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 끝자락에 밝힌 촛불은 반야용선…새해 행복한 세상 함께 가자 [사찰문화기행] 아쇼카순례단-해설이 있는 사찰 순례 창녕 관룡사

2016년 12월 22일(목) 18:58

관룡사 대웅전과 뒷산의 능선이 아름답게 어울린다.

주말마다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서울 광화문 앞에는 100만 개 이상의 촛불이 파도타기를 한다.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른 촛불의 바다이다. 이 험한 바다를 건너 저 세상은 어떤 곳일까. 불교에서 중생이 살고 있는 이곳을 차안(此岸)이라 하고, 생사고해를 건너 행복한 세상을 피안(彼岸)이라 한다. 피안의 세계, 즉 극락세계로 향하는 것으로 용이 끄는 거대한 반야용선이 있다. 이 배는 용이 이끌고 불, 보살이 선장이 되어 반야의 지혜로 사바의 고해를 건너 정토로 가는 배이다. 간혹 사찰벽화를 보면 용이 뱃머리가 되어 험난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그림을 만나게 된다. 이 그림이 바로 ‘반야용선도’다.

일주문 역할을 하고 있는 관룡사 석문.

병신년(丙申年) 끝자락에 반야용선을 찾아 나섰다.

경남 창녕 화황산 관룡사.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커다란 반야용선이 있다.

사실 전국 사찰에 있는 모든 법당이 반야용선이다.

일반적으로 법당 앞 현판에 용 두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고, 법당 뒤편에 용의 꼬리가 있다. 법당 안에는 불, 보살과 신장들이 기도하는 중생들을 호위하듯 한다. 이렇게 법당에서 정진하면 모두가 정토세상에 나아가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법당은 극락세계로 나아가는 반야용선이 되는 것이다. 법당이 반야용선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 또하나 있다. 해남 미황사, 여수 흥국사 등 수많은 사찰의 법당 주춧돌이나 기단석에 거북, 게, 물고기 등 수중 생명이 새겨져 있다. 법당이 바다 위를 달리는 반야용선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약사전 벽면에 꽃으로 병풍을 두른듯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화황산 관룡사에는 특별한 반야용선이 있다.

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8대 사찰 중의 하나이다. 사적기에 의하면 창건은 349년으로 이때는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180여 년 전이다. 지리적으로 볼 때 허황후가 인도에서 올 때 불교를 전래했다는 가야불교에 뿌리를 둬야할 것 같다. 불교가 해상으로 전래됐다는 가야불교가 신라불교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그 후 원효스님이 제자 송파스님과 함께 화왕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가 갑자기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봤다. 그때부터 절 이름을 관룡사(觀龍寺)라 했다고 전한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지금도 관룡사는 대웅전(보물 제212호), 약사전(보물 제146호), 약사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19호), 약사전 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용선대 석조 석가여래좌상(보물 제295호) 등 수많은 국가지정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대웅전 불상 뒷면에 자리한 관음보살도.

관룡사의 중심전각인 대웅전은 조선 태종 때 처음 건립됐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고 광해군 때 중창했다. 대웅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불상을 모신 수미단이다. 네모난 수미단은 연꽃과 물고기 등 수중생물에서 매미, 나무 등 지상생물, 악기를 연주하며 하늘을 나는 천녀 등 천상의 생명까지 나무로 조각한 육해공(陸海空) 모든 세상을 평화롭게 그려내고 있다.

관룡사처럼 오래된 대웅전은 참배를 마치고 꼭 불상 뒤쪽으로 돌아서 나와야 한다. 불상 뒤쪽 면에 불화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법당 뒤쪽 면에 조성된 후불벽화는 관세음보살도이다. 관세음보살은 손이 1천개, 눈이 1천개여서 언제, 어디에서든 중생의 어려운 소리를 듣고 달려와 도와주는 보살이다.

관룡사에서 가장 오래된 법당은 약사전이다. 한 칸짜리 맞배지붕인 이 법당은 지붕이 유난히 커서 가분수마냥 균형이 어긋난 듯 보인다. 그런데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것은 산세와 주위건물들과 어울려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수미단에 부조로 새겨진 다양한 생명들.

약사전 안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사방 벽에 화사한 그림으로 장식했다. 마치 꽃 병풍을 두른 듯하다. 이렇게 안락한 곳에 잠시라도 앉으면 몸과 마음의 병이 모두 사라질 것 같다.

그런데 관룡사에는 약사전보다 더 작은 전각이 있어 눈길을 끈다. 대웅전 뒤편에 산신과 독성을 모신 산영각이다. 한 칸짜리 미니 법당인 산영각은 안에 들어갈 수도 없을만큼 작다. 전각 안에는 공양물만 올리고 참배는 밖에서 하는 기이한 체험은 마치 소인국에 온듯하다.

관룡사 법당순례를 끝냈으면 비경 하나를 가슴에 담아야한다.

누각인 원음전 앞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라. 대웅전 용마루와 관룡사를 품고 있는 병풍바위 능선의 조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붕선과 산의 능선이 서로 크거나 작지 않은 것이 편안하다. 여기에 버선코 마냥 살짝 올라간 법당 용마루 양쪽 끝선과 산의 능선이 쌍둥이 마냥 같다. 대웅전을 지은 대목은 관룡산을 지키는 산신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법당과 산이 하나돼 지금도 자유로이 오고갈 것이다.

