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역사·억눌린 목소리 서정인 ‘달궁’ 합본판 선봬 ‘달궁_박달막 이야기’ 서정인 지음 최측의농간 1만8천원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

2017년 04월 02일(일) 19:15

서정인(81·사진) 작가의 장편소설 ‘달궁’을 출판사 최측의농간이 ‘달궁_박달막 이야기’로 새롭게 편집해 개정 합본판을 선보인다.

서 작가는 실험적인 소설쓰기를 꾸준하게 실천하며, 한국 소설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기여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개정 합본판으로 나온 ‘달궁’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저자 특유의 형식 파괴적 실험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개정 합본판에선 편의상 한 권씩 분리돼 출간됐었던 세 권의 ‘달궁’(초판 ‘달궁’, ‘달궁 둘’, ‘달궁 셋’)에 흩어져 있던 모든 연작(각종 문예지에 수년간 33편의 중·단편 형식으로 발표)을 ‘달궁_박달막 이야기’라는 단일한 제목 아래 한 데 묶었다. 또한 작고 가벼운 판형으로 새로이 단장해 눈길을 끈다.

개정 합본판 발간을 위해 저자는 직접 전체 원고를 면밀히 검토, ‘박달막 이야기’를 부제로 설정했다. 또한 초판에 있던 일부 오식을 바로 잡고 다수의 문장을 개작해 작품 완성도에 보다 심혈을 기울였다.

‘달궁’은 뱀사골에서 지리산 속으로 5㎞ 정도 더 들어간 산속 오지의 지명이다. 이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작가는 ‘달궁’ 속 곳곳에 심어뒀다. ‘인실’이라는 여성의 기구한 삶이 바로 그것이다. 6·25 한국전쟁 통에 미아가 돼 여러 고아원을 전전해야 했던 그녀는 소설 속에서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삼촌에게 강간을 당하기도 한다.

‘인실’이라는 한 개인의 비극적 인생행로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온 국민이 국가성장담론에 직·간접적으로 동원됐던 산업화 시대의 기구함과 포개진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인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혹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과 사건들 또한 ‘달궁’의 중요한 부분이자 전체로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정치·경제적으로 억압됐던 역사의 현장에서 파편화돼 가는 주체들, 다양한 계층의 억눌린 목소리가 이 책에 새겨져 있다. 즉, 산업화 시대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모순의 상황을 견디며 스스로 모순 그 자체가 돼야만 했던 다양한 계층 군상들의 초상을 대변하고 있다.

한편, 서정인 작가는 1936년 순천에서 출생해 서울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2년 ‘사상계’에 단편 ‘후송’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작품집 ‘강’(1976), ‘가위’(1977), ‘토요일과 금요일 사이’(1980), 장편소설 ‘달궁’(1987), 산문집 ‘지리산 옆에서 살기’(1990)가 있다. 1976년 한국문학작가상, 1983년 월탄문학상, 1986년 한국문학창작상, 1995년 동서문학상, 1998년 김동리문학상, 1999년 대산문학상, 2002년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