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관의 인생, 소동파(蘇東坡) 권명숙의 인문학 산책 전남대 중어중문학과 외래교수

2016년 12월 08일(목) 19:57

자정을 넘기자 청문회가 끝났다. 구치소에서 나왔던 증인들이 다시 두 손을 묶인 채 줄줄이 호송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면서 텔레비전을 껐다. 열흘 가는 붉은 꽃 없고, 십년 가는 권세 없다더니. 온 나라를 좌지우지하던 인물들이 죄인처럼 앉아 초라한 변명에 진땀 흘리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온갖 생각이 스쳤다.

인생은 백발만이 평등한 것이던가. 어느 날 분노가 치솟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면 공평한 것이 또한 인생이로구나! 마음을 바꾸게 된다. 신(神)은 인생이라는 주머니에 누구를 막론하고 달콤한 사탕과 쓴 사탕을 똑같은 숫자로 채워놓는다는데, 다만 먹는 순서가 다를 뿐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대는 저 물과 달에 대해서 아는가!/ 가는 것이 저와 같되, 일찍이 간 것이 아니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되, 끝내 소멸도 성장도 없는 것이라네./ 대체로 그 변화하는 것을 기준으로 관찰한다면/ 하늘과 땅도 일찍이 한 순간도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며/ 변화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관찰한다면/ 만물과 내가 모두 영원한 것이니/ 또 무엇을 부러워할게 있으리오.”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에 나오는 대목이다. 변한다는 입장에서 살펴보면 하루가 아침·점심·저녁으로 쉼 없이 바뀌고 사계절이 봄·여름·가을·겨울로 끝없이 변화하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살펴보면, 하루와 사계절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무한 속에 반복되고 있음을 아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니 인간은 우주의 대자연 속에서 안달복달 하지 말고 자연이 주는 무진장한 보물을 누리며 즐겁게 살아가자는 것이 소동파의 달관적인 인생관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무진장한 보물은 무엇일까?

“하늘과 땅 사이의 만물은 각각 주인이 있어서/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털끝만한 것도 차지해서는 안 되나/ 오직 강 위에 부는 맑은 바람과/ 산 사이에 뜬 밝은 달만은/ 귀로 얻으면 즐거운 음악이요/ 눈으로 만나면 좋은 경치를 이루네./ 이는 차지해도 금하는 이가 없고/ 아무리 써도 고갈되는 일이 없으니/ 이것이 곧 조물주의 무진장한 창고요/ 내가 그대와 함께 즐거워하는 바라네.”

유(儒)·불(佛)·선(仙)과 시(詩)·서(書)·화(畵)에 두루 정통했던 소동파의 호방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주는 무진장한 보물이 자연이라면, 인간이 조물주에 대한 보답으로 무한히 갈고닦아야 할 보물이 바로 학문의 진리(眞), 도덕의 선(善), 예술의 아름다움(美)이라고 한다.

소동파는 20대에 최고의 성적으로 과거에 합격한 천재였지만 신법당과 구법당의 당파 싸움에 휘말려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역정을 통해 더욱 초월적이고 긍정적인 인생관을 다진다. 한번은 필화사건으로 관군에게 끌려가게 됐는데, 울며 따라 나오는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소개해줬다.

“정신줄 놓고 술독에 빠져 지내지 마시구려(更休落魄耽盃酒)/ 잘난 체 시 따위 읊어대지도 마시구요(且莫猖狂愛詠詩)./ 이제 관가에 붙들려가게 됐으니(今日捉將官裏去)/ 여차하면 당신의 대가리와 이별하실 게요(這回斷送老頭皮).”

송나라 때 양박(楊樸)이라는 사람의 아내가 지었던 시이다. 당시 황제는 양박이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벼슬을 내리려 했다. 해서 관리를 보내 그를 데려오도록 했는데, 양박이 떠나려할 때 그의 아내가 이 시를 지어줬다. 최고 권력자의 주변은 예나 지금이나 탈이 많은 자리인지라 남편이 혹여 정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까 걱정하는 마음에서 지어줬던 것이라 전한다.

/전남대 중어중문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