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에 권력을, 권력에 상상력을’ [이영미의 파리문화기행] 파리의 복합문화예술공간 (2) ‘버려진 공간으로 들어간 예술을 초월한 예술’, 스쾃

2016년 09월 28일(수) 18:48

히블리가에 있는 ‘호베르네 집’ 전경.

파리에 여행을 온 관광객이라면 어김없이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 지하철을 이용하게 될 경우, 히볼리 거리(Rue de Rivoli)를 만나게 된다.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보고 시간이 남는다면, 아니, 시간을 내서라도 히볼리 59번지에 있는 ‘호베르네 집(Chez Robert)’을 방문해보자. 당신은 스쾃(Squat·불범 점거)을 통해 공동체의 삶을 위한 예술의 저항정신을 세상에 알린 약자들의 유쾌한 혁명의 현장을 보게 될 것이다.


■ 약자들의 유쾌한 권력, ‘스쾃’

스쾃(squat)은 불법 점거를 일컫는 말로써,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작가들이 철거 직전의 건물을 작업실이나 공연장으로 사용하면서 주목받게 됐다. 본래, 스쾃은 오스트리아의 목동들이 허가 없이 남의 초지에 들어가서 양을 먹이던 행위에서 유래된 말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시기를 거쳐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스쾃은 자본의 편중에 의해 버려진 빈민가의 비어있는 공간에 가난한 노동자들이 잠잘 곳을 찾아 들어가 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사회, 계급의 불평등에 항거하는 집단적 투쟁을 벌이면서 사회적 의미로 쓰이게 됐다.

스쾃은 프랑스 68혁명의 시기를 거쳐, 1970년대 말과198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사회운동의 성격에서 도시의 빈 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전환하려는 예술운동으로 성격의 변화가 이뤄졌다. 자본주의에 의한 도시화의 또 다른 어두운 상징인 잉여 공간에 예술가들이 ‘예술’이라는 권력으로 버려진 공간을 점거하는 ‘유쾌한 혁명’, 스쾃이 시작됐다. 이를 주도하는 예술가들을 ‘스쾃티스트’로 부른다.

이들은 1990년대 말 파리 중심부에 있는 ‘호베르네 집(Chez Robert)’을 성공적으로 탄생시키면서 삶과 예술의 통합 가능성을 세상에 증명했다.

▶2004. 전남대 건축공학박사 ▶2005-2007 전남대 post-doc/청주대 post-doc ▶2009-2011. 전남대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2014-현재. Paris 8대학, 도시계획 박사과정

■ ‘예술의 초월’
공유의 가치 실현한 ‘호베르네 집’

히볼리 59번지(Le 59 Rivoli)는 예술가 집단이 창작 및 전시 활동을 하고 있는 ‘호베르네 집-자유로운 전자(Chez Robert - Electron Libre)’이 위치해 있는 건물의 주소다. 이곳은 일 년 중 월요일을 제외하고 항시 대중에게 열려있다.

현재 30여 개의 아틀리에로 구성돼 있으며, 1층에서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콘서트가 열린다. 원래 이 건물은 프랑스 정부와 LCL 은행의 공동소유였으나 은행이 파산하면서 정부에 소유권이 넘어가게 됐고 그 이후 오랫동안 방치됐다. 자본주의 세계의 독점적 공간 사유화와 자본의 편중에 불만을 가진 KGB 라는 세 명의 예술가들이 14년간 방치돼 있던 곳을 1999년 11월1일, 불법 점거함으로써 약자들의 유쾌한 반란이 시작됐다. KGB란 칼렉스(Kalex), 가스파(Gaspard), 브루노(Bruno)라는 세 명의 예술가들의 이름을 따서 만든 별명이다. 이들이 ‘호베르네 집’을 이끌어온 주요 인물이며, 현재 이곳의 공동책임자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공간 소유에 강하게 저항하는 방법으로 도시의 빈 공간에 주목했고 이곳을 무상으로 점거한 후 교류와 소통을 위해 모두와 공유하려는 실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점거를 시작한 4일째 되던 날부터 시민들에게 공간을 개방했다.

작품에 관해 관람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작가.

예술가들은 이 공간을 ‘호베르네 집’으로 명명했으며, 몇 년간 쓰레기만 가득 찬 폐허였던 공간을 새로운 장소로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전시회, 퍼포먼스 등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해 시민들에게 무료로 공개했다. 버려진 공간을 특권층의 예술 공간이 아니라 공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또, 가난한 예술가들에게는 창조할 수 있는 작업 공간과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작품을 전시하길 원하는 예술가들에게는 전시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려는 KGB의 목표를 실현해 나갔다.

