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멀리 가는 지혜 이경숙 서림교회 권사

2016년 11월 27일(일) 19:00

대중가요 중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노래가 있다. 노랫말의 요지는 이렇다.

‘당신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외로움을 심었다. 모르는 타인들처럼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가라, 잊으려고 할수록 그리움은 더할 것이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을 난 잊을 거다.’

이 노래가 꽤 인기 있었던 걸 보면이 노랫말에 많은 사람이 공감을 하는 모양이다. ‘가깝고도 먼’이라고 하면, 그렇다, 일본을 생각한다. 가수 이광조의 노랫말과 일본이라는 나라의 존재는 결국 이런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다. 우리들에겐 가깝지만 먼 누군가가 있는데, 그게 그냥 멀다고 외면하기에는 가까운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갈등은 삶의 현장에서 없어야하지만 어떨 때는 갈등이 필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품안의 자식’이라고, 자식새끼 사춘기 지나면 이제껏 저 혼자 컸고 제 힘으로 세상사 다 헤쳐 나갈 수 있는지 안다. 잔소리 좀 하면 문 걸어 잠그고 들어가던 놈이, 시집 장가가면 가뭄에 콩 나듯 주는 부모 용돈은 지 신랑 지 마누라 허락 받는다. 신랑하고 다투면 태초의 피난처인 양 쪼르르 친정으로 달려오지만 행여나 신랑 험담이라도 할라치면 ‘그래도 그 사람 본성은 안 그래’라고 역성을 든다. 그쯤 되면 그래 너 잘났다 하고 모른 척 해도 좋으련만, 그래도 자식이라고, 신랑 전화 한 통에 다시 쪼르르 돌아가는 그 손에다 갖은 밑반찬 들려서 보낸다.

이웃나라 일본도 그렇다. 수백 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침략전쟁에 도무지 책임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그 뻔뻔한 얼굴에는 조선 된장 한 바가지쏟아 붓고 싶지만, 수출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데다 현지 우리 교포들 생각하면 지진 피해 성금 내는 손에 주저함이 없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고, 멀다고 하기엔 너무 가까운 존재 아닌가. ‘가깝고도 먼’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국 이 문제가 ‘빠르고도 느린’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좀 더 빠른 관계 진전으로 원하는 경우 십중팔구 느리게 가까워진다.

만나자마자 한 달 기념일, 100일 기념일 챙기느라 정신이 없는 요즘 젊은이들 연애사를 보면 저 정도 열정이라면 천년만년이라도 갈 것 같다. 그런데 학과에서 짝을 맺은 학생들은 참 이별도 빠르다.

“교수님, 쟤네 둘이 사귄대요”라는 정보를 듣고 축하의 말을 건넨 입에 채 침이 마르기도 전에 강의실 가장 먼 자리에 각각 떨어져 강의를 듣는 두 녀석을 발견하기 십상이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있는 까닭 중의 하나는 느림의 미학을 모른 채 빨리 가까워지고자 하는 초조함이 있다. 단 몇 분 안에 수십 개의 메일과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까지 날리는 세상이니, 몇 분 안에 반응이 없으면 초조해 지고, 이렇게 느낀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다.

자식은 부모 죽은 뒤 철든다지 않는가. 아주 느리지만 그 후회와 반성은 아주 오래 갈 것이므로, 그래서 지 자식한테 인내하는 지혜로 이어질 것이므로, 오히려 빠른 일이다.

임진왜란 때 괴롭히고 불과 60여 년 전까지 우리를 식민통치했던 일본도 언젠가는 철이 들겠지. 언젠가 다른 나라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면 우리의 인내는 길고 느렸지만 오히려 짧고 빨랐다.

요즘 자주 쓰는 말이 있다. ‘혼자 빨리 가기보다 함께 멀리 가자’는 말이다.

혼자 가면 뒤돌아 볼 동행도 없으니 빨리는 갈 테지만 발맞추어 하나둘 가지 못하니 외롭고 고단하여 결국 지치고 말 것이고, 대신 함께 가면 뒤처지는 사람에게 손 내미느라 느리기는 하겠지만 결국 아주 멀리 갈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함께 멀리 가는’ 지혜로 산다면 모두가 가깝고도 가까운 지구촌 동지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