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병신년(丙申年)!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ssnam48@kjdaily.com

2016년 12월 28일(수) 19:45

‘이게 나라냐’ ‘그래, 이게 나라다’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광화문에서 첫 촛불을 들었을 때 주변의 외국인들이 ‘무슨 나라가 그러냐’ 비아냥거려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홉번째 촛불에 9백만만명이 거리로 나왔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한국에서 시민정신을 배워야겠다’며 부러워했다고 한다. 우리 스스로도 광장에 나가 ‘이게 나라냐’며 탄식했던 10월과 달리 아홉 번의 촛불광장을 통해 ‘이게 나라다’를 확인하고 있다.

최근 AFP통신은 ‘탄핵 이후 시민들은 자부심이 넘쳤고 망가진 한국의 민주주의를 매주 대규모 집회를 통해 손수 바로잡았다고 믿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은 ‘거리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새 시대를 의미하는 ‘서울의 봄’이라는 것이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별도 사설에서 한국인들이 부패가 경제성장의 필요악이라는 인식을 정치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NYT는 ‘박 대통령의 곤경은 한국 정치시스템 결함의 징후’라면서 ‘한국인들은 분노와 울분을 분출한 이후엔 부패가 경제성장의 불가피한 대가라는 인식을 정치에서 청산하는 어려운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독일의 저명한 주간지 디차이트는 ‘유럽과 미국은 이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고 극찬했다. 평화롭고 질서정연하면서도 강력한 한국인은 용기와 열정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방법을 세상에 알려주었다고 격찬했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차이롱은 ‘한국의 위대한 촛불축제’라고까지 평했다.

한국의 촛불은 지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주 성탄전야 24일 9차 촛불집회까지 참가 인원은 주최측 추산 전국기준 907만명에 달한다. 31일 열릴 10차 촛불집회까지 합산하면 2016년 민주주의 새역사를 써온 촛불집회 참여 인원은 연인원 1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퇴진행동은 이를 위해 오는 31일은 물론 내년 1월 7일과 14일 청와대와 총리공간, 헌재 인근 행진계획을 미리 신고했다. 내년까지도 촛불은 계속된다.

필자는 광화문 촛불집회 소식을 전하는 영상 속에서 광화문 천막에서 열리고 있는 ‘내가 왜’라는 주제를 내건 전시를 의미있게 보았다. 입구에 걸린 시인 송경동의 시 ‘우리 안의 폴리스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그만 그 거대한 무대를 치워주세요/ 우리 모두가 주인이 될 수 있게/ 작은 사람들의 작은 테이블로 이 광장이 꽉 찰 수 있게/ 이제 그만 연단의 마이크를 꺼 주세요/ 모두가 자신의 말을 꺼낼 수 있게/ 백만 개의 천만 개의 작은 마이크들이 켜질 수 있게’ 세계를 놀라게 한 광장민주주의 의 저력을 삶의 현장으로 옮겨 현장민주주의로 승화시키자는, 광장의 촛불이 일상의 현장에서도 타오르기를 염원한 시다.

송경동 시인처럼 병신년(丙申年) 세밑 광장에서 우리는 초라하고 궁색한 한국 정치의 풍경을 목도했다. 가난할지언정 삶을 위해 싸웠던, 소중한 이들의 삶과 죽음을 대한 이야기가 광장의 외침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현실도 보고 있다.

내년은 1987년 민주항쟁 30년 되는 해다. 그때 청년기를 보냈던 필자는 50대에 촛불광장에 서서 30년 전 기억을 더듬는다. 1980년 5·18, 1987 6월항쟁, 광장에 섰던 필자는 이후 민주화된 한국 사회의 삶이 이렇게 버거울 줄 예상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을 했고 그렇게 성실하게만 살면 내 삶도 물 흐르듯이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30년 전 민주화를 성취했지만, 이후 30년은 어쩌면 민주주의의 후퇴였다. 지금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가치는 뼈다귀만 남은 게 아닌가 싶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있었다쳐도 지금 광장에 나와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중학생을 보면서 참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미안해서, 못했던 책임을 생각하며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는 어른이 많다. 다시 열린 광장은 지난 30년간 때로는 타협하느라 때로는 버거워서 내려놓았던 민주주의 가치를 다시 모색해보는 그런 자리인 것 같다.

올해도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2016년은 촛불광장은 길이길이 역사에 남을 것이다. ‘이게 나라냐’며 절망으로 시작된 촛불은 ‘이렇게 살아도 되냐’는 자괴감을 넘어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각오를 넘어 ‘국가란 무엇인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를 집단적으로 묻고 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구나’ 사회 전체가 함께한 회고의 시간은 ‘바로 이런 게 나라다’는 자부심으로 기억될 것이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각자가 되새길 것은 ‘촛불과 촛불을 이어 어떻게 삶을 바꿀 것인가’이다. 해맞이하며 각자 소원과 함께 한국민주주의를 위해서도 기도하자. 삶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실천·실현하겠다고 다짐하자. 내 마음속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내 안의 최순실’을 불태우고 정화해야 한다.

필자는 촛불광장에서 우리 스스로 발견해낸 용기, 우애와 연대의 정신, 그 고귀한 품성을 경외한다. 그 진한 감동과 감탄이 2017년을 더 큰 온기로 열어가길~.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