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혹한 시절, 누구를 기다리나 낭랑 18세!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ssnam48@kjdaily.com

2017년 02월 22일(수) 19:39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생각이 ‘엄혹한 시절’이다. 필자같은 50대가 살아온 한국현대사는 너무 엄혹했다. 6·25한국전쟁후 태어나 배고픈 유년기를 보낸 필자는 박정희 군사정권,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을 경험했고 1980년대 언론자유화 물결을 타고 언론인이 되었다. 지방자치제 시작과 경제부흥기를 살다가 IMF와 미국발 경제위기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광주라는 한국 정치1번지에서 30년 기자로 살면서 들려도 못 들은 척 하고, 보고도 못 본 척 해야 했던 그 삼엄한 시절도 있었다. 지금 취업준비에 찌들어 도서관에 박혀있는 대학생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날들었다.

그러나 이 겨울, 4개월이 넘는 촛불광장을 지켜보면서 필자의 18세나 지금 18세나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필자가 18세에 노트에 쓰고 썼던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를 이 시대 18세도 광장에서 외치고 있다. 또 다시 다가온 이 엄혹한 시절에, 필자는 국회가 꼭 해줬으면 하는 소망 하나를 적어본다.

18세 선거권이다. 오늘, 23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는 18세 선거권을 의결할 예정이다. 꼭 통과되어야 한다. 단지 선거할 수 있는 국민 60만명을 늘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19세 선거권이라는 후진적인 꼴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18세선거권을 반대해온 이들은 한국 18세가 입시에 치중하여 정치권리를 행사할 능력이 부족하며 부모님이나 선생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주장이었다. 다른 나라 18세는 선거할 능력이 있는데 한국 18세는 판단 능력이 부족하다는 논리는 한국청소년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이 역사속에서 얼마나 큰일을 해왔는지 아는가. 3·1운동 당시 유관순의 나이는 16세였다. 광주학생운동이나 독립운동 과정도 고등보통학교(현 고등학교)는 중심을 이뤄졌다.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부정선거에 항의해 2·28 시위를 벌였고, 4월 혁명을 촉발한 마산 3·15 의거의 희생자 김주열은 마산상고 입학을 앞둔 학생이었다. 1980년 5·18 당시 고등학생들도 시민군의 일환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때도 고등학생들의 시위참여가 이어졌다.

현대사의 당당한 주체였고 동등한 시민의 한 사람인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반대하는 것은 역사의 발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일 따름이다. 청소년들은 지금, 분명한 사리판단을 할 줄 아는 사회주체로 인정해 주길 요구한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어른들도 많은 상태에서, 올바른 정치사회적 시선을 가지려는 학생들에게 기본권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 헌법에는 18세면 결혼(민법) 군 입대(병역법) 운전면허(도로교통법) 공무원임용시험(공무원임용시험령)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유독 선거(공직선겁법)만 안된다. 2005년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정치적 판단이 미성숙하다’하여 20세에서 19세로 낮추는데 그쳤다. 18세로 선거연령을 낮추는 법안은 이미 지난 1월 임시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의결되었다. 그러나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반대로 전체 회의에서 상정조차 못했다. 23일 오늘, 다시 상임위원회인 안전행정위원회 전체 회의를 앞두고 있다. 반대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학제 개편과 연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3개국 중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만 18세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도 선거법 개정에 동참해야 한다. 인간발달학에서 만18세는 신체·인지·사회적 및 감정적 발달이 성인과 동일한 수준으로 완성되는 단계다. 이것은 삶의 의미에 관한 심도 있는 고찰, 자아의 형성, 감정적 안정, 타인에 대한 배려, 미래에 대한 고민 등 인간발달과정에서 순차로 수행되는 과업이 마무리됨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법체계 안에서 만18세는 원칙적으로 공무원이 될 수 있고, 부모 동의 없이도 혼인할 수 있지만 유독 선거에 참여할 수는 없다. 또한 만 18세들에게는 병역, 납세 등 의무가 부과된다. 의무를 잘 이행하게 하려면 선거권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선거연령 하향 필요성은 정파적 이해타산을 떠나 사회변화와 함께 달라진 생애발달과정 단계와 같은 개인적 요소, 참여민주주의의 가치 함양과 같은 더 높은 공동가치의 실현 그리고 세계적 추세 등을 고려해 따지는 것이 생산적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젊은 유권자층의 정치적 의사가 점점 과소대표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만18세 정치참여 확대는 시대적 요구다.

선거연령 하향의 실익은 참여민주주의의 확대로 인한 민주주의 가치함양, 미래세대 국가운영 방향성 정립에 관한 주인정신 제고, 국민의 정치적 책임의식 고양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 청소년은 미래가 아니라 현실의 구성원이고 대한민국 현재 주역이다.

오늘 우리 청소년은 배우고 익히고 일하고 먹고 자고 싸우고 화해하고 희망하고 절망한다. 그래서 이들도 헌법이 정한 어른이므로 자신의 현재 운명을 결정하고 과정에 참여한 권리가 있다. 단지 현실 권력이 없다해서 선거권 부여될때만 기다리게 해서야 되겠는가. 정치적 차별이다.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