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가족제도 결집과 화평은 칭기스칸 제국건설 시작이었다 [화필여로] <101> ‘칭기스칸 후예들의 삶’…몽골 ‘운명 공동체’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

2016년 10월 05일(수) 18:45

박종석 作 ‘초원의 기상’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배낭은 여행의 필수이지만, 그 무게는 육체의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즐거움의 부피는 상황에 따라 크기가 배가 될 수 있다. 이는 체험에서 느낀 뒷맛의 여운이 말해준다.

집 떠날 때 첫걸음 내딛기가 어렵지만 떠나면 모든 것은 해결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몽골여행은 차량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육체적 노동이 가감된 여정으로 자연과 역사와 그들에 대한 생존방식을 관심으로 화두를 설정해본다.

고르왕새항 국립공원의 다음 여정인 헝그린엘스의 캠프에 도착하니 게르 천막이 50여동 포진해 있다. 성능 좋은 사륜구동 차량도 30여대가 주차돼 있고 유럽 여행객들이 단체로 운집해 있다.

2층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석양의 채색미는 자연의 오묘함을 만끽하게 한다. 오이를 잘게 잘라 칵테일 한 몽고 보드카와 함께 자연과 사람의 생각을 음미한다.

밤 11시에 북두칠성을 헤아리며 부르공 운전기사인 구레와 사후과 기사를 내 게르로 초대해서 대화를 나눈다.

두 사람은 부자(父子) 관계로 아버지 사후과 기사는 63세이고 구레는 31세이다. 셋째 아들인 구레 기사는 가이드 겸 운전을 오래한 베테랑으로 아버지 차는 항상 후발대에서 아들을 의지한다. 러시아제 부르공 차량은 약 2천만원 정도이지만 각자 개인소유로 수리 및 관리도 개인이 철저하게 점검한다. 후미 차창 아래에 붙인 스티커에 ‘지도 없이 탐험하는 여행’이라고 영어로 쓰여 있다.

네비게이션이 없는데도 감각과 경험으로 목적지를 잘 찾아간다. 밤에는 별자리를 보고 이동한다.

항상 리더차량은 구레가 앞서지만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운전을 한다. 자식으로서 아버지에 대한 효도와 애정의 표시다. 호기심에 그들과 새벽 1시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휴식 중 유목민과 함께…

다음날은 오후 8시까지 자유 시간으로, 잠자는 용의 형상처럼 길게 누워있는 산맥을 바라보며 게르캠프 뒤의 구릉을 10㎞ 트레킹을 한다.

산도 아닌, 언덕 같은 야산은 풀 한포기가 귀한 거대한 무덤 같기도 하고 육중한 UFO 모형 같기도 하다. 거센 바람과 자갈투성이에서 돌 줍기로 3시간 이상을 걷는다. 지평선이 아닌 곡선의 사막이라 지루함을 덜어준다. 아마도 망망대해 같은 지평선을 홀로 걷는다고 상상하면 그 외로움이란 이루 말 할 수 없는 정적의 감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다행한 공간이다.

오후에 느닷없는 굵은 비가 억수로 퍼붓는다.

순간 게르 안이 물바다로 변한다. 약 20여분 소나기가 오다 다시 햇볕이 쨍쨍 비추는 스콜현상이다. 사막의 잡초들에게는 행복한 영양보충이라는 가뭄에 단비다.

석양이지만 대낮같은 8시에 일행들을 태운 2대의 차량이 헝그리 엘스의 사막 산 입구에 하차해 경사진 모래사막 산을 오른다.

발목까지 빠져 맨발로 힘겹게 오르는데 사후과 기사는 날개 달린 백마처럼 쉽게 정상에 오른다. 날렵한 몸매에 건강한 육체를 유지한 느낌이다.

‘헝그리 엘스’

사후과와 구레 기사는 식사 메뉴 가운데 고기 식단을 선호하고 야채는 거의 섭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야채는 나에게 권해서 나는 고기와 바꿔서 먹는데 서로 기분 좋은 파트너다. 육식체질이라 힘이 넘치는가 싶다.

모두들 정상 등고선의 좁은 길에 서서 고개 숙인 사막산과 붉은 석양을 바라본다.

