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에는 천문에 높이 뜬 달을 희롱하고 있다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02) |
| 2016년 10월 24일(월) 19: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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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암 임숙영
흰 이슬이 먼 하늘을 씻기어 내리고
은하수는 은빛으로 하늘에 걸치어서
신선들 옥피리 소리 뜬 달에게 희롱하네.
白露洗遙空 明河掛銀闕
백로세요공 명하괘은궐
仙人綠玉蕭 夜弄天門月
선인록옥소 야롱천문월
꿈은 현실의 연장이라고 말한다.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일을 꿈을 통해 달성하는 묘한 인연도 몽후(夢後)의 상황이다. 고려 말 조선 초 몽류록 계통의 소설과 가전체가 함께 한 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이런 흔적이 많이 보인다. 꿈속의 일을 현실의 일처럼 작품의 배경을 옮겨 놓은 경우가 있어 문학의 특수성을 느낀다. “흰 이슬이 먼 하늘을 깨끗하기 씻어 내니, 밤하늘의 은하수가 은빛 하늘에 곱게도 걸렸구나”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밤에는 천문에 높이 뜬 달을 희롱하고 있다네(夢作)’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소암(疎庵) 임숙영(任叔英·1576-1623)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성균관에 진학해서는 논의가 과감해 당시의 유소가 대부분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1611년(광해군 3) 때 이이첨이 존호를 올리려 한 것을 심하게 비난하는 대책문을 지어 논의를 일으켰으나 급제 됐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흰 이슬이 먼 하늘을 깨끗하게 씻어 내니 / 밤하늘의 은하수가 은빛 하늘에 곱게도 걸렸구나 // 신선의 푸른 옥피리가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오는데 / 밤에는 천문에 떠오른 달을 마냥 희롱하고 있다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꿈속에서 글을 짓다]로 번역된다. 평소에 하지 못한 일을 꿈을 통해서 이루는 경우가 많다. 만날 수 없는 사람도 꿈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성취의욕이 강한 사람은 꿈을 통해서 자기의 성취동기를 충족하거나 쾌감을 맛본다. 불사이군으로 어린 단종을 다시 옹립하려다 무참하게 죽은 사육신의 원혼을 달래려는 마음으로 관란 선생은 원생몽유록을 써서 성취동기의 쾌감을 맛봤다. 이것이 몽유록계 소설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시인을 위와 같은 점에 착안해 꿈속에서 하고 싶은 글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선경의 시상에서 “흰 이슬이 먼 하늘을 깨끗하기 씻어 내니, 은하수가 은빛 하늘에 곱게도 걸렸구나”라고 했다. 흰 이슬이 곱게 내린 맑은 밤이 되니 은하수가 은빛 하늘에 곱게도 걸렸다는 덧없이 맑은 날씨에 상쾌함을 노정해 내고 있다.
화자는 평상시 이루지 못한 한 소망을 꿈속에서 이루는 꿈의 나래를 펴게 된다. 후정의 시상에서 “신선의 푸른 옥피리가 멀리서 들려오니, 밤에는 천문의 뜬 달을 마냥 희롱하고 있다네”라고 했다. 신선의 옥피리 소리도 듣고 달을 희롱하며 성취감을 맛봤다.
※한자와 어구
白露: 백로. 洗: 씻다. 遙空: 먼 하늘. 멀리 보이는 하늘. 明河: 은하수. 掛: 걸렸다. 銀闕: 은빛 나는 허공(하늘). // 仙人: 신선. 綠玉蕭: 푸른 옥피리 소리. 夜: 밤에. 弄: 희롱하다. 天門月: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인데 그냥 ‘하늘’ 정도로 이해할 일.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