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끄러움은 죄 없는 국민 몫인가? 본사 사장 ssnam48@kjdaily.com

2016년 11월 02일(수) 19:22

2016년 10월 31일 시월의 마지막날, 마지막밤은 우리 역사속에서 아주 중요한 날로 기록될 것 같다.

사실 광주매일신문은 작금의 이런 엄청난 사건이 바로 그날 일어날 줄 모르고 몇 달 전부터 아주 낭만적인 행사를 하나 기획했었다. 평화로웠던 시절, 우리는 10월 마지막밤에 술 한 잔 나눌 친구를 떠올렸다. 이유는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란 노래가 유행하면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밤을~’이란 가사 때문이다. 그래서 올 여름 광주매일신문은 소소하게 ‘시월의 마지막 밤 샹송 낭만 콘서트’를 기획하게 됐고 10월 31일 샹송가수를 모시고 프랑스로의 시간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그날 밤, 관객은 ‘똥블라레쥬’를 듣고 나가면서 한결같이 ‘이 시국, 이 난국에 이런 공연이라니~ 위안을 받았다’고 한마디씩 했다.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핸드폰으로 JTBC ‘뉴스룸’을 시청했는데, 손석희 앵커가 10월의 마지막 밤과 관련한 앵커브리핑을 전했다. 손석희 앵커는 “오고가는 사람들의 굳어진 표정. 거리의 공기는 을씨년스럽게 차가워졌다. 거리에서 혹은 라디오에서 오늘 한번쯤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나왔을 것”이라고 말한뒤 이렇게 이어갔다. “올해 10월 마지막 밤 만큼은 모두에게 공통의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오늘은 선출된 대표자의 배후 권력이었던 그가 베일을 벗었다. 정말로 감추고 있던 건 무엇일까. 하지만 그걸 본 우리는 절망과 갈등, 참담함을 느꼈다. 지난 몇주간 혼돈의 시간을 보내면서 왜?라는 질문은 그래서 아직도, 앞으로도 유효할 것 같다. 왜 우린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가. 우리의 민주주의는 왜 뒤쳐졌는가? 2016년 오늘의 가을은 잊혀진 계절이 아닌 결코 잊을 수 없는 잊히지 않을 계절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그렇다. 필자도 2016년 10월31일은 죽을때까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날 필자는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숨진 백남기 농민이 민족·민주열사들이 묻힌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광주시와 5·18민주화운동 4개 단체 대표 등 9명이 참석한 대표자 회의에서 이들은 “백남기 농민이 그동안 민주화운동에 헌신해 온 만큼 안장을 허용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 백남기씨 민주열사묘역 안장 소식을 들은 시간, 10월 31일 오후 3시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검찰에 출두했다. 엄청난 규모의 국내외 취재진이 몰려와 그 시간 검찰청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취재진이 얽혀 난리법석이었다.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을 내세워 대기업들에 800억원에 달하는 기금을 미르재단과·K스포츠재단에 출연하게 하고 해당 기금을 사업비로 빼돌려 자신의 딸의 승마 훈련비로 쓰려는 등 사유화하려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최씨를 상대로 박 대통령의 연설문, 북한과 비밀 접촉 내용이 담긴 인수위 자료,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일정을 담은 외교부 문건, 국무회의 자료 등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 문건을 대량으로 실제로 받아봤는지도 캐묻고 있다.

그리고 그날, 시월의 마지막날, 최순실이 검찰에 출두한날, 전남대학교에서는 시국선언 기자회견이 있었다. 전남대총학생회가 ‘비선실세 국정농단 최순실 게이트 규탄 시국선언’을 열고 ‘죽어가는 대한민국을 살린다는 의미에서 심폐소생술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번주 불붙기 시작한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은 매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시민단체, 종교계, 의료인, 언론인, 대학생, 교수, 중고생까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역사학계 50여개 단체와 학회는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왕조시대에서조차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자행됐다”며 철저한 수사와 국정교과서 중단을 요구했다. 시국선언에 동참하는 대학은 2일 현재 100곳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부끄럽다. 다른 나라가 어떻게 볼까 생각하니 수치스럽다. 각국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열린 대규모 촛불집회를 주목해 보도하면서, 한국을 염려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도 집회 현장 사진과 내용을 상세히 전했고, UPI, dpa통신 등도 집회소식을 타전했다. 특히 미국 공영방송 NPR은 ‘샤머니즘적 숭배가 연관된 스캔들 소용돌이가 한국 대통령을 위협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스캔들이 ‘수천만 달러의 돈과 국정개입 혐의뿐만 아니라 샤머니즘 예언자, 승마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NHK도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신화통신, 환구망, 인민망 등 중국 언론들도 검찰의 청와대 비서진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각 대학의 시국 선언 등을 보도했다.

지금 호남 사람들은 최씨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까지 사전에 검수했다는 사실을 직시하며 분노를 넘어 허탈해 하고 있다. 모욕감과 비참함을 표시한 이들도 있다. 당시 박대통령은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원하는 5·18 민주유공자와 시민의 요구에는 귀를 닫은 채 무성의하게 원고만 읽고 자리를 떴는데, 그 원고가 바로 최씨의 검수를 거친 것이었다는데 경악하고 있다.

10월의 마지막밤을 의미있게 만들었던 가요 ‘잊혀진 계절’ 마지막 구절은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다. 제발, 내년 10월 마지막밤엔 이 노래를 부르며 행복과 사랑을 떠올리는 국민이 많았으면 좋겠다. 오늘 이 시간, 심장이 터져버릴 듯한 아픔, 왜? 부끄러움은 죄 없는 국민 몫인가?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