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옮겨 놓으면 그 돌이 고향을 그리워한다” [화필여로] <102> ‘칭기스칸 후예들의 삶’…몽골 공룡이 거닐던 불타는 언덕 바얀작

2016년 10월 19일(수) 19:55

박종석 作 ‘바얀작 절벽’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가끔은 기후 변화와 함께 마음상태나 자연환경에 따라 대상을 보면서 반응하는 기분이 다른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황폐한 남고비 사막의 지평선을 볼 때 무척 지루한 느낌이었는데 중첩된 산맥의 곡선이 많은 헝그린 엘스 국립공원을 벗어나 탁 트인 사막의 일직선을 다시 만나니 마음이 시원하게 뚫린 기분이다. 이전의 남고비 독수리 계곡인 욜린암도 좋았지만 녹음의 협곡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휴식을 갖는데 말의 머리뼈가 풀 섶 위에 놓여 있다.

호기심이 발동해 사진을 촬영한 후 관찰하는데 촘촘히 박혀 있는 이빨이 유난히도 눈에 들어온다. 말이 생명을 다할 때까지 수천만 번을 운동했을 이빨은 곧 생존의 기본 조건으로 섭생을 했던 강렬한 흔적이다. 무료한 여정에서는 하찮은 것에서 궁리하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협곡을 빠져나와 오후 3시에 붉은 황토사암의 계곡에 도착한다.

‘옹깅사원 부근 암각화를 배경으로…’

공룡 뼈를 수십톤 발굴한 바얀작이다. 차량으로 진입하기 전에는 무슨 초라한 황토 언덕으로 봤으나 내부로 입장해 보니 대협곡의 기암절벽과 뒷편은 낮은 사암 평야로 굴곡진 붉은 괴석이 용트림하듯 널려있어 저절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뜨거운 햇살에 구워진 초벌구이 도자기 색의 풍경으로 고생대에 많은 공룡들이 서식했던 무대인데 1900년대의 몽골 정부는 공룡이나 사회 및 자연과학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1921년 수많은 공룡 화석을 미국으로 반출하게 하는 어리석음을 남긴 ‘불타는 절벽 바얀작’에는 요즈음 미국인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단다. 아마 속죄의 마음보다는 뉴욕박물관에 있는 공용출토의 시원(始原)을 찾았을 뿐이라 짐작된다.

유난히 뻘건 사암 위에 듬성듬성 뿌리를 드러낸 채 생존하는 키 작은 나무들의 강인함과 마주친다. 인고(忍苦)을 받아 드리면서 생존하고 있는 나무들에게 박수라도 보내고 싶을 정도다. 앙상한 뿌리를 드러내고도 살아 있는 식물이 불량한 인간들보다 더 숭고하게 느껴질 정도다.

‘화석 발견’

협곡 아래 풍경은 땡볕 더위를 피해 그늘진 절벽을 병풍삼아 방임(放任)된 양과 염소와 말들이 휴식 중이다. 태고의 숨결을 고요하게 느낄 수 있는 별세계 풍경이다. 지금도 미 발굴된 화석이 묻혀있다는 현지인의 정보로 사막평원과 접하는 곳에 차량으로 이동해 가는 나무뿌리로 흙을 헤치며 화석을 찾는다. 하얀 공룡 뼈가 묻힌 곳을 두 곳이나 찾았다. 보물 찾기처럼 신기했다. 긴 세월에도 썩지 않고 드러난 하얀 뼈들이 지금도 이곳저곳에 화석이 많이 매장돼 있는 듯하다.


가이드 바두카가 원형처럼 다시 흙을 덮어 놓으면서 말한다. “몽골 속담에 옛 어른들이 말하길 돌을 옮겨 놓으면 그 돌이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비유를 들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자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다. 해가 뉘엿거리는 시간에 몽골리안 고비캠프에 도착해 대형 게르 내의 소형 전시장에서 마얀작 공룡 화석의 미국 반출 과정이 TV영상으로 몇 시간 상영된다.


