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 정치인이 답하라 본사 사장 nam48@kjdaily.com

2016년 11월 30일(수) 20:19

정치적 소통은 바로 언어 또는 언어행위로 이루어진다. 정치인의 언어와 언어행위는 정치 도구이기도 하지만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요건이다. 정치지도자는 차별의 언어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과 치유의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적의의 언어나 전투적 언어 대신 희망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분열과 갈등, 분노를 키우는 언어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보듬는 위안과 격려의 언어가 들려야 한다. 더더구나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지도자로서 닫힌 언어가 아니라 열린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세 번이나 반복된 대통령의 담화는 한국인이 같이 사용하는 한글로 전파를 탔지만 국민들이 사용하는 언어 형식과 다른, 서로 사용하는 의미가 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통역사가 필요하고, 설상가상 통역을 한다해도 쌈박질 나기 좋게, 국민이 쓰는 언어와 전혀 다른 의미와 단어로 구성돼 있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 국가지도자의 말은 명료하다. 다른나라 대통령들의 명연설은 교과서가 되기도 한다. 이에 비해 박근혜대통령의 말과 언어습관은 임기 내내 기사거리가 되었다. 주석을 달아야 이해되는 표현이 많았고 정제된 비전이나 철학을 엿볼 수 없었다. 논리를 찾아보기 힘든 비문이 많았고 어휘를 정확히 사용하지 않아 기자회견장의 기자들이 답답해했다. 역사교과서와 관련해서는 혼이 ‘비정상’이라는 표현도 썼다. 아니 ‘불(不)’, 아닐 ‘비(非)’자를 특히 많다.

사람의 생각은 언어로 드러난다. 정치인의 말은 정치인 그 자체다. 정치인은 언어로 자신의 견해나 입장을 표현한다. 언어사용으로 권력관계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언어는 사회변화를 이끄는 힘도 가지고 있다. 정치인은 유권자나 국민의 생각이나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 자신의 진정성을 믿게 하는 설득과정에 언어를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에 언어의 정보적·설득적 기능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정말 말을 잘 못한다. 필자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수많은 잠룡의 인터뷰를 꼼꼼히 지켜보고 있다. 후보시절 박근혜대통령의 언어습관 말솜씨 속에 ‘국민에 대한 생각’이 들어있었음에도 간과한 것을 반성하는 의미로 다음 대통령감의 말을 열심히 관찰하고 있다. 놀랍게도 현재 5-6명되는 대통령 후보의 말솜씨는 너무 형편없다.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이 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렇게 말을 못하는 이도 대통령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쇼킹할 따름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의 결정에 반기를 들면 대통령은 설득을 통해서, 논쟁을 통해서 국민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반대세력을 불순세력으로 낙인찍고 논쟁을 불필요한 것으로 정의 내리면 민주주의는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극비사안이라도 충분한 논쟁을 거쳐야 한다. 한 나라에는 생각이 다르고 이념이 다양한 시민이 살고 있기 때문에 다양성을 존중하고 듣기 싫은 소리도 경청해서 국가정책을 조정하는 일이 바로 통치자의 몫이다. 민주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갈등과 대립을 타협과 통합으로 바꾸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니까.

지금, 200만명이나 되는 국민이 촛불을 들고 항거하는 이 준엄한 역사의 시간에, 한국 정치지도자는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엉뚱한 말로 촛불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비루한 말로 비판을 받고 있다. 국민을 시원하게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나라냐?’ 물으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광장으로 뛰쳐나온 국민에게 ‘새로운 민주공화국, 새로운 국가, 새로운 시대’ 어떻게 열어가겠다며 명확하게 정치철학을 광장에서 얘기하지 못한 이는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

국민의 촛불이 명하건대, 지금은 각 당이 이익을 따져 정치할 때가 아니다. 촛불의 가치를 따져 역사를 진일보시킬 때다. 특검도 좋고 국정조사도좋고, 탄핵도 좋다. 국회의원이 해야 할 일이고 국회의원의 언어다. 중요한 것은 이 중요한 시기엔 한표한표 행사한 지역구의 지역주민 말과 의견을 잘 반영해야 한다. 이 위중한 시기에 집권시나리오에 집착해 엉뚱한 방식을 드러낸다면, 시민들은 처절하게 정치인을 응징할지 모른다.

준엄한 시기다. 지금 국민은 단순히 대통령 바꾸는데 관심 있는 게 아니다. 전혀 다른 새로운 나라,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 민주공화국다운 민주공화국을 원한다. 만약 구체제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누리기를 바라면서 권력의 눈치를 보고 스스로 그 권력의 일부가 되겠다며 계산기를 두드린다면, 촛불은 국회를 향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대선후보들의 말이 욕망의 언어뿐임을 걱정한다. 국민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 나가려는 리더십이 보이지 않아 걱정스럽다. 비단 정치가 직업이라면 자신의 언어로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글은 인격을 감출 수도 있지만, 말은 말하는 사람의 품격을 거의 그대로 나타낸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규정했다. 언어란 단지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수단이나 개인의 내면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존재가 머물고 존재가 세계와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다.

국민이 듣고 싶은 간절한 말이 있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나라는 국민도 지도자도 모두 불행하다.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