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고, 더 넓은 소통 위한 지식의 정원 ‘프랑수와 미테랑 도서관’ [이영미의 파리문화기행] 파리의 도서관 탐방 (1)

2017년 01월 05일(목) 19:15

프랑스의 국립도서관인 프랑수와 미테랑 도서관은 파리 베흐시 지역 센느강변에 위치해 있다. 사진은 프랑수와 미테랑 도서관 전경.

■ 공적 가치를 우선하는 문화적 공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느끼게 된 가장 큰 차이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변화에 대한 속도’이다.

한국사회는 잠시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변화를 쫓아가기 힘들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바뀐 도시의 풍경과 사회 시스템을 직면할 때마다, 난 유행에 뒤처진 이가 된다. 경제적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자본주의가 양산한 한국의 소비문화에 난 늘 이방인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프랑스는 몇 년이 지나도 늘 그대로인 듯 느리게 변화한다. 또 다른 차이는 한국의 지하철에서 음악을 듣거나 핸드폰을 보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면, 프랑스의 지하철에서는 앉아 있는 사람부터 서 있는 이들까지 책을 읽는 이들이 핸드폰을 보는 이들보다 더욱 많다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의 기성세대도 요즘 핸드폰에 중독돼 있는 젊은 세대를 향해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곳도 조금씩 변화가 읽히긴 한다. 하지만, 여전히 책 읽는 문화는 프랑스 사회를 상징하는 중요한 가치인 듯하다.

▶2004 전남대 건축공학박사 ▶2005-2007 전남대 post-doc/청주대 post-doc ▶2009-2011 전남대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2014-현재 Paris 8대학, 도시계획 박사과정

이 두 가지 차이점에서 추출할 수 있는 키워드는 ‘소비’를 향한 욕망과 책으로 상징되는 ‘교육’이다. 지나친 소비는 사회의 경쟁을 유발하고 욕망을 극대화 하는 반면, 교육은 지식과 소통, 서로의 비판을 통해 이성과 감성을 중재하는 힘을 준다. 프랑스의 사회도 변화하고 있다곤 하지만 경쟁구도인 한국사회의 교육 보다 프랑스에서의 교육은 여전히 공공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18세기 프랑스 부르주아 혁명의 사상적 기초가 됐던 철학자 엘베시우스(Helvetius)는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태어난다. 하지만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에 따라 누구는 천재가 되고 누구는 보통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심지어 바보가 될 수가 있다. 하지만 올바른 교육을 받으면 평범한 아이도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며 불평등은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교육을 통한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 ‘공공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공적영역에서 담당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공공도서관이다. 역사적으로 초기 공공도서관은 17세기 프랑스의 마자랭 도서관(1639)이 시초이다. 17세기부터 현재까지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역할을 담당해온 공공도서관은 불평등한 교육, 나아가 개인의 사적 이익을 초월해 공적 가치에 대해 토론하는 장이며, 민주주의를 성장시켜 나가는 문화적 공간이기도 하다. 현재 파리에는 수많은 공공도서관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파리의 도서관 연재를 통해 도시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베흐시 지역과 도서관을 잇는 목재 데크.

■ 도심 재생 프로젝트 일환으로 건립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서관이라면, 파리에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이름을 딴 국립도서관인 ‘미테랑 도서관’과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이름을 딴 퐁피두 센터 내에 있는 도서관이 있다.

미테랑 도서관은 파리 베흐시(Bercy) 지역, 센느 강변에 새롭게 건설된 국립도서관으로 세계의 모든 지식을 포괄하며 모든 사람들이 쉽게 지식에 접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프랑스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건축됐다. 원래 1368년 샤를 5세 때에 처음 설립돼 1692년 대중에게 개방됐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1988년 7월 14일 혁명 기념일을 맞아 전신인 국립도서관을 모든 지식 영역을 망라하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으로 건축 및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곳이 위치해 있는 베흐시는 과거 공업지대였으나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과 함께 낙후된 공간을 재생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표된 대형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미테랑 도서관은 우리나라의 이화여대 캠퍼스 콤플렉스(ECC), 광주 구시청에 설치된 폴리의 설계자로 유명한, 하지만 당시 35세의 무명 건축가였던 도미니크 페로의 작품이 선정됨으로써 그를 세계적인 건축가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작품이다.