미국 탐험가들이 1900년대 초부터 사전 조사한 후 1921년에 짚차를 수십대 대동하고 대규모 시찰단이 입국하는데 몽골 정부에서는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쓸고 닦고 수백 명이 거리에서 외국 사절단을 대하듯 환영식을 하고 성대하게 대접 한다.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도 아랑곳 안 하고 몇 달간 발굴한 공룡화석들을 수백 상자를 낙타에 싣고 미국으로 반출했다.

박종석 作 ‘옹깅사원’

화석을 소유해 현재까지도 부가가치를 마음껏 누린 선진국다운 발상의 안목이라 해야 할지, 약탈이라고 해야 될지 미묘한 의구심이 생긴다.

몽골의 속담처럼, 아마 공룡화석들은 늘 불타는 절벽의 옛 고향을 그리워하며 뭇 인간들의 잔재주를 빈정거리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아마 빙하기 역사와 함께 바얀작의 지하자원 매장의 연관성을 추측하게 한다.

고생대환경과 생태역사의 호기심을 갖게 하는 지역을 벗어나 다시 차량으로 지평선을 마주하는데 지면의 굴곡이 심해 파도타기를 즐기듯 저절로 운동이 된다. 소담한 언덕에 주차하고 차량 옆에서 땡볕을 피해 간편하게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는데 하늘에는 딱 한 점의 구름 조각이 떠 있다.

식사를 해결한 후 가까운 지역 산 속으로 진입한다. 18세기까지 1천여명의 수행자 스님들이 운집했던 옹깅사원으로 자연 풍광이 수려하고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며 주위의 산세가 방풍(防風) 역할을 한다.

좌우에 기암괴석을 품은 산들 가운데 주산(主山) 아래는 허름한 대웅전이 위치해 있다.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전망대와 같은 정자와 좌측으로 뻗어간 산 위에 금부처님이 저 멀리 관망하도록 안치돼 있다. 넓은 경내는 처참하게 폐허가 됐지만 그래도 경건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불교성지임을 느끼게 한다. 우리일행은 대웅전에 입실해 참배한 후 내부를 둘러보니 달라이라마 사진이 2점이나 걸려 있다. 불경과 탱화가 걸려 있는데 다시 아쉬운 합장 후 불점함(佛典函)에 마음을 넣고 나온다.


옹깅사원은 1760년부터 1810년까지 축조돼 120년 동안 존속하다가 1932년 러시아 스탈린의 몽고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해 쓰라린 수난을 당했는데 현재는 주변에 몇 가구 민가가 있고 옆에는 고비에너지 캠프로 우리가 머무를 숙소다. 변형된 경내 주변을 산책하고 오후에는 시냇가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냇물에서 목욕을 함께 한다. 아이들이 매일 사용하는 놀이터다. 참으로 순수한 어린이들과 함께 하니 그들의 마음에 흠뻑 흡수된 기분이다.


어둠이 밀려오자 캠프 내의 탁구장에서 게르 종업원들이 탁구를 치고 나는 종업원들 10여명을 그림으로 그리는데 모기의 천국이다. 무용하듯 모기를 쫓으며 너도나도 자기를 그려달라고 해서 모기에게 뜯기며 그림을 그릴 수밖에….

그런데 키 큰 종업원 ‘오마항’의 한쪽 손이 습진으로 붕대를 감고 생활하며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다.

나는 비상용 피부 연고를 발라주고 쑥뜸을 떠준다. ‘오마항’는 순한 양처럼 묵묵히 바라본다. 그는 답례로 늦은 밤, 게르의 난로에 땔 소똥을 한 바구니 주워다 준다. 소똥은 모기 퇴치약도 된단다. 게르 안은 화재가 난 듯 연기가 가득해 모기는 쫓아냈지만 마른기침과 함께 목이 가렵다. 한 가지가 좋으면 한 가지는 손해를 봐야 하는가보다.

다만 서로의 애정과 관심이 교차되는 마음교환 시간이다. 고비사막은 황량하지만 시간이 축적될수록 순수한 사람들과 정분으로 늪처럼 점점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않지만 인정이 오고 가는 오지의 삶터는 우리의 옛적 향수(鄕愁)를 느끼게 하는 극히 인간적인 공간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