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千佛千塔 그곳에 다녀오면 별거 아니더라 [사찰문화기행] 화순 운주사

2016년 10월 20일(목) 18:52

불사바위에서 바라본 운주사 전경. 작은사진은 시위불(왼쪽)과 아기부처.

아쇼카 순례단 - 해설이 있는 사찰순례

아쇼카 대왕은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수많은 정복과정에서 저지른 살생을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했다.

재위 말년에 부처님 발자취를 순례하며 비폭력을 진흥하고 윤리에 의한 통치를 펼쳤다.
아쇼카 순례단은 사찰순례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염원한다.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을때가 있다. 이럴때면 마실을 다녀와야 한다.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순례가 그렇다. 연거푸 다섯 번에 걸친 적멸보궁 순례에 지쳤나보다. 순례날이 다가와도 반응이 없다. 미리 공지한 순례지는 다음달로 미루고 옆집에 마실가듯 떠났다.

운주사 와불.

화순 운주사(雲住寺).

얼기설기 살다보면 앞뒤가 꽉 막히거나 일이 순조로워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때면 운주사에 다녀오길 권한다. 그곳에 가면 넘치는 마음은 낮아지고 부족한 에너지는 충전된다.

광주에서 운주사 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거리는 멀어도 나주땅 남평으로 길머리를 삼았다. 맑고 잔잔한 나주호를 끼고 돌다보면 초의선사 발심도량 용흥사와 국내 최대 규모의 우리차 자생지 불회사도 참배할 수 있다. 여기서 10리 쯤 더 가면 중장터와 운주사를 만난다.

운주사는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스님은 물론 전각도 없는 노천 사찰이었다. 그렇다고 황량한 폐사지와는 격이 달랐다. 수많은 불상과 탑 옆에서 농사 짓던 이웃마을이었다. 오래된 흑백사진 속의 운주사는 논과 밭 사이에 불상과 탑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운주사는 근래까지도 일반에 드러나지 않은 부처님 세계였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된 것은 1980년대다. 1994년부터 신문사에 ‘장길산’ 소설을 연재하던 황석영씨가 1984년 연재를 마칠 무렵 소설에 운주사를 등장시켰다.

가족 석불.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던 노비와 천민들이 관군에 쫓겨 이곳에 왔고 도선국사의 계시로 하룻밤 새에 천불천탑을 조성한다. 드디어 천 번째 부처님이 조성되는 순간, 멀리서 새벽 닭 홰치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마지막 불상을 세우지 못하고 새로운 세상 건립은 후세의 몫으로 넘기고 만다.

이는 운주마을 사람들 입으로 전해지는 운주사 창건설화다.

운주사 와불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고 누워있다. 이 부처님이 일어설 때 그토록 민초들이 염원하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데… 아직도 세상은 시끄럽다. 얼마나 더 민초들의 몸과 마음이 아파야 시절인연이 성숙될까.

소설 ‘장길산’처럼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좌절됐다. 민주화를 염원하던 이들은 운주사 와불을 찾아 비통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힘을 얻어 돌아갔다. 이렇듯 운주사는 예나 지금이나 민중과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잡고 있다.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대표된다.

명당탑(왼쪽)과 거지탑.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雲住寺 在天佛山 寺之左右山脊 石佛石塔 各一千 又有石室 二石佛 相背以坐)’고 전하고 있다.

운주사를 노천법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록에서와 같이 석조불감(보물 797호)이 자리해있기 때문이다.

석조불감은 그대로가 돌로 이뤄진 법당이다. 남북으로 향하고 있는 두 부처님을 중심으로 사방에 수많은 탑과 불상이 가람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 왜, 언제 운주사를 건립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전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설화다. 다만 미술사학가들에 따르면 운주사의 탑과 불상은 신라말에서 고려말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성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주사 천불천탑은 마치 한사람의 석공이 단숨에 새긴 듯 그 모양과 수법이 비슷하다.

운주사의 수많은 석불 가운데 콕 찍어 꼭 친견해야 할 부처가 있다. 석조불감 동쪽 작은바위 아래에 옹기종기 석불가족이 자리해 있다. 아빠, 엄마 형과 막내. 그 가운데 막내의 발을 보라. 어쩜 그리도 앙증맞고 귀여운지….

운주사는 정유재란 때 폐사된 듯 하다. 이후 석불과 탑은 민가에서 가져다가 상석이나 주춧돌, 디딤돌, 구유통으로 썼다. 심지어 전국 각지에서 탑과 불상을 통째로 가져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1980년 중반, 송광사에 주석하던 구산스님이 운주사를 참배하고 복원을 발원했다. 마을사람들에게 집안에 있는 부처님과 탑을 제자리에 돌려놓도록 설득했다. 그후 전남대에서 4차례에 걸쳐 발굴작업이 이뤄졌고 운주사 옛 모습이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운주사는 이제 탑 17기, 불상 80여구가 자리해 있다.

운주사의 탑과 불상은 골짜기에 구슬을 뿌려놓은 듯 널려있다. 넓다란 바위마다에 탑이 세워져 있고, 절벽마다 아무렇게나 불상이 기대 있다.

어찌 보면 무질서한 듯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묘한 질서가 담겨있다. 손이 가는대로 툭툭 망치질해 새긴 듯한 불상도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면 섬세하기 이를데 없다.

