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달을 보면 아들 낳는다고 노인들이 전하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28) |
| 2017년 04월 24일(월) 18: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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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정 김려
정월 보름 밝은 달빛 지극히 둥글고
먼저 보면 아들이라 노인들 전하는데
노처녀 사람 등지고 눈물만이 흘리는가.
元宵月色劇淸圓 先見生男古老傳
원소월색극청원 선견생남고노전
抵事南隣老處子 背人無語淚泫然
저사남린노처자 배인무어루현연
여자가 결혼을 하는 행위는 사랑도 행복도 모두 뒤에 두고 오직 자식 생산에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남아선호사상도 우리의 전통문화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일이겠다. 정월대보름달을 보면 속설과 함께 아직도 시집을 가지 못하는 노처녀의 애달픈 심정을 노정했으니 가히 알만 하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 남쪽 이웃 노처녀들은 사람들을 등지고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가’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먼저 달을 보면 아들 낳는다고 노인들이 전하네(上元俚曲)’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담정(潭庭) 김려(1766-1822)로 조선 후기의 학자다. 1780년(정조 4) 15세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강이천, 김조순, 이옥 등과 어울렸다. 1801년(순조 1) 강이천사건이 재조사돼 진해로 유배됐다. 그 곳에서 어민들과 친해져 ‘우해이어보’를 지었다. 악부시의 대가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정월 보름날 밤 달빛은 지극히 맑고도 둥근데 / 먼저 달을 보면 아들 낳는다고 노인들이 속설로 전한다네 //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 남쪽 이웃 노처녀들은 / 사람들을 등지고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가]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상원의 속된 노래]로 번역된다. 상원은 음력 대보름날을 말한다. 음력 1월15일은 대보름, 음력 1월14일은 작은 보름으로 불린다. 농사력으로 볼 때 이 시기는 대보름에 이르기까지 걸립(乞粒)을 다니면서 마을 전체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이다가 농사철로 접어드는 때이며, 마을공동의 신격(神格)에 대한 대동의례·대동회의·대동놀이 등이 집중된 때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와 같은 축제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던 같다. 이런 전통적인 풍습 이외에 정월 보름날 밤에는 달빛은 지극히 맑고 둥근데, 이 달을 먼저 보면 아들 낳는다고 오래전부터 노인들의 입 언저리를 오르내리며 전했다. 아들이 없는 사람은 정월 대보름달을 누구 보다 일찍 기다리는 노래(俚曲)가 있었으니 이를 애창했겠다.
이 같은 좋은 명절에 까닭 없이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상기 시킨다. 화자는 ‘무슨 일로 저 남쪽 이웃 노처녀가 무슨 까닭으로 사람들을 등지고 말없이 눈물만 흘리나’라는 혼자만의 물음을 던지게 된다. 과년한 노처녀가 금년에도 또 해를 넘기겠느냐는 근심 때문이었음을 암시하는 시적인 묘미를 발휘한다.
※한자와 어구
元宵: 정월 대보름. ‘上元’이고도 함. 月色: 달 빛. 劇淸圓: 지극히 밝고 둥글다. 先見: 먼저 보다. 生男: 아들을 낳는다. 古老: 옛 노인들. 傳: 전하다. // 抵事: 무슨 일로(막는 일). 南隣: 남쪽 이웃 동네. 老處子: 노처녀. 과년한 아가씨. 背人: 사람들을 등지다. 無語: 말이 없다. 淚泫然: 그렇게 눈물을 흘리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