약사전앞에서 바라본 대웅전과 병풍바위.

이제 가야한다. 관룡사의 화룡정점, 용선대로 올라야한다. 풍수가들은 우리의 산천가운데 산을 용으로 여겼다. 꿈틀꿈틀 이어진 산세가 마치 용과 같다. 관룡사를 안고 있는 산은 좌청룡 부분이 병풍바위라는 암벽으로 돼있다. 여기에서 능선하나가 우백호 쪽으로 넘어오는데 멀리서 보면 용이 하늘을 나는 듯하다. 그러다가 커다란 바위 하나 불끈 솟구쳐놓고 뚝 끊긴다. 그리고 산 아래 중생들의 세계가 펼쳐져있다. 이 바위 위에 부처님을 모셨다. 좌청룡 병풍바위의 기운에 대칭해 빈약한 우백호의 기운을 채우려는 듯 무거운 돌 부처님을 앉혀놨다. 그래서인지 부처님이 만경창파를 헤치고 나가는 반야용선의 선장 같다. 여기가 바로 용선대이다.

용선대는 사방이 시원하게 펼쳐져있다. 불상 뒤편으로 멀리에는 넓직한 화황산 억새밭이 양탄자마냥 깔려있다. 불상 앞쪽은 반야용선의 앞머리이다. 산아래 펼쳐진 중생세계는 마치 바다와 같아 보인다.

용선대 석불.

병풍바위에서부터 품어온 기운이 뭉쳐서인지 용선대 부처님은 영험이 많기로 유명하다. 인근에서는 이곳에서 기도하면 꼭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고 있다.

옛날, 관룡사 주지스님이 동짓날 동자승에게 용선대 부처님에게 팥죽공양을 올리도록 했다. 추운 겨울에 동자승이 팥죽그릇을 들고 용선대에 올라보니 이미 부처님은 팥죽을 드셨는지 입가에 붉은 죽이 묻어있었다. 이때부터 팥죽부처로도 불린다. 이런 연유로 동짓날이 다가오면 용선대 부처님을 찾는 기도객이 줄을 잇는다.

그렇지만 올해는 용선대에 올라도 부처님을 만날 수 없다. 세월에 묻은 군더더기를 벗기는 치료를 하기위해 포장속에 덮여 있다.

관룡사 순례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길가에 옥천사지 푯말이 눈에 띈다. 고려말 공민왕 때 개혁을 꿈꾸던 신돈이 태어난 사찰이다. 그는 정민변정도감을 설치해 서민들이 억울하게 뺏긴 땅을 찾아주고, 노비를 해방시켰다. 성균관을 재건해 신진사대부를 등장시켜 새로운 시대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개혁은 짧았다. 공민왕이 다시 친정에 나서고 간신으로 몰려 죽었다. 또다시 혼란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신돈이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옥천사지.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다시 오늘의 촛불을 생각한다. 이 촛불이 꺼져서는 안된다. 도로 그때가 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무심하게도 한해가 넘어간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풍파가 심한 바다와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촛불이 모여 반야용선이 되고 있다.

촛불 반야용선을 타고 희망찬 정유년(丁酉年) 새해로 건너가자.


창녕 우포늪

원시 자연습지 그대로 간직한 생태계 보고

화왕산 관룡사에서 창녕 읍내를 가로질러 건너편에 국내 최대 원시 자연습지인 우포늪(2.313㎢)이 있다.
창녕 화왕산 골짜기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실개천은 부챗살처럼 퍼져 낙동강으로 흐른다.

우포늪 생태전시관.

집중호우나 여름 홍수기가 되면 낙동강의 수위가 상승해 강물이 개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홍수로 증가한 수위는 3-4일에서 길게는 10여일 정도 계속 머물러 거대한 호수가 된다. 이때 홍수에 견디지 못하는 육상식물들은 살지 못하고 죽게 된다. 홍수예방을 위해 일제강점기 때 인공제방을 쌓아 평소에도 물기를 많이 머금은 습지가 됐다.

하지만 우포늪은 초여름에서 가을철에는 희귀식물인 가시연꽃과 마름, 생이가래, 자라풀 등의 수초가 늪을 덮어 매우 고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겨울이 되면 수천 마리의 철새(쇠기러기, 오리류, 고니 등)들이 아침 저녁으로 늪 위를 날아 그 경관 또한 일품이다.

근래에는 세계적인 희귀종인 따오기 복원프로젝트가 이곳 우포늪에서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우포늪에서 사라진 지 37년 만에 따오기가 일반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우포늪은 70만여평에 이르는 천연 늪 속에 희귀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그대로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다.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우포늪은 1933년 천연기념물 15호로 지정됐다. 1997년 생태계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 3월 2일에는 국제협약인 람사협약에 등록하고, 보존습지로 지정돼 보호하고 있다.

화왕산 관룡사 용선대 석불이 반야용선의 선장이라면 이곳 우포늪은 우리네 중생들이 살고있는 사바세계가 된다. 1만5천년 전에는 이곳도 바다였다고 하니 관룡사 용선대는 실제로 바다를 가로지르는 반야용선이라 하겠다.

관룡사를 순례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포늪을 찾았건만 길마다 차단막이 설치돼 있다. 전국을 휩쓸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라오스 불교문화 탐방 : 2017년 1월11일-15일 (비엔티안-루앙프라방-방비엥) (문의 : 062-383-3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