몇 해 전, 어느 천문학자가 “운주사 석불과 탑은 하늘의 별자리”라고 주장했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펼쳐진 하늘이 운주사 계곡에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탑의 위치뿐 아니라 탑의 크기와 하늘의 별 밝기가 같다는 것이다.

운주사의 탑은 한국의 정형적인 탑이기보다 대부분 표현이 자유자재한 이형탑이다. 탑들 가운데 석조불감 북쪽에 자리한 원형다층석탑(보물 798호)은 마치 기정떡을 올려놓은 듯 형태가 특이하다.

지금도 운주사에서 가까운 사평은 기정떡으로 유명하다. 누룩으로 발효한 기정떡은 여름에도 쉽게 상하지 않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떡이다.

그토록 서민적인 떡이 탑으로 형상화 된 것만 봐도 운주사는 귀족적이기보다 서민들의 정서가 담겨있는 듯 하다.

새로 건립된 법당의 뒤편 산등성이에 불사바위가 있다. 바위는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움푹 파여 있다. 이 자리에 앉아서 운주계곡을 바라보면 천불천탑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도선국사가 이곳에서 운주사 불사를 지휘했다고 한다.

불사바위에 앉고 보니 참선자리로 제격이다. 발 아래에 펼쳐진 운주세계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온갖 시름이 사라지는 듯하다.

운주사에서 꼭 기운을 받아야 할 땅이 있다. 불사바위 아래 명당탑 자리다. 운주사를 에워싼 산의 지형이 거북을 닮아 영구산(靈龜山)이라 하고 신령스런 거북의 머리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거북목 자리에 세운 탑이다. 천년을 다스릴 명군이 나온다는 자리다.

운주사 순례는 석조불감 서북쪽 산능선에 자리한 와불에서 절정을 이룬다. 민중들의 못다 이룬 꿈이 서린 곳이다. 훗날 다시 석불이 일어나 새로운 세상을 알리는 희망의 산실이기도 하다.

운주사 와불을 뒤로하고 내려오는데 건너편 산등성에 있는 거지탑이 말을 건넨다.

천불천탑을 세우고 남은 돌덩이로 얼기설기 쌓았다해 마을사람들이 거지탑으로 부른다. 이름만큼이나 생김생김은 어설퍼도 천년세월과 태풍에도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켰다.

“여기 와서 뭔가 알려고 하지마. 물음도 정답도 없는 것이여. 내 등에다 그냥 놓고 가. 그렇게 사는 거여….”


스님들이 모이는 시장 ‘중장터

불가(佛家)에서 저잣거리는 그대로가 공부하는 도량이다.

예전에 스님들이 모이는 특별한 시장이 있었다. 전라도 화순과 경상도 상주에 있었다는 중장터가 그곳이다. 계룡산 갑사 입구 중장리와 지리산 천왕봉 길목 (중)장터목, 안면도 중장리도 스님들이 모이던 장터로 전해진다.

화순 운주사에서 서너 마장 떨어진 곳에 중장마을(중장터)이 있다. 말 그대로 ‘스님들이 모이는 시장’이다. 첩첩산중 이런 오지에 시장이 있었을까 의심스럽지만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인근에서 제법 큰 오일장(5일·10일)이 섰다.

이곳 중장터의 시원은 나주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나주에 스님들이 모이는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나주는 남도 최대의 도회지였다. 스님들의 왕래도 잦았다. 사찰에 대중이 모여 살다보면 다양한 물품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나주장터 한 켠에 스님들만 거래하는 장이 섰다. 사찰마다 특산물을 가지고 나와 서로 필요한 물건을 바꿨다.
당시 스님들의 시장에서 거래되던 사찰 특산물은 다양했다. 지리산 화엄사의 목탁, 발우 등 목기류와 쌍계사 차(茶), 정읍 내장사 한지, 해남 대흥사 유기, 강진 무위사 자기, 순천 송광사 불상, 염주 등이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스님들이 모이던 시장은 위기를 맞았다. 억불정책으로 스님들이 수난을 당한 것이다. 유생뿐 아니라 장터 건달들의 행패가 극심했다. 장날이면 각지에서 모인 건달들이 스님들의 물건을 약탈하고 괴롭혔던 것이다. 신분이 천민으로 떨어진 스님들은 관청의 도움조차 받지 못했다.

스님들은 유생과 건달을 피해 만나는 장소를 산 속으로 옮겼다. 오늘의 운주사 아랫마을이다. 장날은 음력 보름이었다. 대부분 멀리서 밤을 새워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한 달에 한번 달뜨는 보름날 모였다.

산 속에 스님들이 모여 시장을 형성하자 인근 주민들도 함께 모이기 시작했다. 멀리 나주나 화순 읍내까지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곳은 깊은 산속 오지임에도 불구하고 나주, 화순, 장흥, 영암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다.

스님들의 만남으로 시작된 시장은 인근 지역의 주민들도 함께 모이게 했고, 5일마다 열리는 오일장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이곳은 중장터로 불렸던 것이다.

화순 중장터에는 아직도 오일장 흔적이 남아있다.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는 길 양편으로 옛 상가가 도열하듯 자리해 있다.
중장터는 20여년 전만해도 인근에서 가장 큰 우시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서서히 중장터 오일장이 사라지고 말았다.

라오스 불교문화 탐방 : 2017년 1월11일-15일 (비엔티안-루앙프라방-방비엥) (문의 : 062-383-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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