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리더십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ssnam48@kjdaily.com

2017년 01월 04일(수) 19:46

2017년 정유년 새해를 맞으면서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인간사 ‘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수많은 현자들이 인생을 ‘물’에 비유하여 말하지 않았나. ‘물은 자신을 낮추고 아래로 흐르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 ‘도덕경’을 통해 알 수 있는 노자의 물철학이다. 또한, ‘물은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른다’는 것은 ‘논어’에 나오는 공자 물철학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물은 인간과 너무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기에 많은 철학자들이 인생과 비유하였다. 맹자도 예외가 아니다. 맹자의 제자였던 서자가 맹자에게 물철학을 물었을 때 맹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맹자왈, 原泉混混(원천혼혼)하야 不舍晝夜(불사주야)하고 盈科而後進(영과이후진)하야 放乎四海(방호사해)이라’

‘샘이 깊은 물은 끝없이 용솟음친다. 그러기에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를 수 있는 것이다. 흐르다 웅덩이에 갇히면 그 웅덩이를 가득 채우고 다시 흐른다. 그리하여 사해까지 멀리 흘러 갈 수 있는 것이다.’

물은 웅덩이를 다 채운 뒤에야 나아가는 법이지, 절대로 빈 웅덩이를 건너뛰고 흐를 수는 없다. 맹자는 이를 ‘영과후진(盈科後進)’이라고 했다. 학문하는 방법이나 세상 일 모두 마찬가지다. 차근차근 단계를 거치면서 내 것으로 만든 다음에 나아가야 한다. 물이 웅덩이를 비우고 흐르지 않듯이 모르면 채워야 한다. 채운 뒤에야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당당하게 알고자 하는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

그렇다. 근원이 깊은 물만 바다까지 이를 수 있다. 그만큼 근본이 중요하다. 근본이 있는 물은 바다로 흘러갈 때까지 무리하지 않는다. 가다가 웅덩이를 만나면 그 웅덩이를 채우고 흘러간다. 급하다고 웅덩이를 다 채우지 않고 흘러간다면 결국 가뭄에 그 물은 말라버리고 말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도 이와 같다. 인생을 살다가 어려움을 만나거나 힘든 상황을 맞이하면 함부로 나아가지 않고 차분하게 그 상황을 기다리고 겪어냄으로써 힘을 쌓은 다음 비로소 새로운 길로 나아가라는 철학이다.

어쩌면, 한국사회는, 가는 길이 급해 움푹패인 웅덩이를 외면하고 건너 뛴 결과, 더 큰 웅덩이를 만난 것 아닌가. 준비되지 않은 민주주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쫓다가 우리 삶 속 여기저기 패인 웅덩이를 외면하고 앞만 보고 달리다가 그때 외면했던 웅덩이를 비로소 만난 것. 한때 외면했던 웅덩이는 반드시 전진만 하는 우리의 삶 속에 돌연 나타나 그 웅덩이로 발향키를 되돌리고, 쉬지 않고 달려온 시간들을 배신한 것이다. 우리는 되돌아와 빈 웅덩이를 보고서야 물을 채워놓지 않고, 온전히 살피지 않은 댓가가 얼마나 처절한지 느끼게 되었다.

필자는 올해 신년화두를 영과후진(盈科後進)으로 정했다. 나주에 본사를 둔 한국전력공사 조환익 사장도 2017정유년 화두로 영과후진(盈科後進)을 강조했다. 필자는 최근에 지역민과 국민이 촛불정국에서 강하게 요구한 언론개혁과 관련해, 광주매일신문이 먼저 언론의 기본사명, 언론의 근본을 채운 뒤 앞으로 전진하겠다는 각오로 영과후진(盈科後進)을 되새기기로 했다. 조환익 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면 존속과 소멸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집단지성을 키워야 한다’고 밝히면서 한전 조직의 체력을 먼저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이 흐르면서 웅덩이를 만나면 뛰어넘지 않고 모두 채우면서 도도하게 흘러 대해로 나아가듯, 한전이 주변업계와 생태계를 먼저 육성한뒤 함께 성장해나가야 한다는 웅덩이론을 강조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한 2016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지만 여전히 새해 인사를 마음 편히 건네기엔 우리 앞의 현실이 너무 엄혹하다. 우리는 여전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이 위기, 이 웅덩이는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국가적 위기로, 꼭 극복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심판 결과를 봐야 하지만 차기 대통령 선거는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가장 급한 일은 무너진 국가 리더십의 복원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을 헤아리는 소통 능력, 촛불정국에서 우리 국민이 요구했던 지도자의 ‘웅덩이 탈출법’이다.

지금 대한민국호는 위기의 웅덩이에 빠졌다. 시장에 나가보면 경기가 ‘IMF 위기’보다 나쁘다는 하소연이다. 사면초가다. 사방이 암울하고 또 암울하지만 이럴때 일수록 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근본’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절체절명의 변곡점에 놓여 있을수록 내실강화와 책임경영을 통해 웅덩이를 먼저 매우고 외부 환경변화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 새로운 미래 성장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 국민은 달라졌다. 웅덩이에 물을 채우지 않고 바다에 먼저 뛰어든 결과 치르게 된 고통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명확한 잣대가 생겼다. 옳고 바른 리더십,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게 하는 리더십, 그것을 가려볼 수 있는 지혜가 생겼다.

촛불 민심이 간절히 기다리는 새로운 리더는 누굴까? 법을 준수하고, 책임 있으며, 국민과 잘 소통하는 리더~. 영과후진(盈科後進), 위기일수록 기꺼이 되돌아와 물지게를 지고 빈 웅덩이에 성실하게 물을 채운 뒤, 그 물이 국민에게 흐르도록 돕는 이다./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