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오르려다 그만 치마 자락이 터졌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22)

2017년 03월 13일(월) 18:59

春詞(춘사)
초정 박제가

그네 줄에 발을 굴러 공중에 스치는데
바람 받은 소매들은 당긴 활등 같아라,
치마폭 치맛자락 터져 드러난 줄 모르네.
劈去秋千一頓空 飽風雙袖似彎弓
벽거추천일돈공 포풍쌍수사만궁
爭高不覺裙中綻 倂出鞋頭繡眼紅
쟁고부각군중탄 병출혜두수안홍

봄이 되면 아가씨들이 봄을 즐긴다. 나물도 캐고, 임도 만나면서 봄 처녀를 맞이한다. 오월 단오가 되면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탄다. 앞으로 밀려갔다가 뒤로 쳐지는 틈을 타서 속옷자락이 보이면 더벅머리 총각은 몸살을 한다. 코고무신의 실체도 이따금씩 몸살을 하면서 보인다. 바람결에 치맛자락이 타졌던 모양이다. 바람결에 두 소매를 당기는 활등 같은 그네를 높이 높이 오르려다가 그만 치맛자락이 길게 터졌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높이 오르려다가 그만 치마 자락이 터졌네(春詞)’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05)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다. 다른 호는 정유, 위항도인(葦杭道人)으로 알려진다. 소년 시절부터 시, 서, 화에 뛰어나 문명을 떨쳐 19세를 전후해 박지원을 비롯한 이덕무, 유득공 등 서울에 사는 북학파들과 교유하며 사가시집을 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발을 굴러 그네 줄이 공중 높이 솟구치더니 / 바람 받은 두 소매를 당기는 활등만 같구나 // 높이 높이 오르려다가 그만 치마 자락이 터져서 / 수놓은 꽃신 끝이 그만 드러난 줄도 모르고 그네를 타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봄의 속삭임’로 번역된다. 봄이 되면 온갖 만물이 기지개를 편다. 키 자랑이라도 할 량으로 힘껏 발돋움 한다. 여기서 저기서 두런두런 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아마 이런 모양이 봄의 속삭임이었을 것이다. 봄은 만물을 생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놓고 말라가는 생로병사라는 기본 원리를 잘 지킨다.

시인은 이러한 생멸의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봄을 맞이하는 쾌감을 다른 시각에서 보았던 것 같다. ‘봄 처녀’라는 시적인 상관물을 설정한 시인은 “그네 줄이 발을 굴러 공중에 솟구치더니 / 바람 받은 두 소매를 당기는 활등만 같구나” 라는 시상을 전개해 본다. 굳이 봄 처녀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규수방에 묻혀 지내던 아가씨가 그네를 타고 있다는 대상물을 설정해도 상관없다.

화자는 그네를 타는 봄 처녀를 보고 있는 순간 아뿔싸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그만 놀라고 만다. 그래서 높이높이 오르려다가 그만 바람결에 치마 자락이 터지면서, 예쁘게 수놓은 꽃신 끝이 그만 드러난 줄을 몰랐네라는 다소 엉뚱한 시적인 반전을 시도한다.

※한자와 어구

劈去: 갈라 오르다. 秋千一頓空: 발을 굴러 한 번 공중에 오르다. 飽風: 바람을 품이 안다. 雙袖: 두 소매. 似彎弓: 활 등과 같다. // 爭高: 높이 오르려고 다투다. 不覺: 알지 못하다. 裙中綻: 치맛자락이 터지다. 倂出: 아울러 나오다. 鞋頭繡: 꽃신 끝. 眼紅: 눈이 붉다. 꽃 신 끝이 붉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