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상상력으로 되찾은 그 이름…기억과 축제의 장소가 되다 [이영미의 파리문화기행] 깨어있는 촛불 광장으로 향하다

2016년 12월 08일(목) 19:05

촛불 시위가 열린 광화문 광장.

지금 한국 사회는 하루마다 새로운 기록의 역사를 쓰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권력에 대한 치욕과 분노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분노의 강도는 임계점을 넘어 불의에 침묵하고 정의에 대해 무관심 했던 잠자고 있던 이들을 각성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깨어있는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향했다. 촛불은 나를 깨우고 당신을 깨우며, 우리를 깨우고 전 세계를 깨우며 감동스럽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2004 전남대 건축공학박사 ▶2005-2007 전남대 post-doc/청주대 post-doc ▶2009-2011 전남대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2014-현재 Paris 8대학, 도시계획 박사과정

■ 서툼, 낯설음, 구경꾼

파리를 떠나 잠시 방문한 한국에서 한 나의 첫 번째 외출은 지난달 19일 촛불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전 주에 비해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집회의 현장은 예상했던 분노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는 웃음과 익숙한 음악이 있었고 먹을 것이 있었으며, 역사적 장소와 자신이 있는 순간을 기록하려는 사진 찍는 타자들, “하야하라”라는 구호를 판매하고 있는 부조화스러운 이들, 모금을 마련하는 자원봉사자들, 초를 판매하는 상인들이 함께 했다.

그리고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며 우리에게 던진 전인권의 메시지처럼, 경찰차에 꽃모양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로 저항을 표현하는 시민들,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우는 ‘축제처럼 즐기는 촛불 집회’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그런데, 난 그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다.

2015년 11월 13일 파리 테러 직후 광장에 놓인 촛불과 “우리는 이날을 절대 잊지 않겠다”라고 적힌 메모들 .

‘탄핵’과 ‘하야’라는 한국사회의 슬픈 테제를 갖고 참여한 집회에서 우리는 주체로서 ‘비정상의 정상’, ‘정의’를 외치며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유명 연예인들과 정치인들이 함께 하는 스펙타클하게 진행된 새로운 축제 형태의 시위 현장을 구경하는 구경꾼에 불과한 것인가?

우린 폭력을 지양하는 성숙한 시민의 정체성을 오래 전부터 지녀왔었는데 그동안 발현할 기회가 없었던 것일까? ‘착한 시민’, ‘착한 집회’여야 한다는 프레임에 갇혀 이중적인 정체성을 지닌 채 배회하는 이인가?

여러 가지 혼란 때문에 집회를 마치고 돌아온 후, 며칠 동안 난 그 질문에 내 스스로 답을 찾지 못했다. 정의내리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파리 테러 이후 레퓌블릭 광장에서 추모하는 이들.

■ 상상력으로 전용된 프랑스의 광장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던 11월 초, 자주 듣던 팟 캐스트에서는 파리 시민혁명과 68혁명이 사례로 많이 언급됐다.

그 시절 파리 시민들이 외쳤던 ‘상상력에 권력을(pouvoir de l’imagination)’이라는 슬로건을 인용하면서 한국 시민도 이러한 상상력을 갖고 촛불 집회에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직은 미약하고 권력이라는 바람 앞에 쓰러져 버릴 지도 모르는 각자의 불안감을 서로가 끓어 안고 함께 뭉치자는 염원 같은 것이었으리라. 프랑스의 혁명 문화를 부러워하는 많은 이들의 외침을 들으며, 당시 파리에서 한국 방문을 위해 짐을 싸고 있던 나는 새삼 파리가 주는 문화적 우월감에 동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한 혁명의 상징인 프랑스의 광장은 본래, 시민들의 것이 아니었다. 광장 중심으로 발달된 파리의 도시경관은 나폴레옹 3세부터 실시된 오스만 남작의 도시화 및 권력 중심화를 도모하기 위한 도시개조계획의 일환이었다. 당시 복잡한 가로망은 자주 일어나는 시위대들을 진압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효과적인 시위 진압과 비위생적인 도시를 개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좁고 굽은 길들을 제거하고 대규모 관통 도로를 만들면서 그 사이에 감시하기 좋은 큰 광장을 삽입한 것이다. 그렇게 광장은 효과적인 감시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권력 장치로 출발했다. 하지만 나폴레옹 3세의 희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지구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우리는 모두 프랑스인이다. 우리는 모두 시리아인이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시민들은 광장을 그들의 것으로 전용했다. 시민은 지배 세력의 권력과 불합리에 저항하며 그들만의 권력의 장소로 바꿔 버린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결과이다.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사용돼버린, 상상력의 결과이다.

