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민의 아픔에 켜진 촛불 본사 사장 ssnam48@kjdaily.com

2016년 11월 16일(수) 18:59

요즘 종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전과 다르게 정부를 향한 공격적인 비판이 거세다. 지난 10일, 필자는 종편채널 TV조선을 보다 깜짝 놀랬다. 지금 대한민국을 뒤집어놓은 ‘최순실게이트’와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 통제가 광주비엔날레 작품, 광주시청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이었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당시 전시 작품중엔 홍성담씨와 광주시민이 함께 그린 ‘세월오월’이 있었다. 그런데 걸개그림 형식의 이 그림 전시는 무산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김기춘 전비서실장과 박정희 전대통령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그렸다는 게 이유다. TV조선은 이 작품이 논란이 된 뒤 김기춘 전비서실장이 김영한 민정수석에게 홍작가를 배제하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김영한 전수석의 비망록에는 ‘홍성담 작가를 배제하고, 제재 조치를 강구하라’ ‘사이비 예술가가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시 사항이 적혀 있다.

그런데, TV조선 보도가 나간 뒤 느닷없이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이 그것은 “김종 전 문화부 2차관의 ‘작품을 떼라’는 압력전화 때문이었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비엔날레를 비롯한 문화 관련 업무는 문체부 1차관 관할인데도 불구하고 체육과 관광을 총괄하는 2차관이 나섰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김종 2차관은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최씨와 밀접하게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인지라 자연스럽게 뒷 배경에 최순실이 있지않나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하여튼, 최종 이 전시를 막은 곳은 광주시다. 윤시장이 고백했듯 정부의 압력을 받고 작품전시를 막은 것은 문화탄압이었다. 문화도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인권민주평화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광주문화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당시, 이 그림 하나로 시립미술관장, 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 큐레이터 등이 사퇴하는 초유의 혼란이 일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광주시장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현재 밝혀진 바에 의하면, 광주시장이 김종 전 차관의 요구를 수용한 이유는 ‘문체부 제2차관이 체육분야를 총괄하는 자리로 국제대회인 U대회 예산지원 등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듬해 개최될 U대회 등 국비 예산 확보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영향을 우려해 전시 철회 압박을 넘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역문화계는 이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유대회는 국가행사이고 실패할 경우 국가의 실패이기 때문에 그 예산을 못받을까봐 압력을 수용했다는 것은 기우다.

광주가 어떤 곳인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바쳐 투쟁했던 도시다. 윤장현 광주시장의 ‘외압’ 시인은 광주정체성과도 괴리되며 광주정신에도 부합하지 못한다. 민중연합당 광주시당이 “윤 시장은 시민 앞에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책임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광주시장은 왜 그때 당시 당당히 외압 사실을 폭로하고 시민들과 함께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지금 광주시민사회는 굴욕감과 부끄러움으로 흥분 상태다. 참여자치21도 ‘윤 시장은 광주시민에게 공식 사죄하라’고 촉구하기에 이른다. ‘전시철회는 민주주의 인권의 도시 광주를 광주시민을 부끄럽게 만든 사건으로 인권도시,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광주가 예술가의 창작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부정했다’고도 주장했다. 해당 작가 홍성담씨도 ‘광주시장은 전시 파행에 대해 광주시민 앞에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 최순실씨 등 이 정부의 기가 막힌 국정농단 내용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불거진 ‘홍성담 작품 외압 사건’은 만시지탄의 느낌이 없지 않다. 당시 김기춘전비서실장의 홍성담 배제 지시 시기는 청와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출현한 시기다. 광주시는 이 정부의 민주주의 훼손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인 탄압에 적극 동조한 셈이다. 더욱이 윤시장에게 전화를 건 김종 차관이 누구인가. 그는 최순실이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문체부에 심어놓은 핵심 실세로 사실상 최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사람이다. 문화 담당도 아닌 이가 전화를 했는데 그렇게 쉽게 굴복했다는 것은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문화운동을 하다 옥살이를 한 이들의 희생을 욕되게 하는 일이었다.

당시 ‘세월오월’의 전시 외압에 대해 외신들은 뭐라 썼는지 아는가. ‘예술가에 대한 말도 안되는 모독이다’고 평가했다. 지금, 광주시민·문화·예술단체는 한 목소리로 윤장현 시장의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동시에 문화도시에 걸맞는 표현과 창작의 자유 보장을 약속해야 한다. 정부의 문화탄압을 받아 그대로 실행했다는 사실을 고백한 광주시장은 광주시민사회의 주장대로 즉각 사과하고 ‘세월오월’의 광주 전시를 약속해야 한다.

부끄럽게도 이 그림이 대만 타이난, 뉴욕 등에서 전시된 사실을 아는가. 광주시는 1980년 이후 많은 희생을 통해 광주의 민중예술을 지켜온 이들의 시대정신을 생각해서라도 ‘세월오월’ 걸개그림을 지금이라도 다시 전시해야 한다. 잘못을 반성하고 홍성담 작가를 다시 초청해 그림이야기를 듣고, ‘세월오월’을 다시 당당하게 전시한다면, 관광객도 몰릴거고 광주정신의 살아있음,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불의에 항거하며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꿔놓은 광주 아닌가.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