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헌신 조비오 신부 영면하시길

2016년 09월 22일(목) 19:06

민주화의 산증인으로 광주정신을 실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회봉사활동으로, 늘상 그랬다. 착한 목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광주 시민사회 대표 원로인사인 천주교 광주대교구 조철현(세례명 비오) 신부가 21일 선종(善終)했다.

“공적인 차원에서 엄격한 신부의 모습을 보여주셨다면 사적으로 뵈면 항상 따뜻하게 안아주신 분이셨다. 5월 정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상황에서 항상 답답하고 속상해하셨지만, 광주가 다시 대동단결해 시대의 횃불로 타오르길 바라셨다.”

조카인 조영대 신부의 회고에서 고인의 큰 뜻을 헤아릴 수 있다. 그랬다. 조 신부는 질곡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맞았다. 지난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은 조 신부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다시 계림동에 돌아와 5월의 참상을 겪었다.

시민수습대책위원장을 맡아 계엄군의 잔혹한 폭력에 맞서 총을 든 젊은이들을 찾아가 평화 시위를 촉구하며 총기 회수에 나섰지만,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의 핵심 동조자로 지목돼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고인은 1989년 열린 5·18 진상규명 국회 청문회에서 “신부인 나조차도 손에 총이 있으면 쏘고 싶었다”며 신군부의 잔학한 학살행위를 생생하게 증언, 처벌의 단초를 만들었다.

2006년 8월 31일 38년간의 사목 생활을 퇴직하고 나서도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이사장,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과 5·18기념재단의 초대 이사장 등으로 민주와 인권, 통일과 민족화합, 사회복지운동에 주력했다.

그랬다. ‘청빈의 삶’을 살다간 시대의 의인이었다. 계림동 본당 신부로 부임하면서 소화자매원과 인연을 맺은 고인은 교구청에서 제공하는 사제관을 거부하고 작은 아파트에서 홀로 살며 여생을 봉사활동으로 보내왔다.

통장 잔고는 0원 이었다. 가난한 성자였다. 어쩌다 돈이 들어오면 새로 짓는 성당을 위해 봉헌하거나 어려운 이웃에게 남김없이 베풀었던 때문이다. 유지대로 고인이 남긴 평소 애독했던 책과 옷 몇 가지까지 기증할 계획이다.

그랬다. 고위 성직자 품위이자 교황의 명예 사제인 ‘몬시뇰’에 임명됐던 조 신부다. 이제 긴 세월 지셨던 십자가 내려놓으시고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시길 바란다. 고인은 23일 오전 10시 임동성당에서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의 집전으로 장례미사를 마친 뒤 영면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