68혁명 당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실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술가들의 다양한 사회적 참여부터 예술에 대한 전면 부정, 풍자극의 상연, 무정부적 연극과 초현실주의와 맑시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이 광장에서 공통적으로 지향하고 있던 것은 놀이, 상상력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권력적이고 계급에 의해 잘 조정되는, 자칫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파괴적이고 불합리한 사회를 생산적인 혼란으로 전복시키려는 의도를 실험한 것이다.

올해 있었던 프랑스 7월 14일 혁명 기념일의 주제는 ‘파리는 축제다’였다.

작년 11월 13일 파리 테러가 일어난 직후,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책의 이름을 주제로 선정한 것이다. 파리 시민들이 슬픔을 이기는 방식을 ‘일상’ 속의 특별한 ‘축제’라는 모순적인 두 개념을 대비시키며 드러내고 있다. 사실 프랑스에서의 시위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다. 그리고 축제 또한 일상 속에 스며 있다. 학생, 선생님, 의사, 조종사, 등 계급, 계층을 불문한 모든 이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프랑스에 머문 동안 내가 경험한 가장 부러운 것들 중 단연 으뜸이다.

■ 시민들에 의해 되찾은 광장의 권력은 서로를 치유했다

그렇게 프랑스의 시위 문화를 동경하고 부러워하며 한 주, 한 주가 지나갈수록 한국의 촛불 집회는 규모가 커져갔고 단단해졌다. 매주 커져 가는 촛불의 함성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권력에 대항하며 쓰러지지 않기 위해 더 큰 촛불의 힘으로 외치고 있다. 즐기는 축제의 장소였던 촛불의 현장은 수많은 외침에도 대답하지 않은 권력을 향해, 12월 3일 진지함으로 더 큰 저항을 표현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오케스트라의 플래쉬몹에 의해 연주된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 아리랑은 겸허함을 안겨줬고 각각의 인물을 패러디한 풍자극은 해학을 통해 우리를 치유해 줬다. 바람불면 꺼질지 모르는 서툼과 두려움의 촛불은 6차 촛불 집회에 이르기까지 점차 시간이 지나갈수록 지치지 않고 용기 있는 강인한 촛불이 됐다.

오랜 기간 동안 우리는 광장의 구경꾼으로만 존재했었다. 2002 월드컵 때 시청 광장에서 함께 했던 그 때부터 우리는 광장 문화를 수없이 이야기 했지만, 그것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함성에 가득 찬 광장에서 우리는 구경꾼에 불과했으며, 소비되는 이미지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구경꾼으로만 존재했을지도 모를 참여자들은 이제는 점차 숭고한 혁명의 주체가 돼 촛불을 들었다. 시위 현장에서 착해야 한다는 프레임에 갇혔었던 모호했던 정체성은 지속적으로 촛불을 들면서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아서 진화한 모습을, 지난 3일 우리는 눈앞에서 목격했다. 개인이 밝힌 작은 촛불은 서로를 감동시켰고 비정상적 사회로부터 상처받은 스스로를 치유했으며 나아가 서로를, 이 병든 사회를 치유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 스스로가 써내려간 ‘광장의 역사’에서 시민 스스로가 자신의 성장을 목격한 역사적 순간이 됐다.

■ 권력이여 상상력으로 화답하라, 기억하라 2016년 12월 광장의 역사를

놀이와 상상력으로 시민의 권력의 장소로 회복된 광화문 광장, 이제는 권력이 상상력으로 시민에게 화답할 때다.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 전 세계인의 축제의 날이 된 것처럼, 2016년 12월, 우리가 들었던 촛불의 기억과 외침에 대한 기억이 엄청난 공명 현상을 일으켰던 그 날, ‘광화문 광장’은 앞으로 우리가 축제처럼 소비 할 수 있는 ‘기억의 장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