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ssnam48@kjdaily.com

2017년 02월 01일(수) 19:57

친구가 전화를 했다. 설날 시댁에 갔더니 손주벌 되는 10살 조카가 말끝마다 ‘염병하네’를 남발해서 한참 웃었다고 한다. 그런 엄청난 욕을 어디서 배웠냐니까 친구들이 TV에서 보고 아무말에나 붙여 사용한다 하더란다. 우리 어른들이 정말 황당하고 마땅찮을때 욕으로 내뱉는 말 ‘염병하네’가 국민 일상어가 된건 불과 일주일도 안된다. 지난주 설 전에 최순실씨가 특검에 체포돼 나오면서 ‘억울하다’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외치자 특검 사무실을 청소하던 아줌마가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 ‘염병하네’였고 국민은 그 욕에 박수를 쳤다.

몇 달동안 국민을 분노와 절망에 빠뜨리고 추위 속에서 공황상태에 몰아넣은 주범이 ‘억울하다’하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그녀는 우리 국민이 일상에서 겪는 억울함의 가짓수가 얼마나 많은지 알고나 있을까? 국민이 선거에서 뽑은 이도 아닌데 청와대 행정관과 고위공직자를 맘대로 부리고 국가정책을 좌지우지 하고 대기업에서 수백억원의 돈을 뜯어낸 자가 억울하다니~.

‘억울함’으로 치면 국민이 더 억울하다. 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정서를 꼽으라고 한다면 ‘억울함’이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구조 속에서 빈부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이 날로 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불만과 강한 억울함을 느끼고 있다. 설 연휴때 만난 한 청년은 ‘정말 억울한 사람은 대한민국 청년이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2년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그 청년은 여자친구가 있어 취직 후 결혼을 생각 중인데 전세 구할 돈이 없어 막막하다고 했다. 정유라처럼 ‘돈 많은 부모 만나는 실력’이 없어 억울한데 대출받아 낸 대학등록금 갚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니 최순실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설전후 여러 기관이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젊은층인 2030세대는 일자리와 주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으며 4050세대는 경제불안에 따른 가계소득 불안을, 6070세대는 노후 문제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더군다나 올해는 IMF급 경제위기가 닥칠 것이란 불안까지 가중되었다. 경제전문가 70%는 경제위기라고 내다봤고 부동산 전문가 90%는 경제위축을 얘기했다. 국민의 67%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경제위기에 봉착할 것이다’고 답하고 있다.

그래서 이처럼 팍팍한 민생에 위기, 화살은 정치권으로 향하고 있다. 탄핵정국에서 국가가 혼란에 빠져 서민경제를 살피지 못하는 현실도 억울한데, 다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내놓은 얘기들도 희망이나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올해 설 연휴 동안 밥상머리에서 확인된 민심이 흉흉했다는 것을 들었을 터인데 후보들은 승리에만 집착하는 모습이다.

헌법재판소가 2월 말이나 3월 초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한다면 4월 말이나 5월 초 ‘벚꽃 대선’을 치르게 된다. 유권자들이 대선 주자들의 국가 비전과 국정운영 방향을 알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기껏해야 석 달이다. 지금 대선 주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표에 유리한 선심성 공약만 남발하고 발등의 불인 경제위기에는 침묵하고 있다. 우리는 ‘깜깜이 선거’나 ‘후보 검증에 실패한 선거’가 나라를 어떻게 망치는지 사례를 통해 처절하게 학습하고 있다.

그래서 제안한다. 대선후보들을 철저히 검증할 TV토론을 늘려야 한다. 참모가 써준 정책을 읽는 대독 토론은 무의미하다. 험난하게 몰아치는 파도를 뚫고 배를 몰아야 하는 선장이라면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방법을 알아야만 그 높은 파고를 넘을 수 있다. 나라를 이끌려는 지도자라면 자신의 신념과 비전을 갖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은 본선은 물론이거니와 양당이 경선을 치르기 전부터 여러 차례 TV 토론회를 갖고 각 후보의 정책을 꼼꼼히 비교하고 검증한다. 안방의 유권자들은 TV를 통해 대선 주자들의 자질과 정책을 보고 후보를 선택한다. 토론 기간동안 국민은 대통령 후보에게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선명한 대답을 못한다면 국민이 아닌 자기자신을 위해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도 아닌 퇴임을 하루 앞두고 마지막 작별 편지를 국민에게 보냈는데, 예스, 위 캔(Yes, we can)이라는 표어로 다시 한 번 국민을 격려해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백악관에서 일하면서 여러분들로부터 배운 것들 덕분에 나는 더 좋은 대통령,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며 ‘여러분은 내가 힘을 얻을 수 있던 선량함, 회복력, 희망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우리 민주주의에서 가장 강력한 단 하나의 단어는 바로 우리(We)’라며 ‘우리는 국민, 우리는 승리하리라. 예스 위 캔’이라는 말로 편지를 마쳤다. 정말 멋진 지도자다.

다행인 것은 세 달이 넘는 촛불광장을 통해 우리 국민이 ‘좋은 대통령 뽑는 일’에 큰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이 불우한 시대의 타락과 불의, 세상의 부조리한 권력을 이야기하며 억울한 국민이 모여 새로운 나라를 꿈꾸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두운 광장에 우리 국민이 촛불을 든 이유, 억울한 사람이 없는 정의로운 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간절한 소망 때문 아닐까?

대통령 후보들, 당신은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