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들썩한 온통 모두가 갑옷 군대 소리라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21)

2017년 03월 06일(월) 19:58

驟雨 (취우)
한원 노긍

바람이 사립 닫자 제비새끼 놀라는데
소낙비 빗기더니 골 어귀에 몰려가고
흩어져 삼만 자루에 갑옷 군대 소리로다.
風扉自閉燕雛驚 急雨斜來谷口去
풍비자폐연추경 급우사래곡구거
散入靑荷三萬柄 嗷嘈盡作鐵軍聲
산입청하삼만병 오조진작철군성

다른 나라가 침범하면 배신자들이 있어 앞잡이 노릇을 한다. 동네나 나라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자들이 앞잡이를 선다. 침략자들을 앞세우고 마을 어귀는 물론 골목 어디든 의기양양한 기세로 안내한다. 닥치는 대로 빼앗아 가고, 구둣발로 걷어차고, 창고며 농짝까지 모두 뒤져서 물건을 가지고 간다. 이것이 침략자들의 근성이다. ‘소낙비 빗겨 오더니 골목 어귀로 몰려 떠나면서 흩어져 푸른 연잎이 삼만 자루에 쏟아지고 났더’니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떠들썩한 온통 모두가 갑옷 군대 소리라네(驟雨)’로 번역되는 칠언절구다.

작가는 한원(漢源) 노긍(盧兢·1738-1790)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다른 호는 산주파(散珠坡), 도협(桃峽)으로 알려진다. 1765년(영조 4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벽파가 아주 득세하던 시절에 그는 시파였으므로 과거에 급제하고도 관직에 나아가지를 못했다. 문집은 ‘한원문집’이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바람이 쾅 사립문을 닫자 제비 새끼들이 놀라는데 / 소낙비 빗겨 오더니 골목 어귀로 몰려 떠나네 // 흩어져 푸른 연잎이 삼만 자루에 쏟아지고 나더니 / 떠날듯이 떠들썩한 온통 모두가 갑옷 군대 소리라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소나기가 내린다]로 번역된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골목 안은 휘집고 지나가더니만 마당가를 한 바퀴 휘집고 지나갔던 모양이다. 지붕을 ‘쾅’하고 지나치더니만, 사립문도 한번 흔들어 대고 떠나고 난 흔적만 남겼을 뿐, 그 잘려나간 꼬리 부분을 찾을 길이 없다. 이는 다음과 같은 상상은 얼마든지 가능하겠다 싶다.

먹장구름이 몰려온다. 바람은 “문 닫아라”하며 사립문을 쾅 닫아버린다. 처마 밑에서 제 어미도 기다리던 새끼 제비들이 그 소리에 놀라 일제히 소스라친다. 소낙비가 45도 각도로 들이친다. 그래서 ‘바람이 쾅 사립문을 닫자 제비 새끼가 놀라는데 소낙비 빗겨 오더니 골 어귀로 몰려 떠났다’라고 했을 것 같다.

한 번 후려치던 소나기가 아무래도 재미없다는 듯이 골목 어귀 연꽃 방죽 쪽으로 ‘와’ 하면서 몰려 떠나고 없다. 이들이들 삼만 개의 푸른 됫박이 하늘 향해 손 벌리고 있는 그 위로 몰려가서는, 한번 당해보겠느냐며 소나기 물세례를 들이 붓는다. 갑자기 갑옷 입은 군대와 푸른 방패 사이에 일대 격전이 벌어진다. 연못은 돌연 전쟁터로 변했다는 상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겠다.

※한자와 어구

風: 바람. 扉自閉: 사립문을 닫다. 燕雛驚: 제비새끼가 놀라다. 急: 급하다. 雨斜來: 비가 빗겨 쏟아지다. 谷口去: 골 입구로 가다. // 散: 흩어지다. 入靑荷: 푸른 연잎으로 들어오다. 三萬柄: 삼만 자루. 嗷嘈: 떠들썩하다. 盡作: 온통 짓는다. 鐵軍聲: 갑옷 군대 소리. 철기병의 소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