정치평론가가 야당 분열은 대선필패라며 호남을 맹비난했지만 호남은 제3당을 탄생시켰다. 새로운 개혁정치의 씨앗을 잉태하기 위해서다. 호남 출신 정치지도자, 대통령 후보는 나올 수 없다 해도 호남정신과 정치철학을 공유하는 이를 검증하고 또 검증할 것이다.

적어도 이번엔 호남에 가장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파트너를 고를 준비가 되어있다. 호남을 배신하지 않고, 호남과 운명을 같이 할 파트너, 호남을 이용하는게 아니라 인정하고 모시는 정치인, 우리는 그런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