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한 바위와 다도해가 그린 한폭의 풍경화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신안 비금도 그림산·선왕산

2017년 01월 10일(화) 19:26

그림산, 선왕산 능선에서는 비금의 얕은 산과 넓은 염전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압해도 송공항에 도착하니 아침공기가 쌀쌀하다. 우리를 태운 배는 암태도와 팔금도 사이를 뚫고 천천히 달려간다. 이곳 섬들은 자은도·암태도·팔금도·안좌도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고, 팔금도·안좌도 서쪽에 비금도와 도초도가 위치하고 있다.

추포도와 팔금도를 지나니 안좌도가 모습을 드러내고, 안좌도와 비금도 사이에 상사치도·하사치도·상수치도·수치도·노대도 같은 작은 섬들이 떠 있다. 노대도와 상수치도 사이를 빠져나가자 비금도 가산항이 기다리고 있고, 가산항 뒤로 오늘 우리가 오르게 될 그림산과 선왕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압해도 송공항에서 1시간 20분을 달린 끝에 비금도 가산항에 도착했다. 가산항에 도착하자 비금도(飛禽島)라는 이름을 상징하는 날아가는 새 조각상이 길손을 맞이한다. 섬의 모양이 큰 새가 날아가는 것처럼 생겼다 해서 비금도라 불렀다.

버스를 타고 그림산으로 향하는데 염전이 드넓게 펼쳐진다. 비금도는 호남지방에서 해방 이후 처음으로 천일제염이 시작된 섬이다. 현재 비금도 염전에서는 우리나라 천일염의 5%를 생산한다. 드넓은 염전 뒤로 그림산과 선왕산이 몸을 맞대고 있다.

그림산 암봉들과 선왕산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설악산을 축소해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그림산이 점점 가까워지자 갖가지 모양의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상암마을 등산로 입구에 도착해 가볍게 몸을 푼 후 그림산과 선왕산을 향해 출발한다. 잠시 소나무숲길을 이루던 등산로는 점차 암릉지대로 바뀌면서 주변의 조망이 시원스럽게 터진다.

남쪽을 바라보니 들판과 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고, 그 뒤로 도초도가 붕긋 솟아 있다. 도초도는 비금도와 형제 같은 섬으로 다리로 연결돼 있다. 비금도에서 비교적 남쪽에 위치한 그림산과 선왕산 능선에서는 북쪽으로 비금도의 얕은 산과 넓은 농경지, 염전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그리고 다도해를 이룬 바다가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대부분의 섬마을은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비금도의 마을들은 바다와 약간씩 떨어진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산자락에 기댄 마을은 구불구불한 길과 함께 소박하면서 정답다. 어린 시절 외갓집 가던 길처럼 훈훈하고 정감이 가는 마을과 길이다. 산길을 걷다보면 바위들이 아기자기하고, 다도해 풍경이 시원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북서쪽에서 바닷바람이 고개를 넘어 마을로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내월우실. 우실은 울타리라는 뜻을 가진 ‘울실’에서 비롯됐다.

그림산 정상(226m)에 오르니 사방에서 다가오는 풍경이 그림 같다. 그림산을 이루고 있는 바위들이 그림이고, 비금도와 다도해 풍경이 또 하나의 그림이다. 그림산 암봉들과 선왕산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설악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 억겁의 세월이라고 하는 조각가는 모양을 다듬고, 표면을 매끄럽게 문질러 갖가지 모양의 조각품을 만들어 냈다. 그러니 그림산과 선왕산은 자연이 만들어놓은 조각전시장에 다름 아니다. 바위 사이사이에는 소나무들이 푸른색으로 바위를 물들여 무뚝뚝해 보이는 바위를 더욱 산뜻하게 해준다.

그림산과 선왕산 바위들은 주변의 다도해와 어울려 더욱 아름다워졌다. 육지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섬이지만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은 절경을 자랑하는 그림산과 선왕산이 있기 때문이다. 선왕산 뒤편으로 날씨가 화창하면 흑산도까지 조망이 된다는데, 오늘은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선왕산으로 향하다가 뒤돌아보면 그림산 전경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주변의 섬들은 그림산이 더욱 돋보이도록 배경이 되어준다. 선왕산으로 접근할수록 명사십리해수욕장이 점점 가까워지고, 비금도 북서쪽 바다도 더욱 푸르러진다.

