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행위는 민주사회 발전 막는 장애물 정준호 법무법인 민 변호사

2016년 10월 23일(일) 19:13

얼마 전 광주 북부경찰서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자문변호사’, 이른바 갑질 피해방지 변호사로 위촉되었다. 좋은 취지의 활동이 가능하겠다 싶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락하였다.

위촉장을 받고 곰곰이 그동안의 변호사 생활을 돌이켜 보니 소위 ‘갑질’이라는 행태가 참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기억에 나는 대표적인 갑질로는 모 재벌그룹 집안에서 근로자에게 매값을 던지고 폭행한 사건이 있고, 유명한 땅콩 회황 사건도 있었다. 얼마 전 상관인 부장검사의 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젊은 검사는 필자의 대학시절 학회 후배이기도 하였다.

일상적인 갑질로는 아파트 경비원 등에게 폭언을 하거나 술에 취해 경찰관을 힘들게 하는 ‘주폭’들도 많다. 오랜 기간 동안 동반성장위원회와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의 일을 맡아오면서 기업간에서 문제되는 갑질도 많이 경험해왔다.

기업이 하도급업체나 대리점들에게 계속적 거래관계를 전제로 할당량을 배당하고 밀어내기식 재고처리를 하는 경우도 많았고, 해외투자를 진행하면서 하도급업체를 동반 진출시킨 뒤 해외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하도급업체에게 모두 전가하는 지능형 갑질도 있었다.

심지어 대규모 신규공사를 발주하면서 중소기업에게 그동안 밀린 대금 청구를 포기하는 각서를 받은 뒤 신규 공사가 불가항력적으로 타절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대금 지급을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법적으로만 보자면, 이러한 갑질 행태에 대해서는 형법에 따라 강요죄, 모욕죄 등으로 처벌이 가능하고, 불공정거래행위로 보아 공정거래위원회의 여러 가지 제재도 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다수의 피해자와 하도급업체 등은 직장과 일자리 그리고 계속적 거래관계를 포기하지 못하고 도저히 참지 못할 때까지 견디는 경우가 많았다.

참다 참다 못 참고 상당 기간이 지나서 지난 갑질 피해를 소송절차나 사정기관에서 진술을 하더라도 갑질 가해자측은 계약자유의 원칙과 경영상 판단 등을 언급하면서 자유로운 의사로 수용된 행위이니 전혀 위법하지 않다는 떳떳한 항변으로 대응하는 것이 부지기수이다.

경영자의 갑질에 대해서는 노조라도 있다면 이런저런 대응이 가능하지만 노조조차 없는 기업에서는 동료들의 진술을 확보하기조차 버거운 경우가 많다. 실제로 증거부족 등으로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대금 포기 각서 등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헌법에서는 만인이 평등하고 존엄하다고 천명하고 있고, 하도급법 등에서는 서면작성 의무부터 세세한 의무를 부과하면서 이런저런 피해를 방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특히 하도급법과 상생협력법 등을 통해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되기도 하였지만 아직 완전히 정착되지도 않았으며, 기업들도 그다지 제도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이렇게 이 시간에도 여전히 수많은 갑질 피해가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법도 갑질을 허용하도록 근거를 마련해주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하도급법 정도를 제외하고는 갑질할 여건이 생길 경우에 이를 방지하도록 정면으로 규율하는 법률 또한 특별히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다.

개인적으로는 갑질 피해를 세부적으로 유형화하고 이에 대한 징벌적 성격의 위자료 배상의무제도가 도입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일상적인 갑질, 처벌 가능 여부가 모호한 ‘선을 넘지 않는 갑질’ 행위도 근절될 필요가 있다.

영화 등에서 자주 언급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본래 로마시절 개선장군의 뒤에서 끌려오는 노예들이 ‘너도 언젠가는 죽게 되니 그동안 겸손하라’는 취지로 외쳤던 단어였다고 한다. 모두들 언제든지 ‘을’이 되어 갑질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런 갑질이 성행하는 사회가 과연 진정한 민주사회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왕에 갑질 피해 방지를 위한 자문변호사로 위촉되었으니 필자도 열심히 노력하겠다. 광주 모든 경찰서에서 자문변호사가 위촉된 만큼 곧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