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 내려놓고 지친 영혼 정화하는 산책로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서울 둘레길 1코스 (수락산·불암산코스)

2017년 02월 07일(화) 19:52

의정부 쪽에서 내려오는 중랑천 너머로 의정부의 건물들이 바라보인다.

한양의 옛 도읍을 둘러싸고 있는 산을 내사산(內四山)이라 하고, 현재의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을 외사산(外四山)이라 한다. 내사산과 외사산은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안고 있으며 서울시민들이 기대고 생활의 여백을 즐길 수 있는 생태적인 공간이다. 서울시에서는 내·외사산을 연결하는 순환코스를 정비해 각각 한양도성길과 서울둘레길이라 이름 붙였다. 이중에서 서울둘레길은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아차산, 대모산, 호암산, 봉산 등을 이은 서울의 외곽을 한 바퀴 도는 157㎞의 트레킹 길이다.

서울둘레길 1코스를 걷기위해 도봉산역으로 향한다. 서울지하철 도봉산역을 빠져나가니 서울창포원이다. 서울창포원은 서울의 끝자락인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에 위치해 있다. 붓꽃 가득한 특수식물원인 서울창포원은 붓꽃원, 약용식물원, 습지원 등 12개 테마로 구분돼 있다. 양쪽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도봉산과 수락산의 모습이 창포원을 더욱 아름답게 해준다.

서울창포원을 나와 중랑천변을 따라 걷는다. 중랑천 너머로 아기자기한 바위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수락산이 예쁘게 다가온다. 비가 오면 거대한 화강암 암벽을 타고 물이 굴러 떨어진다고 해서 수락산(水落山)이라 했다. 수락산은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4대 명산이다.

서울둘레길에는 곳곳에 이정표와 리본이 붙어 있어 길찾기가 어렵지 않다.

중랑천 위에 놓인 상도교를 건너 수락산 자락으로 파고든다. 서울창포원을 경계로 북쪽은 의정부이고 남쪽은 서울 땅이다. 길은 서울과 의정부의 경계선을 따라가다가 수락산 서쪽 자락으로 이어진다. 산길을 걷고 있지만 나무 사이로 종종 아파트들이 바라보인다.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산책길로 활용되는 길이라 사람들의 채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북한산이나 수락산 같은 산은 노약자가 다니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서울둘레길은 산허리를 비스듬하게 돌아가는 길이라 나이 드신 분이나 가족단위로 산책하듯 걷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아래쪽이 주거지이지만 숲길에서는 고요함이 넘쳐 깊은 산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중간중간 수락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있지만 둘레길은 산허리를 돌아서 간다.

산허리를 돌고 돌아가면 골짜기가 나오고 골짜기를 지나면 다시 산허리를 따라 걷게 돼 있다. 지난 가을 완전히 잎을 떨구고 알몸으로 겨울을 나고 있는 나무들은 용맹정진 중이다. 잿빛 나목 상태의 겨울 숲은 쓸쓸하고 힘들어 보이지만, 이 기간 나무들은 강인한 내공을 키운다. 겨울 숲은 산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도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내공을 키우라 한다.

불암산 쪽에서 본 수락산의 모습. 바위 봉우리들이 아기자기하다.

숲길을 걷다가 종종 서울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를 만난다. 전망대 아래로 하루하루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 펼쳐진다. 저 높은 고층 아파트들과 사무실 건물들이 서울시민들의 일상을 만들어 준다. 저 건물 속에서 펼쳐지는 속도는 빠르고 생활은 마냥 바쁘다. 반면에 이곳 숲속에서는 모든 게 느리고 여유가 있다. 숲속의 느린 시간의 속도는 마음의 속도까지 느리고 여유있게 해준다.

빼곡하게 들어찬 건물들을 감싸고 있는 것은 산이다. 서울은 이곳 수락산과 불암산이 동쪽에서 감싸고, 건너편 도봉산과 북한산이 서쪽에서 둘러싸서 서울시민의 삶터를 요람처럼 포근하게 해 준다. 시내의 건물들이 현대문명이라면 산과 숲은 자연생태문명이다. 현대문명은 편리하되 삭막하지만 자연은 불편하되 포근하다.