모래사장이 십리에 이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비금도 명사십리해수욕장.

남쪽의 조그마한 내포해수욕장 앞에는 대섬이 떠 있고, 경치도라는 무인도 뒤로 우의도가 고개를 내민다. 선왕산에 가까워지면서 다시 바위들의 군무가 시작된다. 벙거지를 쓴 벅수모양 같기도 하고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 같기도 한 바위는 멀리서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선왕산 정상(255m)에 도착해 있다. 이 산은 아래에서 보면 산의 선이 왕관처럼 삐쭉삐쭉하게 생겼다 해서 선왕산이라 했다. 선왕산 정상에서의 조망 역시 장쾌하기 이를 데 없다. 북쪽 바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서산저수지는 비금도에 있는 여러 저수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포전도와 내포전도, 원평항과 원평항 앞바다에 떠 있는 우세도·소우세도 등 여러 작은 섬들, 그리고 4.4㎞의 해안선을 자랑하는 명사십리해수욕장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북쪽 멀리 바다건너 자은도와 암태도가 어렴풋하고, 동쪽 멀리로는 팔금도와 안좌도도 가늠이 된다.

선왕산 정상에서 10분 정도만 가면 하누넘해수욕장으로 곧바로 가는 길과 내촌우실로 가는 길이 갈린다. 우리는 내촌우실과 내촌마을 돌담장을 만나기 위해 내촌우실 방향으로 향한다. 내월우실 방향으로 내려서자 하트모양을 한 하누넘해수욕장이 지척이다. 하누넘해수욕장은 하트‘♡’처럼 생겼다고 하여 하트해수욕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해수욕장에서 드라마 ‘봄의 왈츠’를 촬영했다.

하누넘해수욕장은 해변의 모양이 하트처럼 생겼다고 해서 하트해수욕장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으로 산허리를 돌아 내월우실로 향한다. 내월리 내촌마을에서 하트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위치한 내월우실은 길이가 20m와 45m에 이르는 두 개의 담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높이 3m, 폭 1.5m 규모의 내월우실은 바닷바람이 산을 넘어 마을로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해 산줄기에 쌓았다. 우실은 마을의 울타리라는 뜻을 가진 ‘울실’에서 비롯됐다. 비금도에 남아 있는 몇 개의 우실 중에서도 내월우실이 대표적인 우실이다.

선왕산 아래에 포근하게 자리를 잡은 내촌마을로 들어선다. 4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내촌마을 돌담길이 우리를 마을 안으로 안내한다. 구불구불 이어지기도 하고, 직선을 이루기도 한 돌담들이 우리의 마음을 소박하고 정답게 한다. 1.5m 내외의 높이로 쌓은 내촌마을 돌담은 총길이가 무려 3㎞에 달한다. 내촌마을 돌담은 옛 마을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고이 간직하고 있어 2006년 12월 4일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 제283호로 지정됐다. 선왕산 중턱에서 지게로 돌을 날라다가 지금과 같은 돌담을 쌓았다고 하니 돌담 하나하나에 스며있는 정성은 눈물겨운 것이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 이동한다. 백사장 길이가 10리에 이른다고 하여 명사십리해수욕장이라 했다. 드넓은 해수욕장 양쪽 바다에 작은 섬들이 떠 있어 해수욕장은 외롭지 않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백사장을 걷는데 겨울 명사십리해수욕장이 우리의 가슴을 텅 비워준다. 텅 비워진 가슴속에 맑고 거침없는 자유가 채워진다.


※여행 쪽지

▶비금도 선왕산 산행코스는 상암마을→그림산→죽치우실→선왕산→내촌갈림길→내월우실→내촌마을까지 약 5㎞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내촌갈림길에서 곧바로 하누넘해수욕장으로 하산할 수 있다.
▶압해도 송공항과 목포항에서 비금도로 가는 배가 운항된다.
▶비금도 안에서 운행되는 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시간 맞추기가 불편하다. 택시나 25인승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택시/관광버스(061-275-5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