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중 긴 칼 꺼내 어루만지고 있노라니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19) |
| 2017년 02월 20일(월)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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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 김성일
만리 길에 마음은 도리어 꿋꿋한데
석잔 술에 취하여 역시나 넉넉하고
한밤중 붉은 기운은 찌른다네 하늘을.
萬里心猶壯 三杯興亦饒
만리심유장 삼배흥역요
中宵撫長劍 紫氣直衝霄
중소무장검 자기직충소
장군이 한 밤중에 서성임은 감상에 젖은 시상이 아니다. 나라와 조국을 지키겠다는 의지에 찬 나머지 큰 칼을 매만지면서 서성인다. 쥐새끼, 노루 한 마리까지도 숨을 죽이는 그런 엄숙한 전경을 연상하게 된다. ‘병사는 어서 한 숨 자거라. 깊어가는 이 밤은 내가 지키리라’며 큰 다짐을 하는 우렁찬 목소리까지도 들리는 듯하다. ‘만 리 길이지만 마음과 정신은 도리어 꿋꿋하기만 한데, 나의 이 붉은 기운이 바로 하늘을 찌르는구나’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봤다.
‘한밤중에 긴 칼을 꺼내 어루만지고 있노라니(龍灣感興)’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1538-1593)로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다. 19세에 글을 읽다가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서 과거 공부만 하고 진리를 깨치기 위한 도학을 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생각으로 동생 김복일과 이황 문하에 들어가 공부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만 리 길이지만 마음과 정신은 도리어 꿋꿋하기만 한데 / 석 잔 술에 흥취 또한 넉넉하기만 하여라 // 한밤중에 긴 칼을 꺼내 어루만지고 있노라니 / (나의) 이 붉은 기운이 바로 하늘을 찌르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용만 가는 길에 감흥이 일어[2]]로 번역된다. 용만의 밤을 그렇게 깊어만 갔던 모양이다. 밤이 깊어갔던 만큼 장군의 의지는 더욱 굳어만 갔을 것이다. 요동을 정벌하러가는 장군의 의지는 아직도 만리길이지만 마음을 더욱 꿋꿋해졌다는 시상에 다소곳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시인의 굳은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했음을 곳곳의 시심 속에서 찾게 된다. 아직도 갈 길은 만 리지만 마음과 정신은 도리어 꿋꿋하기만 한데, 석 잔 술 담아보는 흥취 또한 넉넉하기만 했다는 시상을 담아냈다. 군영의 밤이 깊어가는 만큼 적을 섬멸하겠다는 다짐으로 채워진 술잔 속에 의기가 더욱 충천했으리라.
화자는 깊어가는 한 밤중이었지만 차마 잠을 청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뒤척이는 몸부림 중에 드디어 긴 칼을 꺼내 어루만지고 있노라니, 붉은 이 기운과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장군으로 적을 기필코 섬멸하고 말리라는 굳은 의지가 직유적인 표현 속에서 찾게 된다. 내일 적진에서 잡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장군의 이와 같은 정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렇게나마 나라를 지켰을 것이다.
※한자와 어구
萬里: 만리. 心猶壯: 마음은 오히려 떳떳하다. 三杯: 석 잔의 술. 興: 흥취. 亦饒: 또한 넉넉하기만 하다. // 中宵: 한 밤 중. 撫: 어루만지다. 적을 섬멸하겠다는 다짐을 함. 長劍: 장검. 긴 칼. 紫氣: 붉은 기운. 의기에 찬 기운을 뜻함. 直: 바로. 衝: 찌르다.(찌를 충). 霄: 하늘.(하늘 소).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