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엄중한 절체절명의 시기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ssnam48@kjdaily.com

2016년 12월 21일(수) 20:11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막장드라마보다 더한 일들을 보면서 ‘이게 나라냐’했던 국민이 이젠 ‘이런게 반복되어선 안된다’며 분노를 조절하고 있다. 사회관계서비스망(SNS)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본 2016년 단어는 ‘분노’ ‘의혹’ ‘논란’이다. 다음소프트에 따르면 올해 트위터와 블로그 등 SNS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박근혜대통령’ ‘최순실’이었다.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느끼는 지배적 감정은 ‘분노’였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분석하고 있는 사회학자들은 ‘국민이 분노했기 때문에 행동에 나서게 됐고, 잘못된 것을 올바로 잡자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올해는 획기적인 해’로 역사가 기록할 것이라고 했다.

2016년 초겨울을 광주에서 보내고 있는 한 외국인은 ‘한국 지도자에게는 실망했지만 국민은 지구촌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칭찬하면서 한편으로는 ‘왕조시대에서 공화정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구체제가 바뀌지 않은 점은 이상하다’고 우려했다. 단 한 번도 지배계급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적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이번에도 ‘단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촛불은 반복될 것이라 내다봤다. 실제로 근·현대사에서 시민혁명에 준하는 거사 완수의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늘 민초들이 차린 밥상을 서로 먼저 먹겠다고 달려든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소중한 밥상이 엎어졌다. 대표적인 게 87년이다. 절차적 민주주의의는 획득했지만 평등민주주의는 실현되지 못했다. 그 후 우리는 최소한의 민주주의 관점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맛보았을 뿐이다. 이후 30년, 국민의 삶은 고통스러웠다.

지금, 우리 이웃을 돌아보자. 사회안전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압도적 세계 1위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라는 오명만 남았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알바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청년들, 노후의 편안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내야할 노인들은 전체 노인의 4분의1이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보통사람들은 평생을 일해 봐야 집 한 채 장만하기 어려운 게 지금 우리나라의 노동 현실이다.

그러면, 이런 구체제 부조리를 개혁하자고 든 촛불의 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필자는 절체절명 이 시기의 촛불은 끝장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광주시민이 외쳤던 메시지는 분명했다. 첫째, 촛불의 열기와 성과를 다시 특정 정치 세력이 독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 낡은 체제(앙시앵 레짐)의 변혁.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혁명에 준하는 변혁을 바라고 있다. 셋째, 역사의 죄인들에 대한 확실한 단죄. 그래야 다시는 반복된 실패의 역사나 민주주의의 역행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실질적 민주주의 정착.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정착될 때라야 완전한 민주주의가 달성되는 것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민주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살아있던 군사정권의 그림자들이 궤변, 후안무치, 안하무인, 몰염치로 광주를 폄훼했던 것처럼, 현 국정농단 세력도 판단력과 변별력을 잃고 역공에 나서면서 촛불민심이 목놓아 외친 것들을 희석시키고 있다. 촛불민심과 관계없이 단죄를 피하려 용을 쓰고 있다. 이러다 죽 쒀서 개줄까 봐 걱정된다.

제발 이번엔 정치권도, 국민도, 촛불에너지를 통해 고달픈 삶을 바꿀 수 있는 개혁시스템이 만들어질 때까지 끝장토론을 해봐야 한다. 현 부패세력의 단죄는 대통령 한 사람을 끌어내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요만큼 망쳐진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지, 정치는 국민의 절박한 요구에 제대로 답하고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은 이제 형식적인 눈가림이 아니라 실질적인 새로운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삶을 중심에 놓고 그 틀을 바꿔 헬조선이 아니라 ‘살고 싶은 대한민국’을 촛불민심은 원한다. 기득권, 특권을 타파하고 누구나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 불평등, 불공정하지 않는 기회가 균등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국민 삶을 개선하지 못한 민주주의는 사상누각이라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자 교훈이다.

절체절명 대한민국의 앞날은 12, 1, 2월 앞으로 세달 동안 국회와 국민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국회는 광장의 민심을 수용해 민생을 살리는 정책과 제도를 잘 살펴봐야 한다. 광장이 요구하는 것은 변화이고 개혁이다. 왜곡된 정의의 추를 바로 세우고 불공정에 좌절하고 불평등에 신음하는 2016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제발 바꾸라. 촛불민심이 이렇게 간절하게 정치권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지구촌 세계인이 주목하고 있는 2016년 12월, 2017년 1, 2월 대한민국 절체절명 시기를 후대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촛불은 꺼지고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다’고 기록되어선 안 된다. ‘촛불 에너지는 어둠을 불사르고 새로운 길을 찾았다’고 기록되어야 한다.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 광주시민의 피와 목숨으로 이룬 민주주의다. 이제 완성할 때도 되었다.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