■ 거대한 도서관, 건물은 도시 풍경이 되다

책을 반쯤 펼친 모양을 형상화한 네 개의 건물은 새롭게 재생된 도시의 풍경을 바꿨다. 건축가의 의도는 건물이 파리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풍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유리로 이뤄진 80m 거대한 크기의 직사각형 건물은 외관의 투명성으로 인해 도시 스카이라인을 방해하지 않으며, 빛이 유리벽에 반사되면 건물은 도시 속 풍경이 돼 그 경계가 사라진다. 각 건물은 지하로 연결돼 있으며 네 개의 건물 가운데에 있는 중정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거대한 공간은 스케일을 잃어버렸다

미테랑 도서관은 퐁피두 도서관에 비해 접근성이 제한적이다. 국립도서관 열람실은 크게 오뜨 드 자당, 헤 드 자당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인 열람실이 있는 오뜨 드 자당(Haut-de-jardin)은 16세 이상의 일반인 모두에게 입장이 허용되며, 일일이용권 및 연간 회원 카드를 소지해야 이용 가능하다. 한편 16세 이하의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이용 가능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헤 드 자당(Rez-de-jardin)은 문화유산 컬렉션을 열람할 수 있는 곳으로 박사급 이상의 연구자 카드를 소지한 사람들과 사전 예약한 이들만이 이용할 수 있다. 이처럼 미테랑 도서관은 국립도서관임에도 불구하고 접근이 제한적이지만 퐁피두 도서관은 초, 중, 고, 대학생, 성인들, 노숙자들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미테랑 대통령은 급진적 좌파, 사회주의적 개념을 실현하려는 데 기반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설립한 미테랑 도서관은 어찌 보면 그의 이념과는 동떨어진 구현체로 보이기까지 한다. 사회당과 공산당의 시각에서 본다면, 대규모 개발과 엄청난 도시자본이 유입된 이 사업은 비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유럽 좌파 세력의 단일 후보로 추대돼 제 5공화국 최초의 좌파 정권 수립에 성공한 미테랑 대통령이 펼친 정책들은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편입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르노자동차, 에어프랑스 등을 국유화 하면서 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들은 우파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가 시도한 유급휴가제, 국가보험의 확대, 사형제 폐지, 대규모 도시재생사업은 비교적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미테랑 대통령의 성과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 국립도서관은 어찌 보면 가장 우파적이고 자본주의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열람실의 유료화, 박사급 이상 연구원들만 접근 가능한 실은 이 지식 창고가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도서관 내부에 들어서면 먼저 거대한 크기에 압도당한다. 외관의 거대한 매스, 내부의 높은 천장은 공간을 이용하는 인간을 매우 작게 만들어버린다. 그 안에서 스케일은 사라진다. 거대한 공간만이 남을 뿐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이 거대한 공간은 스케일을 잃어버린건 아닐까?


■ 본질에 충실한 지식의 정원 ‘더 넓게 그리고 더 깊게’

이러한 아쉬움 속에서도 미테랑 도서관은 ‘도서관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지식의 정원, 책의 정원이다. 다른 공공도서관에 비해 미테랑 도서관의 프로그램은 매우 단순하다. 이곳의 미션은 첫째, 자료의 수집과 보존·분류다. 둘째, 지식의 가치를 소통시키는 것이다. 책 또는 자료를 보존하고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을 통해 지식을 제공하고 컬렉션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한 디지털 도서관이 있으며, 연구 및 협력 등 학술적 교류를 위해 전문적인 전시 프로그램과 컨퍼런스가 행해진다.

미테랑 도서관은 ‘더 넓게’ 소통한다. 현재 2017년 1월, 이곳에서는 철학가, 수학자, 신학자이기도 한 ‘파스칼’에 관한 전시 등 여러 주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학술적인 내용의 전시부터 문화예술과 관련된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전시된다.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 방문하면 언제든지 다양한 전시회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미테랑 도서관은 ‘더 깊게’ 소통하고자 한다. 대부분 매주 개최되는 다양한 주제의 학술 컨퍼런스는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언제든지 청강할 수도 있다. 이곳의 전시나 컨퍼런스 모두 대중적이길 고집하지 않는다. 전공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특화된 주제의 학술전시에서도 일반인들이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모습은 미테랑 도서관에서 만나게 되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다.

현재는 ‘복합+문화’ 홍수의 시대이다.

상업공간, 예술공간 등 여러 기능에 ‘복합문화’를 결합하는 공간은 넘쳐나고 있다. 근래 큰 규모의 도서관부터 동네 작은 도서관까지 복합문화를 추구하는 것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물론 시대마다 필요한 도서관의 역할은 변화돼 왔다. 고대 최초의 도서관으로 알려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화국가로 성장시키기 위해 전 세계의 지식을 수집하고 문화와 학술적인 지식의 생산 역할을 담당했다. 19세기의 공공도서관은 민주시민 교육과 더불어 지식을 유통하는 역할을 지녔다. 최근에는 도서관에 각종 문화관련 프로그램을 결합한다. 그렇게 복합기능을 추구하는 요즘, 미테랑 도서관이 지향하고 있는 보다 ‘더 넓고 더 깊은’ 지식의 탐구와 이것의 연구 및 토론을 통한 소통은 우리에게 공공도서관이 지녀야 할 본질을 상기시켜준다. 미테랑 도서관은 지식의 방대한 수집과 제공, 그리고 소통을 바탕으로 한 질 높은 문화시민으로의 교육을 제공해주고 있다. 단순한 기능이 발휘할 수 있는 집중적인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