그래서 서울둘레길은 사람들이 첨단문명 속에서 고갈되기 쉬운 자연의 심성을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지친 서울시민들이 큰 맘 먹고 떠나지 않아도 집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둘레길을 걸으면서 영혼을 정화한다.

채석장전망대에 서니 불암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불암산(佛岩山)은 산 정상부에 있는 큰 바위가 부처님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부드러운 산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혼자는 혼자대로 여유롭고, 두 사람이 나란히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는 모습은 모습대로 다정하다.

서울둘레길이 시작되는 서울창포원은 도봉산과 수락산이 양쪽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사진은 창포원에서 본 도봉산의 모습.

산길을 빠져나오면 민가가 나오고 당고개역 근처 건물들 뒤로 불암산이 지척이다. 민가를 벗어나 불암산 자락으로 들어선다. 철쭉을 심어 작은 공원으로 조성해놓은 철쭉동산에 들어서니 깔끔하게 다듬어진 바위봉우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락산의 아름다운 풍경도 슬며시 다가온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북한산과 도봉산도 아름답지만, 수락산과 불암산 또한 아기자기한 바위들의 자태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은 도시를 감싸주고 있는 아름다운 산들이 있어 매력적이다. 수락산에서 불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의정부시·남양주시와 경계를 이룬다.

잘 다듬어진 바위는 민낯이어도 피부가 곱고 아리따운 여인 같이 매끄럽고 예쁘다. 바위틈에서 굳건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무들은 강인한 생명력의 표상이다. 산 아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을 이루고, 산 위에서는 세월이 빚어놓은 아름다운 바위들이 도시의 삭막함을 상쇄시켜 준다. 주택가 근처라 인근 주민들이 불암산의 아기자기한 바위들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한다.

나목 상태의 활엽수림을 지나다가 붉은 줄기에 푸른 소나무 숲을 만나면 청신한 기운이 느껴진다. 고요한 숲속에서 딱따구리 한 마리가 열심히 나무를 쪼고 있다. 숲속의 바람소리, 새소리가 내 마음을 소박하게 해 준다.

불암산 암봉. 잘 다듬어진 바위는 피부가 곱고 아리따운 여인같이 예쁘다.

3층 높이로 만들어놓은 불암산둘레길 전망대에 올라보니 주변의 산과 서울시내의 모습들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그동안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불암산의 여러 바위 봉우리들이 누가 잘났나 경쟁하는 것 같다. 불암산의 바위들은 작은 바위들이 아기자기하게 조합을 이룬 형태는 아니고, 하나의 거대한 바위가 작은 봉우리를 이룬 형태를 띤다.

수락산이 멀지 않은 곳에서 손을 흔들고, 노원구와 도봉구 건물들 너머로 도봉산이 미모를 뽐낸다. 북한산의 모습도 정면으로 바라보이지만 오늘은 미세먼지 때문에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숲속에는 간이도서관도 있다. 숲속에 몇 개의 작은 야외용 서가가 있고, 서가 주변에 평상을 놓아 여기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점점 낮아지는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니 ‘공릉산백세문’이라 쓰인 출입문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서 산길이 끝나고 이제부터는 도로를 따라 화랑대역까지 걷는다. 건물 사이로 보이는 불암산이 삭막한 도시를 포근하게 감싸준다. 도시가 자연을 파괴해도 자연은 자신을 파괴한 도시를 끌어안는다.


※여행쪽지

▶서울둘레길은 서울외곽을 한 바퀴 도는 트레킹 길로 8개 코스 21개 구간, 총길이 157㎞에 이른다. 그중 1코스는 수락산과 불암산을 연결하는 코스로 지하철 도봉산역에서 출발해 서울창포원→벽운동계곡→채석장전망대→당고개역→철쭉동산→불암산 입구→화랑대역까지 14.3㎞로 6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서울지하철 1호선, 7호선 도봉산역에서 하차 2번 출구를 통해 나가면 서울창포원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