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해 버린 榮華(영화)의 터전…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영웅을 갈망한다 [화필여로] <103> ‘칭기스칸 후예들의 삶’…몽골 13세기 몽골 제국 수도였던 하라호름에서

2016년 11월 02일(수) 18:52

박종석 作 ‘텅빈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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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새벽에 부는 바람은 왠지 스산하다. 특히 몽골의 야생 미감을 간직한 풍경 사이로 스치는 바람은 왠지 공격군이 질풍노도(疾風怒濤)처럼 밀려드는 천리마와 닮은꼴이다. 그러나 바람을 안고라도 천천히 전진해야 한다.

옹깅사원 대웅전 앞에서.

아르바이헤이르를 떠나 왕족의 고분 같은 중첩된 민둥산 사이를 지나고 지평선을 따라 234㎞를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앞으로 나아간다.

잘 적응된 지루함을 안고 몽골에서 유서 깊은 하라호름에 도착한다. 13세기에 약 30년간 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하라호름은 과거엔 금속 제련의 중심지였단다. 당시에는 규모가 큰 국제적인 도시였던 현장에 도착한 후 옛 영화의 흔적을 찾아 에르덴주 사원을 관람한다.

‘하라호름 경내’

몽골의 최초 불교사원으로 현재도 승려들이 티베트 불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경내에는 불교사원과 이슬람교 사원, 네스투리우스교 사원이 있었다. 거대한 사원 경내와 주변은 성벽으로 둘러싸여있고 대형 건물 안에는 불교 탱화와 수(繡)를 놓은 불화 작품들이 3칸에 전시돼 있다. 수백년 전의 국보급으로 화려한 황금 수로 제작된 작품들의 완성도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고비 사막의 코스모스’

대웅전의 대형 건물 안에는 부처님상이 3곳에 모셔져 있고 사천왕과 나한들도 함께 봉안돼 있다. 과거 역사에 몽골 침입으로 많은 수난을 겪은 한반도는 북방의 강제적 융합관계이지만 문화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었다.



왼쪽 작은 사원에는 티베트와 같은 붉은 가사 복장의 스님들이 불경을 앞에 두고 신도들과 기도가 한창이다. 나도 합장한 후 불전함에 보시를 하고 무사여행을 기원한다.

여유롭게 대웅전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15세의 몽골 청년이 “한국 사람이에요?”라는 우리말로 유창하게 인사 한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2년을 다녔는데 현재는 부모님과 함께 사업차 고향에 와서 잠시 여행 중이란다.

‘아르바이헤이르’

몽골 전통복장을 하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그려달라고 주문한다. 화려하기도하고 위엄이 서린 칭기스칸 후예의 당당함이 엿보인 모습이다.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며 그림을 완성하고 헤어진다.

장시간 경내를 관람하고 나와 정문 앞의 즐비한 상점들을 구경한다. 어느 가게에서 내 마음에 맞는 골동품이 눈에 들어왔는데 너무 비싸서 포기한다.

바로 상점 앞에서는 거대한 독수리 2마리가 발목에 가는 쇠줄이 묶인 상태에서 손님들 팔에 얹혀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너무 애처롭다. 햇살에 반짝이는 눈동자는 창공을 그리워하는 표정이지만 나 또한 바라보는 입장이다.

당당한 독수리는 약간의 먹을 것을 제공받고 돈은 주인이 가져가는 종속관계다.

아쉽지만 사슬에 묶인 하늘의 제왕을 뒤로하고 늦은 오후에 바로 옆의 ‘하라호름 박물관’에 입장을 한다. 1층이지만 규모와 형식이 잘 정돈돼 있다. 입구 쪽 실내에는 과거 13세기 때 수도의 규모를 모형도로 설치돼 있는데 대단한 융성의 도시임을 실감 할 수 있다.

여러 종교의 인정과 함께 포로로 잡혀온 다민족들을 동원해서 도시를 조성했단다. 상식적으로 알았던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조금이나마 숙지 할 수 있는 현장이다.



몽골역사를 원시시대부터 현대까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체계적인 박물관이다. 특히 벽화들 가운데 황룡과 사람들, 소 그림 등 고분에서 발굴된 많은 작품들이 압권이다.

이 모든 박물관의 학술적 고증과 현재의 건물 조성은 일본의 학자들에 의해 이뤄졌단다. 입구에 표지판이 몽골과 일본 국기가 새겨져 설치돼 있다.

선견지명과 전략적 우호관계라 할까? 박물관 입구, 큰 비석에 관심을 갖고 영문의 설명을 들어보니 12세기 때 곡물 수확의 풍년을 기념해 새긴 금석문이다.

아마도 유목민들 가운데 일부가 정착해서 이룬 특별한 수확을 기억한 것이다. 전면에 한문과 뒷면에 티베트어로 새겨져 있다. 과거에는 어느 시기에 농업이 성행했음을 고증한 유물이다. 작은 정원 앞에 화강암의 유물들이 나열돼 있다. 과거 역사의 영화와 현재의 쇠퇴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면서 위대한 지도자를 갈망했으리라 짐작된다.



오후엔 외곽에 있는 게르촌에 도착해 숙소를 배정받고 옆 식당에서 석식을 마친다. 큰 게르식당 입구 천장에는 삵(살쾡이)의 가죽이 장식돼 있고 정면에는 칭기스칸의 전신조각이 위엄 있게 배치돼 있다. 몽골다운 실내 장식이다.

잠시 후 큰 시냇가를 산책한다. 건너 목초지에서 소들이 강물을 건너오고 말들은 물을 마신다. 앞산 녹지에는 양들이 풀을 뜯고 창공엔 큰 독수리 3마리가 여유롭게 바람을 타고 원형을 그린다. 초원의 꽃은 초원에만 피는가 싶다. 쌀쌀한 날씨이지만 목가적이다.



오후에는 시내 전통시장을 구경한다.

허름한 외형이지만 컨테이너로 만든 공간에 다양한 생필품을 판다. 입구에는 산에서 채취한 잣나무 씨를 좌판으로 파는데 상인들이 톡톡 까서 먹는다. 한 컵을 사서 까먹는데 적응장애로 불편하다. 어슬렁거리며 상인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생필품을 구입하는데 서민들의 소박한 미소와 생존의 여유로움이 묻어 있어 무척이나 흥미롭다.



갓 구워낸 빵을 파는 허름한 빵가게에는 엄마와 어린 딸의 재롱, 남편이 빵 굽는 광경도 보기에 좋고 윤기 없는 사과지만 구입을 권하는 중년 아주머니와 마유주(馬乳酒)를 마셔보라 권하며 홍보하는 아줌마들, 다양한 생존 현장이 정겨운 이유는 강요와 강제가 없어서이다. 이런저런 사람 사는 동네는 인심이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하지만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서민들만이 참으로 인간미의 향기를 더한다.



시공의 범주는 늘 변화하기에 온기가 떨어지는 해도 말없이 서쪽으로 넘어간다. 차가운 밤공기로 게르의 난로에 모닥불을 피운다. 야식으로 라면과 깻잎에 허전함을 달래고 그리고 후식으로 현미녹차를 마신다. 그런데 밤에는 잠깐 굵은 비가 내리자 기온이 급속도로 내려간다. 잠시 후 긴 연통의 난로불이 후끈하게 실내를 데운다.

여행은 거창한 목적달성이 아닌 해찰하면서 느낌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