중첩된 사막의 산들이 은은한 선홍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자연이 만든 파노라마와 같은 경이로운 작품이다. 20여분 땀 흘리며 올라 왔는데 바람이 거칠게 불고 차갑다. 아쉬운 시간이다. 내려 갈 때는 사후과 기사는 5분도 안 돼 훌훌 날아가듯 하산한다. 급경사이지만 모래가 이불같이 푹신해 관절에도 무리가 없다. 나도 따라서 쉽게 내려가는데 그는 칭기스칸의 후예다운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듯 몽골 독수리를 닮았다.

사막아래 작은 오아시스가 있는 중턱에서 플라스틱 박스에 앉아 모래썰매를 탄다. 약 80m정도를 질주하는데 내 몸은 마지막에 균형을 잃고 내동댕이치듯 모래에 쳐 박히지만 사후과 기사는 완벽한 동작으로 완주한다. 그런 노익장의 지혜와 패기를 보면서 아들 구레에게 아버지의 존경할 점은 무엇인가 물어본다.

그저 미소만 짓다가 한참 후 대답한다. “함께 일해서 좋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는 소감과 함께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해도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연주’

지혜는 아버지가 앞서고 아들은 겸손과 지극한 봉양으로 아버지를 염려한다. 아버지의 구심력 안에서 상호보완하고 50여명 되는 자식과 손자들은 대가족의 끈끈한 사랑과 평온의 결속력을 갖는 듯하다.

몽골사람들은 친척의 애경사에는 아무리 먼 거리라도 찾아가 위로와 축복을 함께 한단다. 도심을 벗어난 유목민들은 철저히 가족중심으로 데릴사위 제도가 이어져 장인의 집에서 일하며 재산 분쟁도 거의 없이 협동하며 공동체 정신이 강하다.

구속을 싫어하는 방임의 생활역사를 느끼게 하는 몽골도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대명절인 설과 추석에는 국민 대이동으로 가족 중심의 구심점 문화였는데 이제는 많이 퇴색돼 이기적 개인중심으로 변해가는 것이 아쉽다.

물신주의에 의해 효도사상이 무너지고 있는 우리의 상황이 안타깝다. 듣기 흉흉한 재벌가들의 가족 간의 재산 소송이 빈번하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고 부모가 아프면 요양원에 보내 돈으로 해결하는 우리의 현실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현상이다.

이는 곧 물질이 정신을 짓누르는 불균형, 부조화 현상의 단면이라 할 것이다. 20일 동안 척박한 여정을 부자(父子)와 함께 하다 보니 전통과 문화적 관점이지만 보기 드문 휴머니즘을 떠올리게 한다.



가족 간에도 생각의 충돌이 생겨 날 수 있다. 정치, 경제, 문화 부문에서 시대와 풍습의 관점에 나라마다 합당하면 정당하다는 논리는 인류역사 이래 거의 흡사한 공식으로 유지돼 왔다. 그러나 보편적 이해와 이웃 간의 배려, 사랑과 평화의 힘은 권력, 부, 명예를 배제한 인정(人情)과 이웃간에 따뜻한 관심으로 부모가 보여주는 가정교육에 기초가 바탕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800여년 전 몽골의 작은 부족에 속한 칭기스칸은 1162년에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부족으로부터 가족들이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아버지 예수게이가 다른 부족에게 독살 당하고 그의 할아버지도 금나라에 살해당했다.



칭기스칸의 아내 또한 메르킷 부족에 의해 납치당하고 어머니 후엘룬도 순탄한 삶이 아니었다.

그는 고난의 세월 속에 원대한 꿈을 키워 지식과 지혜를 습득한 후 하나 하나의 꿈을 실현시켜 거대한 흡수력으로 통합권력을 행사한다. 특히 리더로써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해 유능한 참모들을 좌우에 두고 용맹성을 실천했다. 일생동안 충성을 바친 사준사구(四駿四狗), 즉 네 명의 준마와 네 명의 충견을 뜻하는 말로 8명의 심복을 둬 세계의 절반에 달하는 땅을 정복해서 몽골제국을 건설한 영웅이다.

침략과 이에 반항하는 다른 나라에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살육을 자행했다는 평가도 받지만 동서 문화 교류 통로를 개척한 선구자이기도 한 몽고제국의 완성은 처절하게 파멸당한 칭기스칸의 가족사와 유목민의 척박한 환경에서 기인(起因)한 생존 철학이 근원됐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