폐허였던 건물이 창작 및 전시공간이 되면서 시민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공유의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스쾃은 프랑스 내에서 예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행위이다. 점거와 철거의 반복 속에 자신들의 사회정치, 예술의 공유, 예술의 사회참여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혁명과 같다.

프랑스에서 스쾃의 성공은 68혁명의 주축이 됐던 상황주의자(situationist)들이 주장한 이론에 영향을 받았다.

메츠 퐁피두센터 개관식때 전시된 '예술의 초월'.

일상과 분리된 부르주아적 ‘예술을 폐지’하고 예술을 문화라는 범주로 끌어들여 일상생활 속에서 ‘예술을 실현’해야 하며,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예술과 정치가 분리돼 있지 않다는 ‘예술의 초월(Depassement de L’art)’을 강조했다.

‘호베르네 집’은 예술의 실천적 행동을 통해 자본의 권력에 대항하며 공유의 사회적 가치를 성공적으로 실현시킨 사례가 됐다.

‘예술의 초월’의 개념은 프랑스 북부 도시 메츠에 2010년 5월에 새롭게 개관한 퐁피두센터(현대미술센터) 개관식의 주요 컨셉이기도 했다. 이는 예술의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프랑스 사회의 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작품이 전시된 아틀리에.

■ 방치된 폐허, 소통·공유 공간 탈바꿈

예술가들은 ‘호베르네 집’의 무단 점거 이후 정부로부터 불법 사용으로 고소당했으나 추운 겨울에는 거주인을 추방할 수 없는 프랑스법 덕분에 이들은 점거 상태를 유지한 채 예술적 활동을 지속해나가면서 법정 싸움을 진행해나갔다. 당시 이들을 도와주는 변호인단이 결성됐고 프랑스 언론은 ‘호베르네 집’의 불법 점거 사건을 ‘점거 예술(Squat+art)’이라고 표현하며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이처럼 언론의 관심에 힘입어 정치계와 시민사회의 관심으로 이어졌으며, 예술가들이 점거했던 폐허는 점차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호베르네 집’의 예술적 시도를 눈여겨본 파리시는 이 건물을 정부로부터 매입해, 2009년 합법적으로 이들의 입주 근거를 마련해 줬다. 현재 연간 방문객의 수가 4만명을 넘어서면서 파리에 있는 현대예술 공간 중 세 번째로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는 유명한 문화예술의 장소가 됐다.

벽화가 그려져 있는 계단.

오랜만에 방문한 ‘호베르네 집’은 여전히 관광객들로 붐빈다. 가족단위로 온 프랑스 가족들, 청소년들, 외국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는 이곳에서 작가들과 방문객들은 각자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사진도 함께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나가는 방문객들에게 작업하다 말고 인사를 건내는 예술가들은 예술이 그리 멀지 않다고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다.

‘호베르네 집’이 이루어낸 스쾃의 성공을 보니, 상황주의자들이 주축이 됐던 프랑스 68혁명의 ‘권력에 상상력을, 상상력에 권력을’(L‘imagination au pouvoir, pouvoir de l’imagination)이라는 유명한 슬로건이 생각난다.

예술가들이 권력에 좌절하지 않고 버려진 공간의 점거를 통해 불평등에 저항하는 예술적 상상력은 그들에게 권력이었고, 잉여 공간에 자리 잡고 예술의 사회적 참여를 실천하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정부의 집단 권력은 무상 임대라는 파격적 상상력으로 응수한 결과란 생각이 든다.



스쾃 운동이 68혁명을 거쳐 70년대 이르러 그 성격이 변화했다는 것을 앞서 밝힌 것처럼, 프랑스 문화정책도 이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1970년대 프랑스는 국가가 문화 부분의 적자 재정을 방어하는 지원자가 아니라, 예술가들과 대중 사이의 틈을 중재하는 파트너로서 문화정책을 세웠다.

이 시기는 예술의 사회문화적 역할과 순수창작활동의 갈등이 여전히 존재한 시기였다. 80-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의 프랑스의 문화정책은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에 대항하며 자국 문화를 보호하려는 ‘문화 예외주의’를 거쳤으며, 문화적으로 배제되는 사회 계층을 없애고 문화는 공공서비스라는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졌다.

권위적 관료정책을 버리고 이러한 문화적 가치 인식을 바탕으로 ‘호베르네 집’이 무상 예술 창작 및 소통과 공유의 공간으로 탈바꿈될 수 있었던 것에, ‘상상력에 권력을, 권력에 상상력을’이라는 68혁명의 슬로건은 현재 우리 사회에 재요청해야 할 상상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